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배경지식이 필요할까? 과거에는 주로 인류의 기원과 종족, 언어와 민족의 관계 등이 민족학 연구를 위한 기본 배경지식으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20세기 중반부터는 이들만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여 ‘경제문화 유형’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비교적 생소한 용어인데, 소련의 저명한 민족학자인 톨스토브(C.П.Толстов), 레빈(M.Г.Левин), 그리고 체보크사로브(H.H.Чебоксаров) 등이 1950년대에 제기한 민족과학 개념의 하나이다. 서로 비슷한 자연 지리 조건 아래 거주하면서, 서로 근사(近似)한 사회 발전 수준을 지닌 각 민족이 역사적으로 형성한 경제·문화 특징의 종합체라고 정의된다. 민족학 방법론으로서의 경제문화 유형은 해당 개념을 둘러싸고 만들어진 하나의 실천 규범이며, 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괄한다.
첫째, 단순한 경제 유형이 아니라 경제와 문화가 상호 연관된 특징의 종합체이다. 이는 경제 발전 방향과 지리 환경이 각 민족의 물질문화 특징을 크게 결정하며, 그들의 거주지와 가옥의 유형, 교통수단과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방식 및 음식·도구·의복·신발·모자·장식품 등을 결정한다. 둘째, 지역을 초월하는 특징을 갖는다. 지리 환경이 서로 비슷하고 사회경제 발전 수준이 서로 근사하다는 조건 아래에서는 비록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다른 민족이라 하더라도 하나의 경제문화 유형에 속할 수 있다. 이런 특징은 특히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경제문화 유형을 구분하는 데 적용된다. 셋째, 매 유형의 문화적 특징은 먼저 해당 유형의 지리 조건이 규정하는 경제 발전 방향에서 결정된다. 넷째, 역사 과정의 산물이다.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주위의 자연 지리 환경이 어떤 민족의 경제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서서히 변화하기 때문에 경제문화 유형은 시대의 변천에 따라 중대한 변화를 낳는다. 다섯째, 각 경제문화 유형은 모두 각자의 역사적인 나이가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이른 것은 구석기 시대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늦은 것은 초기 단계의 계급사회이거나 더 늦은 시기까지도 내려올 수 있다. 어떤 유형이든 오랜 역사 과정 중에 다소간의 변화를 거쳤으며, 장차 공업사회와 정보사회의 도래에 따라 새로운 경제와 문화생활의 지역적 종합체로 진화할 것이다.
중국 민족학 연구자들은 해방 초기 각 민족의 경제문화 상황을 기초로 하여 중국 경제문화 유형 구조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했다. 채집·어로 경제문화 유형, 목축 경제문화 유형, 농경 경제문화 유형이 바로 그것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채집·어로 경제문화 유형은 동북 대·소(大·小) 싱안링[興安嶺]의 삼림 지구와 헤이룽[黑龍]강·숭화[松花]강·우수리[烏蘇里]강의 합류 지점에 분포하는데 알타이어계 퉁구스-만주어족 제언어를 구사하는 혁철·오르존[鄂倫春] 및 일부 에벤키[鄂溫克]족 등을 포함한다. 이 유형 내의 각 민족은 모두 어로와 채집을 중요한 생계방식으로 삼으며, 그 특징은 야생 동식물을 직접 잡거나 채취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자연계의 선물이라도 의식(衣食)에 적합하도록 가공하는 데는 노동이 필요하지만, 이런 노동이 식물 재배나 동물 사육에 쓰이는 것은 아니다. 이 유형은 다시 두 개의 경제문화 유형, 즉 오르존족을 대표로 하는 산림수렵형과 혁철족을 대표로 하는 계곡 어로형으로 나뉜다. 전자는 해방 초기까지도 여전히 수렵이 주요한 경제활동이어서 나뭇가지와 자작나무 껍질 등으로 ‘선인주(仙人柱)’라고 하는 간단한 원추형(圓錐形) 움집을 지어 주택으로 삼고, 필마를 주요한 이동 및 운송 수단으로 삼아 정착하지 않고 살코기를 먹고 껍질을 베고 자는 이동 생활을 한다. 후자는 정주 혹은 반정주(半定住)의 생활을 하는데, 그들은 겨울 대부분을 움막에서 지내며, 여름에는 지면이나 말뚝 위의 네모난 나무집 혹은 움막에 산다.
