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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국민성’ 담론의 성립 ― 루쉰과 『지나인 기질』의 관계를 중심으로(9)

 

 

국민성’ 담론의 성립 ― 루쉰과 『지나인 기질』의 관계를 중심으로(9)
(“國民性話語的建構以魯迅與『支那人氣質』之關係為中心)

 

 

 

리둥무(李冬木)
*李冬木 著, 『越境―“魯迅”之誕生』, 杭州: 浙江古籍出版社, 2023, 295-483.

 

 

  (3) 우부카타 도시로의 『메이지 다이쇼 견문사』와 루쉰의 유학 시절

  돌아보니 이제까지 거듭 인용한 우부카타 도시로와 그의 『메이지 다이쇼 견문사』에 대해 설명해야겠다. 이 장부터 시작하여 이 사람과 이 책에 대해 소개하겠는데, 이로써 하쿠분칸을 설명하는 것 외에 당시 청나라 유학생 저우수런이 『지나인 기질』과 조우하고, 더 나아가 ‘근대’와 조우하는 것에 대해 헤아릴 수 있고 비교적 완전한 배경을 찾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할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개인의 견문사로부터 일본 메이지 다이쇼 시대의 표지 사항들을 읽어낼 수 있으며, 근대 일본 특정 전환기의 역사 경험과 기억을 개체화한 표현을 볼 수 있다. 우부카타 도시로는 루쉰과 마찬가지로 문학가였고 여러 해 동안 신문사 기자를 지낸 뒤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기사 작성의 가장 큰 특징은 구어로 기사를 적어 근대 신문 구어체의 창시자 중 한 명이며, 소설의 특징은 해학과 유머로, 한 지식인의 문명에 대한 기본적인 비판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메이지 다이쇼 견문사』는 비록 소설이 아니지만 일본 근대 문명에 관한 수필 명작이며 우부카타 도시로는 이 책으로 역사의 서술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음은 물론 자신의 사명을 훌륭하게 완수해 냈다. 필자에게 있어서도 이 견문사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루쉰의 유학 환경과 시대 분위기를 객관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최고의 텍스트를 드디어 찾았다는 생각이다.

  역사적으로 격차가 있고 시간이 아련하게 흘러 오늘날 어떤 사료를 발굴한다 해도 연구 대상이 경험했던 역사적 실감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유학시절과 관련하여, 루쉰은 「후지노 선생」(1926)을 제외하고는 완전한 글이 없고, 간혹 떠올리곤 하지만 그 기록은 제한적이다. 이에 비해, 저우쭤런의 당시 일기와 후에 쓴 유학생활에 대한 회고는 보기 드문 기록이라 할 것이다. 일본에서는 20세기 70년대 중반 이후, 루쉰의 유학시절과 관련된 자료를 대규모로 조사했고, 일부 중일 학자들도 상당히 세밀하고 심도 있게 조사연구를 했지만, 전체적으로 위의 세 가지 방면에 있어 자료들은 단편적이고 상호 간의 연관성은 후세 사람들의 상상에 의해 채워져야 했기에, 시대의 완전성을 확립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분위기’로 불리는 실감을 파악하기란 지난하다. 루쉰의 기록이 한계가 있음은 말할 나위 없고, 저우쭤런은 형보다 4년 늦게 일본에 유학하여 서로 겹치지 않는 경력이 있고, 일본 학자들의 조사와 발굴은 비록 성과가 풍성하더라도, 번역이 필요한 것을 포함하여, 이 자료들을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더욱이 그것들을 하나의 유기적인 역사 전체로 연결하자니 더욱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부카타 도시로는 참조 체계로서 특이하다 할 것이다. 1882년 일본 군마현(群馬縣)에서 태어나 루쉰보다 한 살 어린 루쉰의 동시대인이다. 1898년 도쿄의 친척 집으로 들어가 중학교에 해당하는 메이지학원(明治學院)에 다니기 시작해 4년 뒤인 1902년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영문과에 입학해 영문학과 불문학을 전공했다. “당시는 독일 만능 시대라 불문학을 전공자는 매우 적었다”고 한다. 모두 알다시피 저우수런이 같은 해 도쿄에 유학하여 입학한 곳은 고분학원이었다. 우부카타 도시로는 메이지 39년 곧 1906년 졸업했고 그의 말에 따르자면 만 8년의 학창시절을 보냈고, 적어도 시간 규정상으로는 이토 도라마루(伊藤虎丸)가 말하는 가장 표준적인 “메이지 30년대” 학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이 바로 우부카타 도시로와 ‘메이지 30년대’의 동시대성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그와 유학 시절의 저우수런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접점을 결정하게 된다. 그들은 서로를 알지 못했을 수 있지만 우연히 서로 출현한 공통점이 있어, 그들이 같은 시대에 속하고 같은 시대의 교양과 함의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필자는 이러한 동시대 문인의 공통성이 이후 루쉰과 일본 메이지 30년대 사이의 관계를 무엇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앞에서 우부카타 도시로를 소개하며 메이지 30년대 학생들의 마음에 공유된 영웅들이 사실상 하쿠분칸의 출판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지적했다. 여기서 저우수런이 이 지식 기반의 외부에 있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마라시력설」(摩羅詩力說, 1908년 2-3월)에서 ‘바이런’을 언급하며 ‘나폴레옹’과 워싱턴과 동급의 영웅으로 그를 바라봤는데, “바이런은 나폴레옹이 세계를 파괴한 것을 좋아했고 워싱턴이 자유를 위해 싸운 것을 사랑했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우부카타 도시로가 기록한 역사 중에는 루쉰도 당시 겪었지만 기록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므로 그들 사이에 여러 크고 작은 키워드를 공유하는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공유했고, ‘하쿠분칸’과 ‘마루노치’(丸善) 서점을 공유했고, ‘20세기’라는 동경과 희망으로 충만한 화제를 공유했다. 그들은 같은 교복을 공유하고, ‘우윳집’(牛奶屋)과 같은 상표의 간식과 담배를 공유하고, 일세를 풍미한 정치소설, 과학소설과 이후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작가와 작품도 공유했다…… 이렇게 공유성이 있기에 이 책에서 앞으로 나올 문장에서 수시로 우부카타 도시로를 인용하여 루쉰에 대한 참고로 삼는 결정적 이유이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하쿠분칸으로 돌아가려 한다.

