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성’ 담론의 성립 ― 루쉰과 『지나인 기질』의 관계를 중심으로(8)
(“國民性”話語的建構―以魯迅與『支那人氣質』之關係為中心)
리둥무(李冬木)
*李冬木 著, 『越境―“魯迅”之誕生』, 杭州: 浙江古籍出版社, 2023, 295-483.
(2) 메이지 문인 기억 속의 하쿠분칸
우부카타 도시로(生方敏郞, 1882-1969)의 『메이지 다이쇼 견문사』(明治大正見聞史)는 어느 민간 인사의 시각으로 메이지, 다이쇼 역사의 의의를 기록한 측면에서 볼 때 일본 근대 문학사에서 흔치 않게 보이는 수필 명작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은 그 어느 정사(正史)도 대신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녀, 오늘날에도 예를 들어 도쿄도(東京都) ‘에도 도쿄 박물관’(江戶東京博物館)의 해설 문구에 『메이지 다이쇼 견문사』의 내용이 자주 등장하여 산증인으로 증언하고 있다. 이 책은 풍자적인 어조로 전혀 가감 없이 ‘하쿠분칸’을 그려냈기에 하쿠분칸이 당시 어느 청년 문인의 눈에 어떤 존재였는지를 설명하는 데 더 나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청일전쟁’ 이후 도시를 이야기할 때 ‘도시’와 ‘시골’ 사이에서 하쿠분칸에서 나온 출판물이 하나의 ‘교량’이 되었다. “도시에는 영광으로 충만한 군인들이 금테를 두른 예복을 두르고 휘황찬란하다. 도시에는 벼락부자가 늘고 있다. 기업이 흥성하고 경제계가 원기 왕성하고 신문명이 요코하마 부두에 상륙한다. 우리는 비록 시골에 있지만 신문(시사와 국민)과 하쿠분칸의 잡지를 읽고 전후 신기운과 신문명의 소식을 듣고 도시 문명에 현기증을 느껴 도시 하늘로 나아가길 동경했다.”
그리고 “하쿠분칸의 잡지”를 읽고 나아간 도시 젊은이는 20세기 초 일본 시골 각지에서 도쿄로 올라와 공부할 때 이후 상이한 시대 분위기 속으로 신속히 녹아들었다.
메이지 34년(1901)의 일로 기억되는데, 히비야(日比谷)의 공터에서 법학원 학생과 제생학사(濟生學舍) 학생 양쪽에서 백 명씩 나와 패싸움을 벌이려 했고, 경찰도 난감한 형편이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도 다친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기억한다. 어쨌든 한 명도 죽지 않았다. 마침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사이에 끼어 있던 이 시대 학생들은 아주 강렬한 의용봉공(義勇奉公)의 국가 관념이 있었고 오늘날의 학생들과 비교하면 천지 차이지만 싸움하는 데는 별로 배짱이 없었고 순박하고 순진하며 얼굴이 두껍지 못하고 정에 약했다. 아마 그때만 해도 불량한 행동을 영화 같은 실물로 전수하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한니발, 넬슨, 나폴레옹, 워싱턴, 칭기즈칸을 꿈꿨지, 악한이 되어 탐정과 겨루는 꿈을 꾸는 사람은 설마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영화와 제국의회(帝國議會)가 풍속과 교화면에서 청년들에게 어떤 해독을 끼쳤는지 성찰해 볼 일이다.
여기서 말하는 20세기 초 도쿄의 학생들, 시대로 보자면 메이지 30년대 학생들이 이후 다이쇼 시대 학생들과 비교하는 글귀 가운데 출현하고 있다. 작가의 의도를 보자면 그들의 “의용봉공”을 들어 작금 다이쇼 시대 세태가 갈수록 볼품없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 메이지 30년대 학생들이 꿈꿨던 영웅이 구체적으로 누구인가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1821),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 칭기즈칸(1162-1227)은 지금 사람도 잘 아니 더 말할 필요 없고, 한니발(Hannibal, 약 기원전 247-기원전 183 혹은 182)은 카르타고(Carthage)의 명장으로 기원전 218년 시작된 로마와의 전쟁(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연이어 로마 군대를 격파하고 이탈리아 남부 칸느(Canne) 전투에서 소수로 다수를 이긴 유명한 사례이다. 이 인물은 서방 전적에서 매우 유명하지만 근래 사람들이 익숙한 리들리 스콧(Ridley Scott) 감독의 미국 동명 영화 『한니발』(Hannibal, 2001)의 주인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1759-1805)은 영국 해군사에 유명한 장군으로 지금 런던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에 그의 기념비가 있어, 1793년 이후 프랑스와 전투 중 차례로 오른쪽 눈과 오른쪽 팔을 잃고, 1798년에는 프랑스 함대를, 1805년에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 함대를 전멸시켰고 본인은 이후 전투 중 전사하고 말았다. 