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서울에서 열린 <동아시아 미래포럼>에 참석했다. 주로 영화나 음악과 같은 대중문화를 다루면서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협력 등을 주제로 포럼이 진행되었다. 중국 측에서는 성룡과의 합작으로 유명한 홍콩의 당계례 감독이 대표주자로 나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중국의 많은 감독들을 다루었지만, 당계례 감독에 대해서는 딱히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물론 90년대에 그가 감독하고 성룡이 주연한 <홍번구>가 북미에서 흥행 1위를 했다는 것을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고, 우리 배우 김희선이 출연하여 화제가 된 <신화>도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다만 그런 영화들이 작품성을 논할 만한 영화는 아니고 취향적으로도 좀 거리가 있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그날 현장에서 당계례 감독의 발표를 들어보니 굉장히 스마트하고 또 상당한 친한파라는 것을 새로 알게 되었다. <신화>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김희선과 잠깐 나오는 역이지만 최민수를 캐스팅한 이야기들이 흥미로웠고, <홍번구>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된 스토리, 근 20년만에 <신화2>를 준비한다는 이야기 등도 재밌었다. 요컨대 30년에 이르는 영화 경력과 한국과의 합작, 할리우드 도전 등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의 발표는 충분히 들어볼 만한 것이었다.
1995년작 <홍번구>는 홍콩영화 사상 처음으로 할리우드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성룡의 화려한 맨몸 액션이 일품이고, 홍콩의 톱여배우 매염방이 여주인공을 맡아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전형적인 성룡표 액션영화로, 특유의 에너지과 적당한 과장과 우연이 버무려진 작품이다. 따로 작품성을 논할 영화는 물론 아니지만 잘 만든 액션 오락 영화로는 손색이 없다 하겠다. 성룡은 <홍번구>의 성공을 발판으로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된다.
감독 당계례는 이처럼 성룡과의 합작으로 이름을 알렸다. <홍번구> 외에도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의 3, 4편을 연출하여 흥행에 성공시켰다. 스턴트맨 출신으로 무술감독을 거쳐 감독으로 데뷔한 만큼 당계례 감독은 특히 액션 연출에 능하다. 그런 그의 장기는 성룡과 만났을 때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화제가 되고 흥행을 일군 것 같다. 시공간을 오가는 판타지 액션물 <신화>도 흥미로운 소재와 한중 합작이라는 화제를 더해 흥행에 성공했다. 그 외에도 역시 성룡과의 합작인 <쿵푸요가>, <뱅가드>라는 영화를 연출했다.
이미 경력이 있는 만큼 한국과의 합작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여러 한국 배우들과 교류한다고 하니 다음 합작품을 기대해본다. 여담으로 한 가지만 더 말해보겠다. 그날 포럼에서 당계례는 중국에 영화를 찍으러 온다면 자신이 무협영화 찍기 좋은 곳을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필자는 2편의 무협영화를 찍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중 한편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니 나중에 당계레에게 꼭 연락을 해볼 생각이다.
홍콩의 양조위가 올해 베니스영화제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소년처럼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는 양조위의 모습이 신선했고, 리안 감독이 시상자로 나서 덕담을 건네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도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받았는데, 요즘 양조위가 상복이 좋은 것 같다. 홍콩, 나아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한명이니 충분히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내성적인 성격에 작은 체구지만 그가 뿜어내는 배우로서의 에너지는 대단하고, 특히나 그의 눈빛 연기는 익히 정평이 나 있지 않은가. 양조위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보려 한다.
30년 넘어 40년 가까이 배우로 활동했고 더구나 다작이 일반화된 홍콩영화계를 생각해보면 그가 출연한 영화의 편수는 엄청날 것이란 걸 쉽게 알수 있다. 양조위도 수많은 배역을 맡았다. 양조위의 연기력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가 모든 영화에서 빛나는 연기를 한 건 물론 아니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한 경우도 많았다. 특히나 코믹한 배역을 맡는 경우가 특히 그런 것 같다. 가령 <몬스터 헌트>나 <지하철> 같은 영화에서 양조위는 영 어색하고 잘 안 어울린다. 또한 그 역시 수많은 사극에 출연한 바 있는데, 개인적으로 사극에 출연한 양조위도 좀 그렇다. 양조위는 역시나 도시를 배경으로 한, 뭐랄까 좀 어둡고 쓸쓸한 영화 속 인물을 맡을 때 그 빛을 제대로 발하는 것 같다.
양조위의 매력이 극대화되어 나타나는 영화를 말하자면, 우선 왕가위의 영화들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왕가위의 전성기 때 그의 페르소나로 불리기도 했으니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다. 나는 그중에서도 <중경삼림>과 <화양연화>, <2046> 속 양조위가 좋았다. 극중 양조위는 예의 그 그윽한 눈빛을 마음껏 발산하며 관객들의 마음을 쥐고 흔든다. 그가 표현해 낸 홍콩 남자의 쓸쓸함, 공허함, 외로움은 아시아 남자 배우라면 한번쯤 따라해 보고 싶은 하나의 이정표 같은 것이 되었다.
스타일리스트 왕가위에 앞서 양조위의 매력을 본격적으로 뽑아올린 감독은 허우샤오시엔과 오우삼이다. 대만의 아픈 현대사를 담담하게 펼쳐보인 <비정성시> 속 막내아들 역은 양조위에게 아주 딱이었다. 게다가 말을 못하는 설정이니 그의 눈빛 연기가 더욱 도드라진 작품이었다. 아마도 <비정성시>를 통해 양조위에 빠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세 친구의 우정과 배신, 갈등을 드라마틱하게 담은 오우삼의 느와르 수작 <첩혈가두> 속 양조위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영화 속 젊은 날의 양조위도 꽤나 뜨겁고 강렬한 열혈남아였고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눈빛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60이 넘은 양조위가 앞으로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작품에 따라 그의 눈빛이 어떻게 변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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