 

  (4) 청일전쟁 시기 하쿠분칸 출판물

  하쿠분칸의 출판 사업이 메이지 시기 신속히 발전한 것은 당연히 시대 계몽의 요구에 순응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나온 출판물과 이를 만든 수많은 계몽 사상가, 평론가, 학자, 문학가, 번역가, 그리고 각 분야 저술가와 메이지 계몽 시대의 관계를 탐구하는 것은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두세 마디 이야기한다고 해서 전부를 이야기했다고 할 수는 없다. 여기서는 두 가지만 지적하려 한다. 하나는 『지나인 기질』이라는 책이 하쿠분칸에서 나온 출판물의 하나로 동시대와 맺고 있는 관련성이다. 다른 하나는 적어도 이 책의 시야에서 하쿠분칸의 일부 시대 교과서 성질을 가진 계몽 도서가 중국에도 동시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모두 알다시피 메이지 시대 일본은 두 차례 대규모의 대외전쟁을 치러서 첫 번째는 1894-1895년의 ‘청일전쟁’과 1904-1905년의 러일전쟁이다. 그 중 첫 번째 전쟁은 중국과 일본 양국 근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지식계는 패전의 충격으로 각성하고 변법유신을 실행할 필요성을 깨닫고 이제껏 ‘손바닥만 한 나라’라고 불리던 일본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본은 ‘국운을 건’ 전쟁을 통해 근대국가의 실력을 키워 군국주의의 노정으로 큰 걸음을 내디뎠다.

  이 전쟁이 중국 지식계에 미친 충격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통스럽기에 그때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저우쭤런이 회고하며 적길, 그들의 아버지 세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 전쟁의 동향을 이야기했다 하니 당시 중국의 일반 독자들이 전쟁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 근대 지식계의 선각자들은 그저 ‘분통해’ 하지만은 않고 4,000년의 멍에를 내려놓고 청일전쟁 패전을 기화로 ‘우리에게 총을 쏜 양놈’을 ‘자존심을 굽히고’ 배우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무술변법(戊戌變法)이 있었고 갑오전쟁 이후 대규모로 일본에 유학생을 파견하게 되었다. 량치차오의 명언, “우리나라 사천 년 큰 꿈을 불러일으킨 일은 갑오전쟁 때부터 실제로 시작됐다”가 말하는 도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전쟁은 청 말의 변혁을 일으켰고 또한 일본에 전례 없이 다가서게 만들어 중국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된 일본을 보았다. 필자 생각에 이는 중국 내 일반 언론이 크게 주목하지 않는 청일전쟁의 또 다른 이면이다. ‘저우수런’이라는 이름은 루쉰이 유학할 때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는 유학생 중 한 명이었다.

