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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다시 보기 14] 한우충동(汗牛充棟), 원작의 뜻을 훼손한 책들이 넘쳐나니 개탄스럽다

 

  지난 10년간 생활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정보를 얻는 방식도 과거와 달라졌다. 온라인상에서 정보를 검색하고 책도 보고 의견 교환도 한다. 책과 출판물을 둘러싼 환경 역시 엄청나게 변하다 보니 예전처럼 가방에 책이나 잡지 한두 권씩 넣고 다니던 시절이 참으로 오랜 과거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종이책과 출판물이 정보전달의 주요 수단이던 그 시절, 소장한 책의 양과 지식의 양을 등가시하던 때가 있었다. 서가를 가득 채운 책과 서향 은은한 서재는 지식탐구의 열정과 상징처럼 보여서 멋스러웠다. 물론 책을 사서 모으는 행위가 실제 독서 여부와는 무관하기도 하다. 그러나 서점에서 집어든 책을 집으로 돌아와 서가에 꽂을 때의 만족감이 간혹 독서 그 자체보다 더 클 때도 있다. 그래서 이름 난 독서광도 있지만 도서 수집으로 알려진 장서가들도 많다.

 

 

책을 수집하고 보관하다

  집안에 책이 많은 것을 표현할 때 한우충동이라는 말을 쓴다. 한우충동은 책을 수레에 실으면 수레 끄는 소가 땀을 흘리고(汗牛), 쌓아놓으면 대들보에까지 찰 정도로(充棟) 책이 매우 많음을 이르는 말이다. 장서가 많다는 긍정적인 표현이다. 특히 지식과 정보의 유통이 제한적이었던 고대에는 많은 장서가 곧 일종의 권력이었다.

 

[그림1] 벽면을 가득 채운 서적들

 

  땀 흘리는 소와 집안의 대들보를 언급한 생생한 묘사는 당(唐)의 문장가 유종원(柳宗元)이 쓴 <육문통선생묘표(陸文通先生墓表)>에 보인다. 이 글은 유종원이 육문통 사후에 그의 생애를 기리면서 자신의 감회를 묘비에 새긴 것이다. 육문통은 당대 역사학자인 육질(陸質, ?-805)의 시호인데, 그는 공자사상과 『춘추(春秋)』에 정통한 인물이었다. 한우충동이라는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표현인지, 지금의 뜻과 같은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공자가 춘추를 지은 지 1500년이 지났다. 춘추에 전()을 지은 저자 다섯 명의 이름이 전해지는데 현재는 그 중 세 명의 저작을 주로 활용한다. 이들 외에도 죽간을 손에 쥔 채 이리저리 생각하여 주소(注疏)를 지은 학자가 매우 많다. 그들은 공격적이고 서로 헐뜯으며 분노에 차있으며 말로 서로를 공격하고 숨은 일을 들추어낸다. 이런 목적으로 쓴 그들의 책은 집에 두면 대들보까지 가득차고, 집 밖으로 나갈 때는 수레 끄는 소와 말이 땀을 흘릴 정도로 많다.(其爲書, 處則充棟宇, 出則汗牛馬.) 공자의 원뜻에 맞는 책이 숨겨지기도 했고 원뜻에 어긋나는 책이 세상에 드러나기도 했다……(중략) 심하다, 성인 공자의 뜻을 알기 어렵게 되었구나.

 

 

저자의 원뜻을 왜곡하는 책들

  유종원은 공자의 뜻을 이해하고 저서를 펴낸 육문통과 달리, 『춘추』에 담긴 공자의 원래 뜻을 왜곡하고 임의로 재단해서 책을 써내고 그 책으로 또 상호비방하는 저자들을 비판했으며 동시에 그런 책들이 한우충동의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개탄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나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책들보다 위험한 것은 그 저자들인 듯싶다. 이 문장을 보면 한우충동이라는 표현이 원래는 세상에 쓸데없는 책이 너무 많고, 원저자의 뜻을 훼손하는 이들로 넘쳐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림2] 장서각 현판

 

  이런 현상은 과거에는 물론이고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본뜻은 사라지고 왜곡된 뜻만 살아남아 세상에 유통되는 현상, 원작은 제쳐두고 곡해한 책들끼리 서로 다투고 폄훼하는 상황, 그리고 진위와 정사(正邪)를 판별할 안목이 없는 시대. 이런 심각한 세태에 무감각해진 세상을 향해 일갈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용기 있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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