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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민족학 12] 중국에서의 경제문화 유형의 실천과 발전

 

  지난달에 소개한 중국의 경제문화 유형은 체보크사로브(Hиколаи Hиколаевич Чебоксаров, 1907~1980) 교수가 중국 중앙민족학원에 와서 강의하던 기간(1956~1958)에 유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린야오화[林耀華]와 체보크사로브 두 교수가 공저한 「중국의 경제문화 유형」이라는 글이 등장했는데, 3만여 자에 달하는 이 장편의 논문에서 두 학자는 경제문화 유형 이론을 전면적으로 운용하여 중국 및 동아시아의 경제문화 유형을 종횡으로 상세히 분석하는가 하면, 각 유형의 특징과 지리와 생태 기초를 꼼꼼히 기술하면서 중국 민족 상황 연구의 선하(先河)를 개척했다. 이 논문은 1960년대 초기에 소련에서 발표된 후 일본과 독일 연방 등에서도 번역본이 게재되면서 국제 민족학계의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1960년대 중기 이후 중소 관계와 중국 국내 형세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경제문화 유형 이론을 활용할 기초가 갖추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진전을 얻지 못했다. 중국 공산당 11기 3중전회의 방침이 정해지고 나서야 중국의 민족학은 겨우 생기를 회복하였다. 30여 년 후 중국 민족학 종사자들은 국내외 민족학 연구의 새로운 성과와 각국 민족학 연구의 실제를 종합하여 본래의 경제문화 유형 이론에 아래 세 가지 수정 및 발전 방안을 제시하였다.

 

[사진1] 왼쪽부터 체보크사로브(1907~1980), 레빈(1904~1963)

 

  첫째, 정의(定義)의 수정. 원래 경제문화 유형의 기본 정의는 “유사한 ‘자연지리 조건’에 거주하며 일정한 ‘사회경제 발전 수준’을 가진 각 민족이 역사적으로 형성한 경제•문화적 특징을 가진 종합체(綜合體)”라는 것이었다. 이 정의는 다음과 같이 수정되었다. “비슷한 ‘생태환경’에 거주하며, 서로 같은 ‘생계방식’을 유지하는 각 민족이 역사적으로 형성한 공동경제와 문화적 특징을 공유하는 종합체를 가리킨다.” 이 수정의 연유를 살피면 대략 다음과 같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자연과 인간이라는 과제에 대한 학제적 연구가 나날이 빛을 발하고 있다. 생태학, 특히 문화 생태학의 연구 성과는 이미 인류의 ‘환경’에 대한 인식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현재 ‘환경’이라고 하면 한 지역의 자연지리 조건뿐만 아니라 그 지형·기후·수문(水文) 등의 조건을 가리키고, 식생(植生) 상황과 동식물의 군체(colony) 및 구조, 인류의 주거와 그 활동 상황, 문화의 접촉과 교류, 나아가 상술한 제 요소 사이의 상호 현상들까지도 포괄한다. 이 때문에 ‘생태환경’이라는 개념으로 ‘자연지리 조건’을 대체했다.

  그리고 인류 활동과 환경 사이의 밀접한 관계가 대두되자 본래 정의 중의 ‘사회경제 발전 수준’이라는 개념이 다소 공허해진 느낌이 들게 되는데, 이는 경제문화 유형 이론 가운데 사회경제 발전 수준을 측량할 지표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해당 이론은 ‘모든 유형의 문화적 특징은 우선 해당 유형이 처한 지리 조건의 경제발전 방향’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광시[廣西] 좡[壯]족 자치구 룽성[隆勝] 각 민족 자치현 룽지[龍脊] 향(鄕)의 좡족들은 가파른 산비탈 위에서 계단식 밭과 논을 일구고 있다. 사회경제 발전 수준에서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해방 전야에 적어도 이미 쟁기로 특징되는 봉건지주 경제 단계까지 발전해야 하지만, 현지 농민들이 사용하는 생산도구는 1984년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호미에 머물러 있다. 왜냐하면, 그 마을의 계단식 밭은 이랑마다 2미터를 넘지 못하고, 두 이랑 사이의 낙차가 1미터 이상이나 되어 농기계를 사용하기에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경(牛耕)조차도 매우 어렵다. 공시적 경제문화 유형을 구분하고 비교할 때 ‘사회경제발전 수준’이라는 개념은 왕왕 실제적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중국 민족학 종사자들은 최근 생계 수단을 나타내는 ‘생계방식(means of livelihood)’이라는 개념으로 ‘사회경제 발전 수준’을 대체하고 있으며, 아울러 ‘생계방식’은 인류의 사회경제 활동 방향을 명확히 표시해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 발전 수준이라는 의미도 포함할 수 있다.

