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중국의 변강학 10] 타지키스탄과 중국 변강

 

  국명에 ‘-스탄’이 붙은 일곱 나라 중 다섯 나라가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이중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은 지난 1월과 3월에 각각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두 나라는 지리와 정치적인 면에서 중앙아시아가 아니라 중동(ASIA Middle East)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독립국가연합(CIS,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15개국 가운데 이들 5개국을 따로 ‘중앙아시아(Central Asia)’라 부르기로 했단다. 최종적으로 1993년의 결정인데, 이 명칭에는 유라시아의 중심(Center)이란 의미가 부여되었을 것이다. 영문 표기로 ‘Middle Asia(중부 아시아)’라는 용어와 각축을 벌이다가 최종적으로 ‘Central Asia’가 채택되었단다. 그러고 보니 ‘Middle’과 ‘Central’이 어감상 좀 다른 듯도 하다. Far(遠)-Middle(中)-Near(近) East(東)에서처럼, 전자는 거리상 원근의 개념이 강하고, 후자는 아무래도 변두리와 대비되는 중심부의 느낌이 강하다. 재미있게도 중국 고전에 등장하는 ‘中國’이란 용어의 ‘中’이 전자에 가까웠다면, 현재의 국명으로 쓰이는 ‘중국’의 ‘중’은 후자에 가까운 의미를 더한다. 거기에 ‘화(華)’까지 더해 하나의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생성해 놓았다. 세계의 중심으로 ‘중화주의’를 선양하며 현재의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약칭으로 사용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림1] 중앙아시아 지도

 

  [그림1]과 같은 지도의 국경선들을 보고 있자면 드는 생각이 있다. 이들 중앙아시아 5개국 가운데 중국과 국경을 접하지 않은 두 나라는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이다. 러시아연방과의 관계에서 이 두 나라는 독립을 원하고,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머지 세 나라는 러시아연방과의 통합을 원하고 있다. 이들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중국의 ‘변강(邊疆)’ 혹은 ‘변경(邊境)’이라고 부르기가 좀 주저된다. 중국 관점에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주변 14개국들이 변경국가로 정리될 것이다. 그런데 위 그림에서는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지도를 그려놓다 보니, 카자흐스탄이 중심국이고 주변의 국경을 마주한 다섯 나라들이 변방 국가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타지키스탄 역시 주변의 네 나라들이 변경[변두리] 국가일 것임은 자명하다. 중심과 주변의 해묵은 논란을 소환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리적 위치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나 보다. 장사(business)의 성패는 목(location)이 결정하듯.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느니,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느니 하는 요즘의 정치 세태를 보자니 드는 생각이다.

 

[그림2] 중국 서부 변방 국가들(좌), 타지키스탄 변방 국가들(우)

 

  국제정치 판세를 보자면 동서와 고금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맹자』는 양혜왕과의 다음과 같은 대화로 시작된다. “선생께서 불원천리하고 오셨는데 장차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묘수)가 있겠소?”, “왕은 어찌 이롭게 함만을 말씀하시오? 또한 상식[仁]과 정의[義]가 있어야 할 것이외다.” 중국의 전국(戰國)시대 당시나 지금이나 국제정치의 실상은 오징어게임을 닮았다. 양혜왕은 속으로 현실 상황이 이러한데 어디서 한가하게 애민[仁]과 공의[義] 타령을 하느냐고 생각했을 법도 하다. 그래도 대화는 한참 더 이어진다. 급기야 맹자는 ‘인자무적(仁者無敵)’까지 인용하면서 자신이 하고픈 말을 다한다. 위(魏)나라 제후였다가 대량(大梁)에 도읍을 정한 뒤 왕을 참칭(僭稱)하며 15년간 집권했던 혜왕(惠王) 앵(罃)은 맹자와의 이런 대화를 남기고, 이듬해(304 B.C.)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진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국토를 수호하고, 팽창주의를 정당화하며, 약육강식 동물의 세계를 인간에게 선사하는 것이 정치라 하겠다. 그래서 혹자는 정치가 악하다고 하나 보다. 현재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도 이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다.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과연 호모사피엔스를 고등 동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머지않아 지구별이 좁다고 우주 식민지도 개척하려고 할 기세다. 같은 별에 산다는 동지 의식도 없이 너희는 죽어도 되고, 우리는 안전하게 살아야겠다며 버르장머리 고치겠다는 논리로 국가 간의 전쟁을 계속한다. 몇 년 전 러시아 극동연방대학(FEFU) 학회에서 내 앞 발제자로 나섰던 젊은 러시아 학자가 북한 핵의 재원과 성능 등을 꼼꼼히 신명 나게 발표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인류 역사가 결국은 전쟁의 역사요 전쟁도 통치술의 일종이라고 강변하면 할 말이 없어지기는 한다.