  전쟁에 대해 상술한 바와 같이 심지어 더욱 강렬한 관심은 일본에서도 출현했다. 이 점은 하쿠분칸의 출판물에서도 보인다. 전쟁이 터진 그해 8월 25일 하쿠분칸에서 창간한 『청일전쟁실기』(日淸戰爭實記)를 예로 들자면, 역사가가 기록하길, “당시 적개심이 최고조에 달한 전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여 본지가 나왔고 잡지계를 풍미하여 …… 판로가 흥성하니 잡지계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리고 당시 겨우 13살로 시골에서 자란 소년 우부카타 도시로는 당시 가장 재미있는 도서가 『평양포위공격』(平壤包圍攻擊)이라고 생각했지만 “하쿠분칸에서 이 전쟁에 대해 『청일전쟁실기』라는 잡지를 새로 출판했다”라고 기억할 정도였다. 『청일전쟁실기』가 당시 얼마나 영향력이 있었는지 알만하다. 이는 전쟁과 관련 사건을 전문적으로 보도한 잡지로 평균 한 달에 3기가 나와 메이지 29년(1896) 1월에 종간하여 모두 50기에 이른다. 사실상 바로 “청일전쟁이 하쿠분칸이 도약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고”, 이로부터 “청일전쟁 전후” 4년간, 곧 메이지 27년부터 30년까지(1894-1897) 하쿠분칸 발전에 있어 중요한 시기로 여겨진다. 앞에 절에서 언급한 몇 가지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 잡지가 모두 이 시기에 창간되었고 『청일전쟁실기』를 포함한 전쟁과 중국 관련 출판물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하쿠분칸오십년사』에서 ‘전쟁사와 전쟁 도서’로 언급한 것은 발행량이 아주 많은 전쟁실기 잡지 외에 24책으로 편성된 ‘만국전사’(萬國戰史) 총서가 있어 1894년 10월 발행을 시작해 매달 1권을 출판하고 1896년에 완간되었다. 이 총서 시리즈는 당시 출판계에서 전쟁사 도서 가운데 ‘백미’, 즉 ‘걸작’이라 일컬어졌다. 24책의 배열 순서와 서명은 다음과 같다.

 

제1편 『독불전사』(獨佛戰史), 제2편 『영청아편전사』(英淸鴉片戰史), 제3편 『나폴레옹전사』(拿波侖戰史), 제4편 『영불연합정청전사』(英佛聯合征淸戰史), 제5편 『트라팔가해전사』(トラファルガー海戰史), 제6편 『러시아터키전사』(露土戰史), 제7편 『미국남북전사』(米國南北戰史), 제8편 『프로이센오스트리아전사』(普墺戰史), 제9편 『나일해전사』(ナイル海戰史)(부록 코펜하겐해전사, 세인트빈센트해전사), 제10편 『폴란드쇠망전사』(波蘭衰亡戰史), 제11편 『크리미아전사』(クリミヤ戰史), 제12편 『인도잠식전사』(印度蠶食戰史), 제13편 『이탈리아독립전사』(伊太利獨立戰史), 제14편 『미국독립전사』(米國獨立戰史), 제15편 『그리스독립전사』(希臘獨立戰史), 제16편 『영미해전사』(英美海戰史), 제17편 『영국혁명사』(英國革命史), 제18편 『프랑스혁명사』(佛國革命史), 제19편 『프레드리히대왕7년전사』(フレデリツク大王七年戰史), 제20편 『30년전사』(三十年戰史), 제21편 『케사르폼페이오로마전사』(シーサルボンベー羅馬戰史), 제22편 『로마카르타고포에니전사』(羅馬加達格尔ピュニック戰史), 제23편 『알렉산더대왕통일전사』(歷山大王一統戰史), 제24편 『그리스페르시아전사』(希臘波斯戰史)

 

  총서 외에 단행본의 경우도 참고할 수 있다.

  1894년 틍틀어 단행본 61종이 나왔고 중국과 관계된 것이 다음 4종이다. 『당송사대가문찬구소수간』(唐宋四大家文撰歐蘇手簡), 『신찬한어자인』(新撰漢語字引), 『속당송팔대가문독본』(續唐宋八大家文讀本)(『당송팔대가문독본』은 전 해에 출판).

  1895년엔 단행본 21종이 나왔고 절반이 전쟁 내지 중국과 관계가 있다. 『지나처분안』(支那處分案), 『지나근세사』(支那近世史), 『정청해군군가』(征淸海軍軍歌), 『해군병기설명』(海軍兵器說明), 『타이완』(臺灣), 『정청시집』(征淸詩集), 『지나남부회화』(支那南部會話), 『속사포』(速射炮), 『금세해군』(今世海軍), 『수뢰정』(水雷艇), 『미국남북전사』(米國南北戰史)(총서 외 단행본).

  1896년에 단행본 50종이 나왔고 전쟁 내지 중국과 관련된 단행본이다. 『청일전화군인귀감』(日淸戰話軍人龜鑑), 『공중군함』(空中軍艦), 『지나문명사론』(支那文明史論), 『역산대왕통일전사』(歷山大王一統戰史)(총서 외 단행본), 『30년전사』(三十年戰史)(총서 외 단행본), 『지나인 기질』, 『금치훈장』(金鴟勳章)(전쟁소설), 『로마, 카르타고, 포에니 전사』(羅馬, 迦太基, 布匿克戰史)(총서 외 단행본).

  1897년 단행본 76종이 나왔는데, 『천자문』(千字文) 등 13종의 서첩 외에 중국과 관련된 것은 오직 『황해대해전』(黃海大海戰), 『청일전사』(日淸戰史)(7책) 2종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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