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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변강학 9] 아프가니스탄과 중국 변강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되었다.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여 미국 편에 서는 것을 저지하기 위함이라는데, 과거 구소련의 영토를 수복하겠다는 속셈도 있을 터이다. 요즘은 전쟁이 일상화되어 가는 느낌이 든다. 세계사에 기록된 역대 숱한 전쟁도 전쟁이려니와 현대에 들어와서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걸프전, 중동전쟁, 이라크전, 아프간전쟁, 미얀마 내전 등등 줄줄이 이어지는 전쟁 관련 소식들이 이제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 가는 중이다. 하긴, 어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 많은 무기를 만들어 놓고 고철이 되게 할 순 없으니, 적극적으로 소비하려면 전쟁이야 불가피할 것이다. 군수산업이 문명의 진보와 함께 발달하면서 무기의 종류와 성능도 나날이 고도화되고 있다. 작년 여름 미군이 20년 만에 아프가티스탄에서 철군하기로 발표하고, 8월 15일 아프간이 탈레반의 수중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영제국, 러시아제국에 이어 아메리카제국도 아프간의 수렁에서 철수하게 된 곳. 가히 ‘제국의 무덤(Graveyard of Empire)’이라고 불릴만한 아프가니스탄을 보면 오늘 러시아가 침공한 우크라이나의 모습이 보인다. 우크라이나 국민과 시민들의 무고한 희생이 없기를 기도하며 이 글을 쓴다.

 

[그림1] 제국의 충돌-러시아와 영국

 

  먼 옛날 혜초(慧超, 704~787)와 고선지(高仙芝, ?~755)가 당나라 국적으로 파미르고원을 넘고, 탈라스에서 전투했던 곳이라고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의 와칸회랑(Wakhan Corridor). 이곳에 중국과 아프간의 74km 길이 국경지대가 있다. ‘영러 협상’(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1907년)의 결과로 페르시아 북부는 러시아에게, 아프간은 영국에게로 넘어갔다. 아프간이 영국 세력권으로 넘어간 것은 아프간이 인도를 보호하기 위한 완충구역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아프간 동북부 지역을 연장해서 중국과 맞닿는 길쭉한 회랑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러시아와 파키스탄-인도 사이의 완충지대(Buffer Zone), 바로 오늘날의 와칸회랑[瓦罕走廊]이다. 해발 약 4900m, 남북 16~22km, 동서 350km 길이의 이 길쭉한 골목이 향후 국제뉴스의 중심이 되지는 않을까? 국제정치의 화약고가 된 듀랜드 라인(Durand Line, 1893년, 약 2,640km)이 파슈툰족(Pashtuns)을 갈라놓고, 대영제국과 러시아제국의 중앙아시아 패권전쟁(일명 Great Game)이 급기야 오늘날의 탈레반을 낳게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림2] 와칸회랑

 

  2013년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시작과 함께 중국에게도 이 회랑은 무척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이와 같이 핑거(Finger)나 팬들핸드[후라이팬의 손잡이를 닮아]라고 불리는 지역이 전 세계에 몇 군데 더 있지만, 이 와칸회랑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는 곳은 없다. 미국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으로서는 새로운 제국이 되고픈 중국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와칸회랑은 닭의 목을 닮은 것도 같다. 작년 탈레반이 집권하면서 피난민들의 행렬이 세계 곳곳으로 이어졌고, 우리나라에도 특별기여자[조력자(국방부), 특별공로자(난민이 아님-외무부)라고도 불림. 법무부의 이 용어가 일반적으로 통용됨] 신분으로 390명 정도가 도착했다. 미러클이라는 작전명처럼 극적인 탈출이었다. 작년 8월 31일 미국과 탈레반의 20년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결되면서 약 12만 3천 명의 민간인들이 국외로 도피(逃避)/대피(待避)하였다. 미국행이 압도적으로 많아 8만 8천 명, 영국이 1만5천 명, 독일 5천 1백 명, 이탈리아 4천 4백 명 등에 비하면 한국으로 온 피난민 수는 가히 상징적이라 하겠다. 우리나라는 동의(東醫)와 다산(茶山) 부대가 의료와 공병(工兵)으로 참전했다가, 5년 10개월간의 임무를 완수하고―그중에는 탈레반에 의해 2명이 사살되기도 했던 한국인 인질 23명의 구출 작전도 있었음― 2007년 12월 철수한 바 있다. 아프간 난민은 이미 30년 전부터 주변국에 많이 퍼져있었다.