 

[그림3] 와칸회랑(좌), 타지키스탄 위치(우)

 

  위 중앙아시아 5개국 가운데 중국과 외교적으로 협조가 가장 잘 되는 나라를 꼽자면 아무래도 타지키스탄이라 하겠다. 중국의 14개 접경 국가 중 타지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약 92km)에 이어 두 번째로 짧은 국경선(400km)을 맞대고 있다. 중국과 아프가니스탄의 접경지인 와칸회랑(Wakhan Corridor)이 파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을 남북으로 나누고 있다. 한때 소비에트 연합의 일원이었고, 지금도 CIS의 종주국인 러시아와 친할 수밖에 없는 나라들이니 중국과도 친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중소가 대립한 때도 있었지만,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중러는 새로운 제국의 동반자임엔 틀림없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은 침략 트라우마로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있었지만, 중국과는 선린우호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고 있다.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을 눈감아주고 지원하기까지 한 나라는 중국이다. 타지키스탄과는 중국이 영토를 공유하기까지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친밀하다. 최근(2009~2011년)에는 130년 가까이 끌어오던 중타 국경 문제가, 파미르고원 1000~3000㎢의 땅을 차관 일부 면제 조건으로 중국에 넘겨주며 외교적으로 깔끔하게 해결되었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림4] 타지키스탄이 중국에게 넘긴 영토(좌), 중국-타지키스탄 국경선(우)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제일 먼저 지지하며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왔던 타지키스탄의 집권 정치인들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유라시아경제연합(EEU, Eurasian Economic Union)을 통해서는 러시아로부터, 상하이협력기구(SCO,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를 통해서는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활로를 찾고 있는 타지키스탄이다. 타지키스탄 외채가 대략 31억 불(국가 GDP의 약 40%)이고, 이중 약 절반가량이 중국에게 진 빚이다. 이 차관으로 아시안 하이웨이 7번 도로를 비롯해 타지키스탄 내의 도로망을 건설하는가 하면, 중국의 많은 국경기업이 광산자원 개발과 전력망 구축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공자학원을 통해 타지키스탄 중고교 및 대학에서 중국어 교육과 문화 교육을 하고 있고, 타지키스탄의 역사학자들을 중국에 초청/초빙하여 중국 관련 역사유적 연구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기도 한다. 타지키스탄 내 파미르 지역의 타직-아프간 국경 지역에 국경 수비용 종합청사를 지어주기도 했다. 타직 내 공안 인력들을 중국에 초청하여 훈련시키기도 하고, 작년에는 아프간 탈레반 사태를 대비해 타지키스탄 내에서 중국-타직 공안 연합의 반테러 훈련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림5] 이스마일 소모니 동상(좌), 타지크족 분포도(우)

 

  수도 두샨베의 대표 조형물이라 할 수 있는 소모니 동상은 타지키스탄 역사상 최고의 황금 시기를 이룬 소모니 왕조(819~909)의 왕 이스마일 소모니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소모니는 타지키스탄 화폐 단위에 쓰이기도 하는데, 키르기스스탄에서는 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숨이 화폐 단위로 살아 숨 쉰다. 대략 1600~2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타지크족은 그중 약 650만명이 타지키스탄에 산다. 그들의 최대 거주지는 옆 나라 아프가니스탄으로 약 1000만 명 정도가 산다. 그 외에 주변 여러 나라들에도 다수 흩어져 있고, 중국에는 약 4만 명가량이 살고 있는데,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인구수로는 37위에 올라 있다. 1953~1954년 중국의 ‘제1단계 민족 조사 및 식별사업’에서 일찌감치 인정된 38개 소수민족 가운데 ‘塔吉克族’가 바로 그들이다. 과거 중국 역사자료에는 ‘大食’·‘多氏’·‘大石’ 등으로 음역(音譯)되어 나타났다. 유목민에서 정착민으로 바뀌어 가면서, 그 옛날 페르시아의 영광을 꿈꾸는 타지크(Tazik, 왕관이란 뜻)인들은 세상 온화하고 친절하기 이를 데 없단다. ‘내륙국이니 얼마나 답답할까?’라는 우리의 염려는 접어두어야겠다. 최초로 이슬람교를 국교로 선포했던 타지키스탄이다. 어제는 57개 회원국을 거느린 이슬람 협력기구(OIC, Organization of Isalmic Cooperation) 외무장관 회의에 중국 외교부장이 처음 특별초청객 자격으로 참석해 연설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타지키스탄과 중국의 선린우호 관계가 중앙아시아 지역 평화의 온상이 되길 기대해 본다.

 

 

 

※ 상단의 [작성자명](click)을 클릭하시면 저자의 다른 글들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