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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연재] 천잉전의 『시골선생님』(2)

 

시골선생님(2)
(鄕村的敎師, 1960)

 

 

천잉전(陳映真)

 

  사월이 되어, 우진샹은 모두 합쳐봐야 스무 명도 되지 않는 학생들이 있는 산촌 초등학교를 담당하게 되었다. 오 년 동안 전쟁을 겪으며 그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가망 없는 비참함을 목격하고 인간은 그저 싸움을 좋아하고 싸움을 필요로 하는 생물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운명을 가르는 전쟁, 폭파, 시체, 폭력 속에서 지식과 이상은 과연 무엇이 되었는가? 하지만 전쟁이 마치 한바탕 꿈처럼 지나가고, 불가사의하게도 살아남아 이 평화롭고 소박한 산골 마을로 돌아와 이 손바닥만 한 학교를 맡게 되면서, 우진샹의 소지식인 열정은 잿더미 속에서 다시금 불타오르게 되었다.

  전쟁 전에 있었던 열정이 어느덧 모두 되살아나게 되었다. 그리고 오 년의 전쟁을 겪으며 이들 젊은 시절의 신앙과 심지어 깊숙이 숨겨진 면모들이 조금씩 깨어나게 되었다. 공부를 하게 되면서, 젊은 시절의 그는 항일 활동에 비밀리에 참여하곤 했다. 공부를 하게 되면서, 그리고 빈궁한 농촌 출신이었기에, 이들 노동자들에게 그는 깊은 감정과 친절한 동정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공부를 하고 활동을 했기에, 예리한 안목을 지닌 일본 관원은 보르네오 전선으로 그를 배치했다. “그래도 나는 돌아오고 말았어.” 그는 중얼거리며 웃음을 터뜨렸고 깍지를 끼고 우두둑 우두둑 소리를 손가락 소리를 냈다. 폭파, 사망의 소리와 악취, 열대 지방의 귀신처럼 어른거리는 삼림과 화염처럼 작열하는 태양이 또다시 기계적으로 그의 몽상 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이 새로운 낙관과 속세의 열정 이전에 사람을 태우는 이런 비참함은 그저 간단한 기억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그의 마음속에는 그가 평생 처음 느껴보는 조국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지금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야.” 그는 혼잣말을 하며 초등학교의 크고 투명한 창문으로 맞은편 산비탈을 바라봤다. 계단과 같은 논, 산비탈에서 일하는 등이 태양에 검게 그을린 농민들, 무너졌지만 아직 생기가 남아있는 농가가 창문 아래 산자락에 펼쳐졌다. 사월의 바람은 초여름의 열기를 품고 산들산들 창문으로 불어들고, 다시 뒤편 창문으로 불어나갔다. 모든 것이 좋아졌어라고 그는 속으로 말했다. 여긴 바로 우리의 나라이고 우리의 동포들이야. 적어도 앞으로 관원들 핍박이란 없는 거지. 개혁은 희망이 있고, 앞으로 모든 것이 좋아질 거야.

  개학하여 새까만 어린 학생 열일곱을 보면서 우진샹은 감격에 겨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그들을 사랑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어렸기 때문이다. 그들을 사랑했다. 왜냐하면 옷차림이 남루하고 지저분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감정은 단순히 사랑이라 말할 수는 없어, 심지어 이들 조그만 농민의 아이들을 존경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들을 보고 웃고 있자니 어떻게 해야 자신의 열정을 그들에게 표현할 수 있을까 도통 알 수 없었다. 이들 세대가 자기 자신과 사회에 대한 의식을 수립할 수 있기를 바랐고, 다음과 같은 열정을 품었다. 그들이 개조의 책임을 자부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 때, 이들 죽은 듯한 눈빛과 생기 없는 학생들 앞에서 어떻게 그들의 언어로 그의 선의와 의지를 설명해야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는 손짓을 해가며 입술에 침을 바르며 적당한 비유와 문구를 찾아 헤맸다. 그는 강단 아래로 내려가 그들과 다정하게 말을 나누고 눈에 불을 켜고 말해봤지만 어린 학생들은 도통 쭈뼛쭈뼛하며 생기가 없었다.

29 오월 하순, 국정교과서가 배송되었다. 우진샹 선생은 여전히 무척 열심이었다. 만약 전쟁이 바꿔놓은 것이 바로 이 개혁의 자유와 기회라 한다면 인류에게 어쩌면 진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했다. 오월의 바람이 불어와, 그는 이미 이 언덕 위 바람 소리와 대나무 줄기가 움직이는 소리에 익숙했다. 산비탈 능선에는 나무들만 줄지어 늘어서 오월의 태양을 맞으며 바람 속에 흔들리고 있었다. 이 세상은 언젠가 좋아지고야 말거야, 그는 생각했다.