 

[그림3] 아프간 난민 정착지(1992.1)

 

[그림4] 아프간 탈출 러시(2021.8)

 

  탈레반(Taleban)은 1994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결성된 이슬람 수니파 무장 정치조직을 일컫는 다리어이다. 파슈트어로는 탈리반(Taliban)이라 부르며 파슈툰 부족단체에서 출발한 반군 테러 조직이기도 하다. 얼굴 없는 지도자, 애꾸눈 지도자로 불리는 물라(mulla, mullah, 스승) 무하마드 오마르의 학생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외세에 항거하며 부족들의 환호 속에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하기도 했다(1996~2001). 이들의 과격한 급진주의는 여성과 어린이들에 대한 이슬람 원리주의 원칙 적용으로 유명하며, 우상화 배격운동이라며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얀 석불을 파괴한(2001.3) 것으로도 악명을 떨쳤다. 미국의 아프간 침공(2001.10)에서부터 시작된 20년 아프간 전쟁으로 미군 2448명, NATO 및 기타 동맹국 군인 1144명, 아프간 민간인 4만7천여 명, 아프간 군인과 경찰 6만 6천여 명이 희생되었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완전히 철수를 마치기도 전에 탈레반이 정권을 잡았다. 외교가들은 미국이 20년간 1~2조 달러를 쏟아붓고도 탈레반을 축출하지 못한 채 철수한 것을 두고 여러 분석과 예측을 발표했다. 911 테러의 주모자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공습을 감행하여 응징한 후, 미국은 아프간 북부동맹에게 정권을 주었지만 실제로는 20년 동안 탈레반 세력을 키워 놓는 역할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과 관계된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 East Turkestan Islamic Movement)이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파키스탄 파슈툰족-신장 이슬람 세력이 힘을 합쳐 위구르족 독립운동이 거세질 것이란 관측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군사기지까지 만들어 ETIM 조직원들의 침투와 탈출을 막기 위한 병력을 배치했다. 아프간 북부 바다흐샨주에 위치한 이 와칸회랑은 북쪽으로 타지키스탄, 남쪽으로 파키스탄, 동쪽으로는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과 맞닿아 있다. 2008년 아프간에 주둔하던 미국과 영국이 전쟁물자 보급을 위해 이 지역의 개방을 요구했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이듬해부터 국경 10km 근처까지 도로를 새로 건설하고 이동통신 중계시설도 설치했다. 1개 대대 500여 명이 주둔할 수 있는 이 기지에는 헬기 이착륙장을 비롯해 각종 첨단 장비도 갖추어져 있다. 타지키스탄 쪽에도 군사기지를 설치했고, 파키스탄 쪽에도 군사기지 설치를 추진 중이다. 아프간 정부군의 산악 부대에 대한 지원도 강화하는가 하면, 아프간에 평화유지군 파병도 검토 중이라는 언론플레이도 있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이미 탈레반의 카불 입성 약 2주 전(2021.7.28.)에 탈레반 2인자[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톈진으로 초대하여 중아(中阿)의 우의가 돈독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 사진 한 장은 외신을 타고 전 세계에 퍼졌다. 탈레반은 ‘하나의 중국’ 정책에 반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며, 경제 재건이 시급한 아프간을 위해 중국은 적극적으로 힘을 보탤 것이라는 윈윈전략의 천명(闡明)이었다. 야구에서 고의 사구가 있듯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무기도 회수하지 않은 채 고의로 아프간 철수를 결정했다는 분석에 오판은 금물이라는 것을 보여준 사진이었다. 가뜩이나 신장 위구르족의 인권과 독립을 놓고 미중 간의 신경전이 한창일 때라 그런 분석도 일면 힘을 얻는 듯했지만 말이다.

 

[그림5] 바라다르와 왕이 부장(좌), 세계문화 유산 바미얀 석불(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뉴스로 잠시 조용하지만, 20년 만에 재집권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이 향후 중국과 어떤 행보를 이어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전 세계 양귀비 재배지의 80~90%가 아프간이란다. 이웃 나라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웬만한 곳에는 양귀비가 지천으로 깔린 것을 본 적이 있다. 산업의 85%가 양귀비 관련인 아프간, 테러와 마약의 대명사가 된 이 지역이 세계의 골칫거리가 아닌 중아 우의를 바탕으로 새로운 평화와 번영의 핫플레이스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새로운 제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이 이전의 제국들이 저지른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세계의 평화와 인민의 복리를 위해 떨쳐 일어나기를 또한 고대한다. ‘정치는 악하다’는 정치학의 원론에도 불구하고, 노암 촘스키의 ‘모든 전쟁은 도둑질’이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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