다다익선
“나의 능력으로는 얼마나 되는 군대를 거느릴 수 있겠는가?”
“폐하는 10만을 거느리실 수 있을 뿐입니다.”
“그대는 어떠한가?”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면서 어째서 내 밑에 있는가?”
“폐하께서는 병사를 잘 거느릴 수는 없으시나 장수는 잘 거느리십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폐하 밑에 있는 이유입니다. 폐하는 하늘이 주신 분이지, 인력으로 되는 게 아니옵니다.”
유방(劉邦)과 한신(韓信) 사이에 오고간 이 대화에서 한신에 대한 유방의 양가감정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한신의 비극적 운명까지도 점칠 수 있다. 다다익선(多多益善), 아무리 많은 대군이라도 능히 거느릴 수 있는 한신의 능력 때문에 유방은 그가 절실히 필요했고, 역설적이게도 절실히 그를 제거해야만 했다. 그 능력이 필요해서 유방은 한신을 제왕(齊王)에 임명하여 항우(項羽)를 치게 했지만 항우를 물리친 뒤에는 즉시 한신의 병권을 박탈하고 그를 제왕에서 초왕(楚王)으로 바꾸었다.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 한신이 모반했다고 밀고하자 유방은 거짓 순행을 구실로 제후들을 진(陳)에 모이게 했다. 마침 항우의 부하 장수였던 종리매(鍾離眜)가 항우의 죽음 이후, 평소 사이가 좋았던 한신에게 와 있던 때였다. 유방은 종리매에게 원한이 있었기 때문에 체포령을 내린 바 있다. 이제 곧 황제의 부름에 응해야 하는 한신에게 누군가 말하길, 종리매의 목을 가져간다면 황제가 기뻐할 것이라고 했다. 한신은 종리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고, 종리매는 “나는 오늘 죽지만 공 역시 곧 죽게 될 거요”라는 말을 남긴 채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유방을 만나러 갔지만 유방은 그를 결박하게 했다. 한신은 그제야 깨닫고 이렇게 말한다.
“과연 사람들의 말대로구나.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훌륭한 사냥개는 삶기고, 높이 나는 새가 없어지면 훌륭한 활은 치워지고, 적국이 격파되고 나면 지모가 있는 신하는 죽는다고 하였다.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나는 당연히 삶기고 마는구나!”
유방은 결국 한신을 초왕에서 회음후(淮陰侯)로 강등했다. 그제야 한신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유방이 자신의 능력을 두려워하고 미워한다는 것을.
음모와 배신
한신과 유방의 감정의 골은 깊어져갔다. 한신은 자주 병을 핑계로 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밤낮으로 원망하며 늘 불만족스럽고 울적했다. 자신의 지위가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이렇게 몇 년이 흘러갔다. 고조 11년(기원전 196), 진희(秦豨)가 대(代) 땅에서 반역을 일으켜 유방이 친히 토벌하러 간 사이에 한신은 죽음을 맞게 된다. 한신이 진희와 함께 모반을 꾀했다는 정보가 황후인 여후(呂后)에게 들어간 것이다. 여후는 소하(蕭何)와 의논한 뒤, 한신에게 사람을 보내 진희가 이미 사형 당했으며 신하들이 모두 축하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하게 했다. 소하 역시 한신에게 궁전으로 와서 축하하라고 했다. 소하의 말이니만큼 한신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일찍이 한신을 대장군으로 만들어준 인물이 바로 소하다. 도망친 한신을 추적해서 다시 유방에게 데리고 온 소하는, 한신이 국사무쌍(國士無雙) 즉 둘도 없는 나라의 인재이니 천하를 쟁취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한신과 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유방은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았고, 마침내 천하를 쟁취하게 된다. 본래 한신은 너무 가난해서 굶주리기를 밥 먹듯 하고 남들에게 멸시 당하기 일쑤였다. 이랬던 한신이 소하 덕분에 대장군이 되었으니, 그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대단했겠는가.
한신은 궁전으로 들어오라는 소하의 말을 따랐다. 한신이 궁전 안에 들어오는 순간 여후가 한신을 포박하게 했고, 장락궁(長樂宮) 종실(鐘室)에서 그의 목을 베었다. 한신은 죽는 순간 아마도 소하를 가장 원망했을 것이다. 송나라의 홍매(洪邁)는 『용재속필(容齋續筆)』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신이 대장군이 된 것은 소하가 추천해서였고, 이제 그가 죽게 된 것 역시 소하의 계책에 의한 것이었다. 그래서 ‘성공도 소하 때문이고 패망도 소하 때문이다(成也蕭何, 敗也蕭何)’라는 말이 항간에 나돌게 되었다.”
한신의 후회
『사기(史記)』 「회음후열전」에 의하면 한신은 죽기 직전, 괴통(蒯通)의 계책을 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일찍이 유방과 항우가 경쟁하고 있을 때 천하 대권의 향방이 한신에게 달려 있던 상황에서, 괴통은 한신에게 한(漢)나라·초(楚)나라와 더불어 천하를 셋으로 나누라는 계책을 내놓은 바 있다. 이때 한신은 괴통에게, “한왕(유방)이 자신의 수레로 나를 태워주고 자신의 옷으로 나를 입혀주고 자신의 먹을 것으로 나를 먹여주었다”라고 하면서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괴통은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도 삶겨진다”라고 하면서 “군주가 위협을 느낄 정도의 용기와 지략이 있는 자는 몸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라는 경고의 말을 건넸다. 그 누구의 신하가 되더라도 위태로우니 차라리 독자적으로 왕이 되라는 것이었다. 괴통이 찾아오기 직전에 항우 역시 한신에게 사람을 보내 똑같은 제안을 했다. 항우와 유방의 싸움에서 승리의 관건은 한신에게 달려 있으며 항우가 망하고 난 다음에는 유방이 한신을 멸할 것이니, 한나라를 배반하고 초나라와 화친함으로써 천하를 나누어 왕이 되라는 것이었다. 한신은 이렇게 말하면서 그 제안을 거절했다.
“한왕은 나에게 상장군(上將軍)의 인(印)을 주셨고 나에게 수만 명의 군대를 주셨소. 자신의 옷을 벗어서 나를 입히고 자신의 밥을 내가 먹도록 하셨소. 나의 말을 들어주시고 나의 계책을 쓰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거요. 나를 가까이 여기고 신뢰하는 이를 배반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오. 비록 죽는다 하더라도 마음을 바꿀 수는 없소.”
만약 이때 한신이 천하삼분지계를 받아들였다면 그가 천하를 차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왕이 되라는 연이은 제안은 분명 한신에게 큰 유혹이었을 것이다. 천하의 대세로 보나 한신의 능력으로 보나, 성공할 가능성이 아주 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의리를 저버릴 수 없고 자신을 신뢰하는 이를 배반할 수 없기에, 한신은 유방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유방은 천하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 결과 한신은 병권을 빼앗겼고 회음후로 강등되었고 마침내 목숨까지 잃게 되었다. 그가 죽기 직전 괴통의 계책을 쓰지 않은 것을 후회한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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