  둘째, 구체적 인식의 심화. 소련 학자들이 1950년대에 제기한 경제문화 유형 이론은 선 굵은 평면적 비교를 기본 특징으로 하고 있다. 경제문화 유형의 구체적 구성요소로 그들이 열거해 놓은 항목들은 물질문화 방면에 국한되어 있다. 이런 횡적인 비교에 역사 진행 과정의 종적인 탐색이 더해져 경제문화 유형의 쌍방향 인식 특징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여기 존재하는 하나의 명백한 결함은 동일 경제문화 유형의 입체적 구조에 대한 인식, 특히 정신문화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문화에 대한 총체적 인식에 매우 불리하다. 중국은 현재 시장 경제발전을 대대적으로 제창하며 이 발전이 민족 지역 경제를 크게 제고시킬 수 있는 유력한 지렛대라고 보고 있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경제문화 유형의 이러한 심층구조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하며, 이를 경제 기초의 반작용 역량에 대한 의식 형태로 보고 경제문화 유형 연구와 결합하여 각 민족 관념을 탐구하고 더욱 새로운 우수 방안을 찾아야 한다.

  셋째, 연구 방법의 계통화. 최근 계통론·정보론 등의 지식이 널리 퍼지는 만큼, 경제문화 유형의 연구 방면에도 종합적인 연구 방법을 취해야만 한다. 우선 연구 방법 자체를 종합적인 방향으로 잡아야 하고, 다음으로 한 체계 내 경제문화 유형 간의 계통성과 구조 관계를 강조해야 한다. 어느 한 지역의 경제문화 유형 현상을 연구할 때 경제문화 유형 이론 요소를 고려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실제 상황도 참고하여 민족 분포와 언어 계보 및 역사문화구(歷史文化區) 등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경제문화 유형을 중심으로 하되 사물에서 사람까지, 환경에서 문화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정황을 함께 고려하여 연구 결과가 각 방면의 실제 상황에서 충분히 드러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사와 연구의 실천을 통해 상술한 개념들을 운용하게 되면 한 지역 내에 비교 연구의 계통을 세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시적인 데서 점차 미시적인 데로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진2] 좡족 자치구 룽성현 룽지의 계단식 논(壯族自治區隆勝縣龍脊鄕 階田)

 

  지금까지 열두 가지 주제로 15회에 걸쳐 연재했던 ‘중국의 민족학’ 이야기를 마친다. 중국 민족학의 발전 과정, 소수민족 식별 사업, 소수민족의 정체·경제·사회·교육·과학기술 등과 인구 문제와 생태 문제 등을 살펴보았다. 중국의 민족학 개괄을 제외하면 주로 소수민족과 그 지역의 문제 등을 다루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 제기는 철저히 중앙정부의 일관된 정책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소수민족 자신들의 목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았다. 일관된 정책이란 필자의 용어를 굳이 빌리자면 ‘한이즘(Hanism)’이다. 한족(漢族) 이데올로기다. 공산주의(Communism)가 공산당을 만들었다면, 한이즘은 중화민족을 만들었다. 한중 수교(1992) 이전에도 한자·한문·한학 등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었지만, 한족·한어 등과 같은 용어는 수교 이후부터 왕성하게 통용되었다. 급기야 ‘통일된 하나의 다민족 국가’라는 신기한 용어도 이제는자주 듣다 보니 익숙하기까지 하다. 그러다 보니 여러 공정(工程)을 통해 역사·문화·문학·풍습 등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이 희한하고 신기한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21세기 중화주의가 기치를 펄럭이는 가운데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넘어 일구양제(一球兩制)를 과시하듯 우주굴기(宇宙崛起)도 연일 뉴스를 장식한다. 최근(2021.5.28.~29) 한중일 협력과 발전 포럼[2021年中日韓區域合作與發展論壇 曁第十八屆東北亞經濟與管理合作論壇, 中國·北京]의 주제[新時代中日韓合作前景及世界經濟可持續發展走向人類命運共同體]에서 ‘인류 운명 공동체(人類命運共同體)’라는 말이 조금은 낯설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한 것은 필자의 기우이거나 노파심이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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