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청년들 가장 불신하는 나라 1위 중국” 작년 국내 모 일간지의 기사 제목이다. 인도 청년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77%가 가장 불신하는 나라로 중국을, 가장 신뢰하는 나라로 미국을 선택했다고 한다. 중국과의 국경 분쟁(52%)이 파키스탄과의 국경 분쟁(49%)보다 더 걱정스러우며, 나렌드라 모디 행정부의 정책 가운데 중국의 모바일 앱 사용 금지 결정이 86%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2021.8.15.). 인도의 주적은 파키스탄보다 중국이라는 얘기일까? 세계 인구 1위, 2위인 중국과 인도는 이머징 마켓인 브릭스(BRICS)의 대표 국가이면서도 최근에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설립된 쿼드(Quad: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4者安保對話) 문제로 복잡한 속내를 보이고 있다. 조만간 인도의 인구가 중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지도 꽤 오래되었다. 요즘 흔히 G2라 하면 경제적으로 미국과 중국을 언급하지만, 인구수로는 누가 뭐래도 중국과 인도이다. 문화적으로는 과연 어느 나라가 G2라 할 만한지 자못 궁금하다. 인더스 문명과 황하 문명을 주장하며 이 또한 중·인 양국의 문화전쟁으로 치닫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3~4천km의 국경선을 마주한 중인(中印) 두 나라의 평화가 동북아의 평화와도 밀접하게 관계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카슈미르에서는 ‘통제선/병참선(LoC: Line of Communications)’이라 불리는 위태로운 선이 사실상 파키스탄과의 국경선이고, 중국과는 무려 4060km에 걸쳐 경계를 맞대고 있다. 그러나 그중 3400km 구간에는 확정된 국경이 없다. ‘실질 통제선(LAC: Line of Actual Control)’이라는 모호한 선이 있을 뿐이다. 그 선을 사이에 두고 인도의 4개 주가 중국의 티베트 자치구와 접경하고 있다. 실질 통제선 가운데 중국령 악사이친과 인도령 라다크 사이 구간의 분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영국이 인도를 식민 통치했던 시절, 그때의 ‘존슨 라인’(1865년), ‘매카트니-맥도널드 라인’(1899년), ‘맥마흔 라인’(1914년) 등 영국이 멋대로 주변국들과 협상해 그은 선들이 뒤죽박죽 얽혀, 독립 이후 인도의 불만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식민 통치의 폐해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겪은 우리로서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먼 나라 옛날얘기가 아니라, 내 나라 현재 이야기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백두산정계비와 간도협약, 독도 영유권 문제 등이 떠오르는 것은 한국인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공감이랄까? 투키디데스의 함정도 역시 먼 나라 먼 옛날이야기가 아닐 테다.
중국은 1962년의 짧은 전쟁을 통해 실질 통제선을 따라 인도 영토 일부를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때의 전쟁 이후로도 여전히 분쟁에 시달리고 있다. 인도의 모디 총리는 국경 지역에서 새로운 사건들이 발생한 후, 지난 2015년 5월 중국 방문 때 시진핑 주석과 국경 분쟁에 대한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상호 수용 가능한 해결책’을 찾기로 했다고 발표했지만, 그 해결책이란 모호하기만 하다. 2016년 초, 중국은 중국이 주장하는 국경선을 반영하지 않은 모든 지도를 금지했고, 인도 정부 역시 그해 5월 인도가 주장하는 국경선이 반영되지 않은 지도를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2017년 인도와 중국은 도클람 고원에서 부탄과 중국 간에 분쟁 중인 국경선을 놓고 다시 충돌했다. 인도 반도에서 닭의 목으로 알려진 실리구리 회랑, 북동부 지역을 연결하는 좁은 통로인 실리구리 회랑 인근 지역은 전략적 요충지가 될 수밖에 없다. 양국은 국경 근처에서 군대를 철수하기로 합의했지만, 그 국경선을 어디로 정할지에 대한 문제는 아직도 미해결 상태이다. 미국이 네루 수상(인도) 당시 파키스탄과 인도의 핵 개발을 묵인 혹은 용인한 것도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고도의 외교술이었음은 불문가지다. 인도 수상 가운데는 핵 개발학자들이 있었고, 간디로 대표되는 인도의 비폭력이란 것이 허울처럼 여겨질 만큼 현대 인도는 나름의 강온책 외교술로 자국의 생존 전략과 국력 신장을 담보해 왔다.