목축 경제문화 유형은 동쪽으로는 대(大) 싱안링[興安嶺] 서쪽 기슭, 서쪽으로는 중가리아[准噶爾盆地] 서쪽, 남쪽으로는 산맥 가운데(雲南省 中甸縣)를 횡단하는 광대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동북에서 서남에 이르는 반월형 목축지대를 구성한다. 이 유형 그룹에는 몽골·카자흐·위구[裕固]·타지크[塔吉克]·티베트 일부 에벤키[鄂溫克]족과 다우르[達斡爾, Daur]족 등이 있다. 목축 경제문화 유형은 다시 대략 4개의 유형으로 나뉜다. 일부 에벤키족으로 대표되는 툰드라 목축형, 몽골족으로 대표 되는 고비 초원 유목형, 카자크족을 전형으로 하는 분지 초원 유목형, 티베트족과 좡[壯]족을 전형으로 하는 고산 초장(草場) 목축형 등이 그것이다.
툰드라 목축형의 유목민들이 기르는 가축은 현지의 생태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순록이다. 순록과 같은 가축은 탈 것과 운송의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다. 또한 수렵은 이런 유형의 경제생활에서 비교적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비 초원 유목형은 목축 생계에서도 발달된 형태이다. 주로 양과 말을 기르며, 동부의 수초가 풍부한 곳에는 소들을 방목하기도 한다. 이 유형이 소재하는 지대의 서부는 고비의 특징이 선명하여 식생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지리 조건에 적응하는 낙타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전형적인 유목민족은 주로 게르[Ger, 蒙古包]에서 산다. 분지 초원 유목형은 생계 특징이 고비 초원형과 비슷하지만, 생태환경과 문화 특징상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별개의 유형으로 본다. 이곳의 목장은 사방으로 둘러싸인 대분지 안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비교적 충분한 수원(水源)이 있어 농업 발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고산 초장 목축형은 목축업(야크 번식)이 경제의 기초이다. 야크는 생리적 특징으로 인해 칭짱[青藏]고원의 엄혹한 기후에 잘 적응하고, 두터운 모피와 기름기 많은 유제품은 이 유형의 유목민에게 이상적인 의류와 식료를 제공한다. 또한 등산에도 익숙하기에 운송용으로도 사용된다.
농경 경제문화 유형은 파미르고원 동쪽에서 타이완에 이르기까지, 헤이룽강에서 하이난(海南)도의 광활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으며, 그 주요 부분은 중국의 건조 지역을 비롯해 대 싱안링에서 라싸를 잇는 지역 동쪽의 습윤지구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볼 때 농경 경제문화 유형은 다시 산림 화전(火田) 경작 형, 산지 농경 목축[耕牧]형, 산지 농경수렵[耕獵]형, 구릉 벼농사[稻作]형, 오아시스[綠洲] 농경목축[耕牧]형, 평원 집약 농경(農耕)형의 6개 유형으로 구분된다.
산림 화전 경작형은 칭짱고원과 윈구이[雲貴] 고원이 만나는 횡단산(橫斷山) 계열의 남단, 행정구역으로 보면 티베트 동남과 윈난성 동남쪽 국경선 지역으로, 그 분산 부분이 동쪽으로는 남령(南嶺)에 연하고 양측의 산지 구릉은 직접 하이난도에 이르는 한 조각 조각의 문화 열도(列島) 형태로 분포하고 있다. 여기 속한 민족으로는 먼바[門巴]·뤄바[珞巴]·두롱[獨龍]·누[怒]·와[佤]·더앙[德昻]·징포[景頗]·지눠[基諾] 및 일부 리쑤[傈僳]·먀오[苗]·야오[瑤]·리[黎]·고산족 등이 있다.