이 인물은 근래 중국에서 메이지 시대 일본 시절 그랬듯 군사를 좋아하는 애국 청년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위에서 기술한 것처럼 이들 메이지 학생의 몽상 속 영웅은 우부카타 도시로의 기억 속에 남았으니, 그들이 꿈을 꾸게 만들고 그들 기억에 남았던 공통의 저본은 바로 하쿠분칸 동시대의 출판물이라 하겠다. 메이지 23년, 즉 하쿠분칸 설립 4년째 되던 해인 1890년 3월부터 4월까지 하쿠분칸은 위인 총간 시리즈를 출판하여 ‘세계백걸전’(世界百傑傳)이라 불렸다. 제1편부터 제12편까지 모두 12권이고 매 권마다 약 300쪽에 정가는 당시 일본 돈 12전, 작가는 기타무라 사부로(北村三郎), 즉 가와사키 시산(川崎紫山, 1864-1943)으로 상술한 영웅들은 모두 이 시리즈에 들어 있어, 칭기즈칸(테무친)이 제1편, 나폴레옹과 넬슨은 제3편, 한니발은 제8편, 워싱턴은 제11편에 수록되었다. 그리고 1899년 1월 출판된 36권 본의 ‘세계역사담’(世界歷史譚) 시리즈 총서에서 이들 인물들은 다시금 단권으로 분류되어 배열되었으니, 그 순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오마치 요시에(大町芳衛, 1869-1925) 저, 『한니발』(ハンニバル, 제5책), 시마다 분노스케(島田文之助, 생졸년불상) 저, 『넬슨』(제8책), 후쿠야마 요시하루(福山義春, 생졸년불상) 저, 『워싱턴』(제13책), 도이 반스이(土井晩翠, 1871-1952) 저, 『나폴레옹』(ナポレオン, 제22책), 오다 사부로(大田三郎, 생졸년 불상) 저, 『칭기즈칸』(제24책). 이로부터 판단컨대 메이지 30년대 젊은 학생들이 가졌던 세계 위인들에 관한 기본 지식은 하쿠분칸의 위에 기술한 출판물과 직접 관계가 있어, 하쿠분칸에서 어느 시대가 꿈을 꾸는 영웅들에 대한 소재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우부카타 도시로가 당시 꿈꾸던 영웅들을 서술할 때 하쿠분칸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처럼 하쿠분칸이 침투력이 강하고 파급력이 컸다고 설명할 수 있다.
‘아이스크림’(氷激淋)에 관한 재미난 일화는 하쿠분칸의 유명인이 당시 대중에게 어떤 화제의 인물이었는지를 넌지시 말해준다. 우부카타 도시로는 소절 하나에서 전문적으로 메이지 학생의 음식과 메이지 학생이 ‘먹는 것’에 집착하는 바에 관해 이야기한다. “학생의 최대 쾌락은 당연히 먹는 것이다.” 이렇게 먹는 것을 이야기하는 맥락 가운데 자연스레 음식 종류와 계절 그리고 고금의 대비에 관해 소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 여름이 되면 얼음물이 먹고 싶어진다. 특히 그때는 아직 전차가 없어 어디를 가나 항상 두 다리에 의지하여 한발 한발 걸어야 했기에 걷다가 입이 타고 혀가 마르다 보면 항상 길가 얼음집으로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은 학생들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비록 아이스크림이 그때 이미 상류 사회 일부에 소개되었지만 보통 사람들은 알 길이 없었다. 문학가 오하시 오토와는 하쿠분칸의 사위로 어느날 고요칸(紅葉館)에서 주최한 연회에서 어쩌다 서양 요리에 쓰는 조미료를 아이스크림에 뿌려 먹었다. 이러한 실수담은 지금 들으면 우습지만 당시 어찌 오토와씨만 그랬겠나, 이런 민망한 일은 누구에게나 흔히 일어날 수 있었다.
앞의 절에서 『태양』 잡지와 ‘겐유사’를 소개할 때 ‘오하시 오토와’라는 이름이 나온 적 있다. 이 사람이 저우수런, 저우쭤런 형제와 함께 공부한 적이 있기에(뒤에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함), 그 이력을 적어 보면 다음과 같다. 메이지 시대 소설가, 잡지 편집인이면서 출판업을 했다. 옛날 성은 와타나베(渡部)이고 본명은 마타타로(又太郞)로 우젠국(羽前國, 지금 일본 야마가타현[山形縣]) 사람이며 문학을 좋아하여 도쿄로 상경하여 겐유사 동인이 되어 와타나베 오토와(渡部乙羽)라는 이름을 썼다. 1893년 8월 하쿠분칸에서 작품을 출판하기 시작하여 같은 해 출판한 ‘단편소설⋅메이지 문고’ 18편 가운데 제9편이 그것이고, 1894년 오자키 고요의 중매로 하쿠분칸 주인 오하시 사헤이의 딸과 결혼, 사위 겸 양자가 되어 오하시로 성을 고쳤다. 하쿠분칸에서 출판한 단행본은 17종이 있고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정치소설 『누란 동양』(累卵之東洋, 1898)과 기행문집 『천산만수』(千山萬水, 1899), 『속천산만수』(續千山萬水, 1900)이다. 『하쿠분칸오십년사』에 “오토와, 오하시 마타타로 선생의 진입”, 오하시 오토와 선생의 해외여행과 ‘오토와 십저’(乙羽十著)“, ”오하시 오토와 선생의 죽음“으로 따로 소절을 안배하여 그 사적이 비교적 상세하게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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