중국과 인도는 비슷한 시기에 부상하기 시작하여 모두 엄청난 외부 압력과 지배, 침략이 있었던 식민지 시절, 제국주의 시절을 겪었다. 이로 인해 국제 시스템과 강대국의 의도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두 국가는 모두 자립성과 자주성을 목표로 삼았고, 초반에는 극심한 빈곤에 허덕였지만, 가난을 동기로 삼아 발전과 현대화를 장기 목표로 설정하였다. 엄청난 인구를 자랑하기에 가능한 목표였을 것이다. 과거의 입지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양국의 공통된 야망이며, 다시 한번 강대국으로서 다른 나라들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것이 국내외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제 시스템과 관련해 두 나라는 공통적인 주요 이상을 따르려 하는데, 1950년대 등장한 ‘평화 공존 5원칙’이 과연 지금도 유효한지는 묻고 싶다. 영토 보존, 주권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내정불간섭, 평등한 상호이익 등. 아시아 국가의 입지를 개선하고 비서양 세계를 견인하겠다는 의지가 당시 양국 지도층에게 매우 중요한 영감을 불어넣었다고 할 수 있는데, 70여 년이 흐른 오늘날도 그런 국제 규범이 통하고 있는지 또한 묻고 싶다.
인도에서는 최근 들어 지명을 새롭게 바꾸는 바람이 불고 있다. 예컨대, 남부의 주도 마드라스(Madras)는 첸나이(Chennai), 최대 상업도시 서부 봄베이(Bombay)는 뭄바이(Mumbai), 영국 지배 당시 인도의 수도였던 동부 캘커타(Calcutta)는 콜카타(Kolkata), 북부 델리(Delhi)는 뉴델리, 신흥 IT 도시인 방갈로르(Bangalore)는 벵갈루루(Bengaluru) 등으로 고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식민지 잔재를 지우기 위함이다. 그래도 한국의 수도 서울에서 중앙청 건물을 폭파했던 식의 청산은 아니니 다행이다. 조선의 한양이 한국의 수도로 바뀌었으니, 인도 역시 국명과 함께 식민 통치의 상징적 건물을 폭파하려는 지도자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또한 없을 것인지.
인도의 인구는 13억 8천만 명에 육박하고, 중앙정부에서 인정한 공용어만 22개에, 실제 사용하는 언어는 500여 개가 넘는단다. 다양한 종교와 인종이 빚어내는 어마어마한 문화는 모두 인더스강에서 흘러나왔다고 할 수도 있다. 히말라야산맥과 카라코람산맥에서 발원하여 아라비아해로 흘러가는 인더스강은 그 길이가 3200km, 유역 면적은 한반도의 약 5배인 110만㎢에 이른다. 인도의 강이라고는 해도 지금은 파키스탄을 동서로 양분하며 흐른다. 인도는 힌두교,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는 이슬람교, 스리랑카는 불교가 대세이지만 그 원류는 하나였다. 나라도 원래 하나였지만. 소위 인더스 문명이다. 1922년 영국 고고학자 존 마셜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고 한다. 모헨조다로에서 발굴 작업을 하던 중 초기 인류의 거대한 유적을 발견하였고, 로마보다 3천 년 앞선 B.C. 3천년경의 선진 문명으로 밝혀졌다. 동서 1550km, 남북 1100km의 광활한 지역에서 200군데 이상의 유적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민족은 아리안족을 기원으로 한다. 히틀러가 아리안족의 순수한 혈통을 보존한다며 눈엣가시인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했지만, 유대인들 또한 아리안족의 일파로서 독일인들의 먼 친척이었음은 아이러니다.
중국 변강학 인도 편은 모 일간지 기사로 시작했으니, 여기서 또 다른 일간지 기사를 소개하며 글을 맺기로 한다. “뉴질랜드 신생아 성씨 1위는…2년 연속 인도계 ‘싱’”(서울신문 2022.1.14.) 인도 시크교 계열의 성씨 싱(Singh)이 뉴질랜드 신생아들 성씨 중 1위이며, 2위는 스미스(Smith), 3위는 카우르(Kaur: Singh의 여성형 성씨)란다. 뉴질랜드의 저명한 사회학자 폴 스푼리 매시대학 명예교수의 말이다. “특히 아시아 성씨가 뚜렷이 부상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오클랜드는 기술이민 비자를 압도적으로 많이 받은 인도계와 중국계의 영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저편에서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벌이는 사이에도, 바다를 건너 새로운 땅에서 새롭게 자신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이어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말로만 지구촌이니, 사해형제(四海兄弟)니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구는 둥글고 세계는 하나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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