 

3

  둘째 해 입춘이 되자, 타이완의 소요와 중국 동란의 여파가 이 적막한 산골 마을까지 밀려왔다. 새로운 격정이 다시금 이 단출하지만 세평을 즐기는 마을 사회로 흘러들었다. 모두들 토론을 벌이거나 사건을 침소봉대하여 떠벌리고 다녔다. 이 때 우진샹 선생은 조금씩 내적 혼란을 겪으며 몽롱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는 국내 문학을 부지런히 읽었다. 그가 현재의 폐단과 문제를 가지고 조국을 바라보지 않게 된 것은 이때가 난생 처음이었다. 과거에는 중국의 우매함과 불안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골똘히 사색하곤 했지만, 지금은 이러한 우매함과 불안이 중국을 중국답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이와 같은 이유로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것에 대해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친절함마저 느끼게 되었다. 그는 하루 종일 「마치 한 송이 가을 해당화처럼」의 중국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하천 하나하나를 보고 산세 하나하나를 보고 도시 이름 하나하나를 보았다. 혼탁하고 호탕한 하천 위에 떠있는 삼판(三板), 용이 잠들어 있고 흰 수염을 기른 신선이 살고 있는 신비한 산봉우리들, 석판으로 길을 낸 도시, 빼어난 해서체로 적어 간판을 내건 도시, 병들고 앙상하게 마르고, 분수를 알지만 아둔하고, 건방지지만 선량하며, 참을성이 있지만 고집불통인 중국인들이 하나씩 하나씩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이들 감정 가운데 그는 마을 사람들이 느끼는 타이완 사람으로서의 불만은 없었지만, 이들 감정 가운데 혈연으로부터 비롯된 친절한 감정 이외에 크고도 애매한 뭔지 모를 비애를 느꼈다. 중국인이 이렇다니! 과거와 현재 국내의 동란을 상상하니 민국 초기 러시아 군복을 입은 혁명군 장교가 보이는 듯했다. 군복이며 입고 군모를 쓴 모양이 풀을 발라 종이를 붙여 놓은 것 같은 병사들, 봉화며 잿더미. 이들 동란도 역시 중국을 중국으로 만드는 까닭일 것이다. 이는 일종의 비애로, 몽롱하고 애매할지라도 중국식의 비애이고 시종일관 하나의 비애인 것이다. 그의 지식이 일종의 예술로, 그의 사색이 일종의 미학으로, 그의 사회주의가 문학으로 변했기에, 그의 애국 열정은 그저 일종의 가족적이고(중국식이다!), 혈연의 감정일 뿐인 것이다.

  소아병이다! 그는 소리 없이 외쳤다. 이 외침은 자신을 좀 화나게 만들어 웃음이 나왔다. 소아병이야, 소아병! 무슨 상관있을까? “소아병”이라 해도, 그에게는 지극히 순후한 문학적 의미가 있었다. 그의 게으름, 모친을 의지하는 것, 공상을 일삼는 성격, 개혁의 열정은 그에게 그저 꿈 속 영웅주의의 일부일 따름이었다.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우진샹은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인! 그는 웅얼거렸다. 창밖에 계단식 논에서 일하는 농민이 갑자기 중국의 유구한 과거와 연결되어 중국인의 또 다른 종류의 필치를 띠며 눈부신 햇빛 속에서 노동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여름으로 접어들자 대륙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속속 눈에 띄어, 흰색 풀로 만든 모자를 쓰고 흰색 남방셔츠와 짙은 남색의 부드럽고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다리에는 목이 긴 흰 양말과 검정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 이는 생각하고 있던 중국인과는 좀 거리가 있었지만 이런 거리쯤이야 아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철퇴하던 그 해, 군부대 하나가 마을 밖 사당에 머물렀다. 그는 일부러 그들을 보러 갔다. 그들의 어색한 각반, 무기의 기름 냄새, 병사들의 체취, 군대식사의 특별한 냄새, 똑같은 물건들이 하나같이 표준이 있었다. 그들을 보니 마치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중국의 전쟁을 보는 듯 했다. 어떻게 되던 상관없다는 표정을 그는 하나하나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오래되고 이상한 중국이라니, 그는 혼잣말을 했다. 시골의 도로를 걸으니 일종의 중국적 나태함을 느낄 수 있었다. 중추절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밤이 되자 하얗고 투명한 둥근 달이 서산 오른편 위에 걸려 있었다. 논에는 물이 가득하고 석양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이제 또 모내기 시절이다. 모내기를 한 논에 파릇파릇 돋아난 싹은 저녁 바람 속에 살며시 흔들렸다. 우진샹은 담배를 피우며 몽롱한 상태로 귀향하기 전 부대 내에 모여 있을 때 봤던 남방의 저녁 안개를 생각했다. 분홍빛 저녁 안개 속에서 뜬금없이 중국의 칠층 보탑이 생각났다. 그리고 지도 위에 중국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그는 문득 이렇게 오래되고 나태하며 건방떠는 중국을 개혁한다는 것이 정말이지 지난한 작업이겠구나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언젠가는 중국인이 모두 어깨를 활짝 펴고 자기의 형편을 개척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하고, 우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감히 웃음소리가 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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