산지 농경 목축형은 칭짱고원 동남쪽 경사지·야루짱부[雅魯藏布]강 계곡과 윈구이[雲貴]고원 중서부 산간에 분포해 있다. 이 유형에 속하는 민족은 주로 짱몐[藏緬] 어족의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챵[羌]·나시[納西]·바이[白]·푸미[普米]·라꾸[拉祻]와 일부 티베트[藏]족 및 니룬[濔淪]강 동안의 리쑤[傈僳]족 등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민족은 주로 산간에서 한작(旱作)하고, 소맥(小麥)·교맥(蕎麥)·보리·옥수수·고구마 등 가뭄과 추위에 견디는 작물을 재배하며, 소·양·돼지·닭 등의 가축을 사육한다.
산지 농경수렵형은 윈구이고원 중부 동쪽의 산간과 화난[華南]의 구릉 산지에 분포하며, 그 서쪽 끝은 언어 계보가 복잡한 투쟈[土家]와 거라오[仡佬] 지구를 지나 경목(耕牧) 유형과 접하고, 동쪽으로는 창강·주강[珠江] 사이의 남령(南嶺) 우이[武夷] 산간에 산재해 있다. 이 유형의 민족으로는 주로 한장[漢藏]어계(Sino-Tibetan languages)의 먀오야오[苗瑤]어족 언어를 구사하는 먀오[苗]·야오[瑤]·서[畬] 민족 등이 있다.
구릉 벼농사형의 분포 지역은 윈난 중남부의 구이저우·광시[廣西]·하이난도·타이완을 거쳐 동북 연안에 이르며 연속되지 아니한 큰 초승달[大新月] 모양의 지대이다. 이 유형에 속한 민족은 다이[傣].좡[壯]·동[侗]·수이[水]·거라오[仡佬]·마오난[毛南]·리[黎]족 등으로 대부분 한짱어계 좡동[壯侗]어족의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이다. 동북에 사는 조선족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고 언어계보도 독특하지만, 그 경제문화의 특징은 논농사와 좌식 생활, 백색 숭상, 손으로 장구를 치는 등 다이·좡족 등과 흡사하므로 이 유형에 속한다.
오아시스 농경목축형의 분포 지역은 타림[塔里木], 준가얼[准噶爾, 중가리아(Dzungaria)]이라는 두 큰 분지 지역의 가장자리로, 허시[河西]회랑을 거쳐 닝샤[寧夏]에 이르는 지대 및 칭짱고원 동북 언덕의 허황[河湟] 지역 등에 분포한다. 이 유형에는 회족(回族)과 러시아족 외에도 위구르·우즈베크·타타르·동샹[同鄕]·바오안[保安]·사라[撒拉, Salar]와 일부 위구[裕固]·다우르(達斡爾, Daur)·시보[錫伯] 등의 민족이 있다.
평원 집약 농경형은 중국 동부 각 대평원과 관중[關中]·쓰촨[四川] 두 분지 및 그 주변 지역에 분포한다. 여기 속하는 민족은 중국의 주체민족[主體民族]인 한족 외에도 상술한 지역의 만·회·위구르 및 몽골족 등이 있다. 이들의 생계 방식은 단위 토지 면적에 노동력과 기술 투입이 밀집되어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현대 농기계·화학비료·비닐·농약·우량 씨앗 등이 생산량 증가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높은 인구밀도의 촌락 단위로 모여 사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은 워낙 지역이 넓고 민족이 많다 보니 생태환경도 복잡하고 문화 현상도 풍부하다. 생계방식 또한 다양화되어 상술한 몇 가지 경제문화 유형으로는 일일이 다 설명할 수가 없다. 이렇게 유형을 나누어 기술하는 것은 사람과 환경의 연구에 대한 인식의 길을 제공하기 위함일 뿐이다. 이 외에도 중국의 경제문화 유형을 연구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각각의 유형마다 모두 유기적인 시스템 구성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도회지에 사는 우리에게는 낯선 오지 여행 TV 프로그램의 주제쯤으로 비칠 것이다. 그러나 직접 발로 뛰며 관찰하는 중국 민족학자들에게는 소수민족과 한족, 시골과 도시 사이의 격차를 줄이고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을 성공시키기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된다. 우리나라의 다문화 가정 문제라든지 노동격차와는 그 규모와 내용 면에서 비교 불가한듯하여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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