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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도읍지 이야기 54] 베이징의 중축선

 

[사진1]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냐오차오(鳥巢)’

 

 

중축선에 자리한 냐오차오

  2008년 8월 8일, 새 둥지 모양의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에서는 중국이 세계의 주역으로 우뚝 섰음을 선포하는 개막식이 거행되었다. 공자의 3천 명 제자가 펼친 장엄한 의식 속에서 ‘화(和)’라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한자와 종이와 화약 등을 형상화해 중국 문명의 우수성을 과시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중국은 51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종합 1위를 차지했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이라는 베이징올림픽의 슬로건에는 세계를 리드해 나가겠다는 중국의 의지가 담겨 있다. 개막식에서 전달한 ‘조화’라는 공자의 메시지는 중국이 세계를 향해 내놓은 글로벌 아젠다였고, 개막식에서 과시한 중국의 4대 발명품은 중국이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격을 갖추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베이징올림픽 마스코트인 베이베이·징징·환환·잉잉·니니의 첫 글자를 따면 ‘베이징 환잉 니(北京歡迎你)’가 된다. “베이징은 당신을 환영합니다”라는 의미다. 중국이 더 이상 팔로워가 아님을 실감하게 하는 슬로건이다. 이에 걸맞게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냐오차오(鳥巢)’는 중국인에게 새처럼 비상하는 중국, 세계를 품는 중국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한다. 냐오차오가 자리하고 있는 위치가 의미심장한데, 바로 베이징 중축선의 연장선상이다.

 

 

베이징을 베이징으로 만들어주는 중축선

  개혁개방 이후 베이징이 현대화된 글로벌 도시로 변신하면서, 베이징의 상징인 전통 가옥 사합원(四合院)과 골목 후퉁(胡同)은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급변한 베이징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는 전통이 바로 베이징의 ‘중축선’이다. 고대 베이징성의 중심을 관통하며 남북 방향으로 뻗어 있는 일직선을 중축선이라고 한다. 외성 남문인 영정문에서 시작되어 황성 북문 지안문 바깥의 고루(鼓樓)와 종루(鐘樓)까지 이어지는 중축선은 7.8킬로미터에 달한다. 영정문에서 시작된 중축선은 정양문·대명문·천안문·단문·오문을 지나 자금성을 관통해 신무문·경산·지안문으로 이어진 뒤 고루와 종루에 다다른다. 이 중축선을 중심으로 천단·신농단, 동편문·서편문, 숭문문·선무문, 태묘·사직단, 동화문·서화문, 동직문·서직문, 안정문·덕승문이 대칭을 이룬다. 중축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이상의 배치는 지고무상의 황권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베이징 상공에서 촬영한 사진을 보고 중국인은 베이징의 중축선에서 ‘용’을 읽어낸다. 정양문은 여의주, 금수교(金水橋)는 용의 아래턱에 난 짧은 수염, 천안문 광장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장안가(長安街)는 용의 두 가닥 긴 수염, 천안문은 용의 입술, 천안문에서 오문까지는 용의 코뼈, 그 좌우에 있는 태묘와 사직단은 용의 눈, 자금성은 용의 몸통, 자금성의 네 각루(角樓)는 사방으로 뻗은 용의 발톱, 경산(景山)에서 종루까지는 용의 꼬리다.

  중축선은 천자가 있는 곳이 세계의 ‘중심’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원나라 때부터 이어져온 베이징의 중축선은, 베이징을 베이징으로 만드는 핵심 요소다. 1950년대 교통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철거되었던 외성의 남문 영정문이 2004년에 복원된 이유도 중축선의 상징성을 되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베이징의 중축선은 베이징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미래와도 관계가 있다. 베이징은 ‘시대의 축’ ‘역사의 축’ ‘미래의 축’이라는 콘셉트로 도시계획을 수립했는데, 기존 중축선에 해당하는 ‘역사의 축’을 중심으로 그 북쪽이 ‘시대의 축’이고 그 남쪽이 ‘미래의 축’이다. 시대의 축은 올림픽공원을 중심으로 하는 스포츠·레저 지구다. 미래의 축은 박물관·예술관·도서관·콘서트홀 등의 문화 및 녹색 자연과 어우러진 첨단비즈니스 지구다.

  중축선은 베이징올림픽과 더불어 북쪽으로 연장되었다. 베이징올림픽의 랜드마크인 냐오차오와 수이리팡(水立方, 수영경기장)이 바로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중축선의 양쪽에서 서로 마주하고 있는 타원형의 냐오차오와 사각형의 수이리팡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전통 관념을 상징한다. 땅 위의 옛 건물은 사라져갔지만 중축선만큼은 이렇게 건재하며 베이징을 베이징으로 만들어준다.

 

 

중축선의 전통 위에서 만나는 과거·현재·미래

  베이징의 중축선을 두고 량쓰청(梁思成)은 이렇게 말했다. “8킬로미터에 달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길고 가장 위대한 남북 중축선이 베이징성 전체를 꿰뚫는다. 베이징 고유의 장엄하고 아름다운 질서는 중축선이 세워짐으로써 생겨났다.” 장엄하고 아름다운 질서, 베이징에는 모든 것을 질서 지우려는 의지가 깃들어 있다. 이 ‘질서’의 전통은 꽤나 오래되었다. 베이징성 자체가 유가사상에 바탕을 둔 󰡔주례(周禮)󰡕의 이념에 따라 설계되지 않았던가.

  베이징은 몰라보리만큼 변했으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변하지 않았다. 마오주석기념당, 인민영웅기념비, 천안문, 자금성, 냐오차오, 베이징 중축선상의 이 기념비적 건축들은 변하는 중국을 말해주는 동시에 변하지 않는 중국을 대변한다. 중축선이 부여한 질서의 전통 위에서 중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만난다. 중축선 위에 둥지를 틀은 냐오차오에는, 중심에서 세계를 품고자 하는 중국의 바람이 깃들어 있다. 과거 오랫동안 세계의 정점에 있었던 중국, 얼마간의 추락을 겪은 뒤 중축선 위 둥지에서 자신의 비상을 알린 중국은 바야흐로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높이 비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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