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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변강학 7] 파키스탄과 중국 변강

 

  파키스탄은 현재 한국인들에게 특별 여행주의보 지역(이슬라마바드, 라호르 등)을 제외한 전 지역이 출국 권고 경보가 내려진 곳이다. 우리에겐 아프가니스탄이라는 귀에 익기는 하지만 IS의 공포가 먼저 연상되는 나라, 바로 그 나라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동일한 이슬람국가이기 때문인 듯하다. 자살폭탄테러의 온상쯤으로 여겨지는 아프가니스탄은 파키스탄의 국명[Islamic Republic of Pakistan]에서도 숨 쉬고 있다. PAKISTAN이란 국명이 재미있다. OO스탄 7개국 중 나머지는 민족명에서 유래한 데 반해 파키스탄만 유일하게 5개 지명 이니셜에서 따왔단다. 인더스강 유역의 펀잡(Punjab), 아프간(Afghan), 카쉬미르(Kashimir), (삽입모음 I), 신드(Sindh), 발로치스탄(balochiSTAN). 이렇게 작명된 파키스탄은 공교롭게도 페르시아[우르두]어로 ‘순전한(혹은 신성한, 청정한 정결한) 땅’을 뜻한단다.

 

[그림1] 파키스탄 지역구분도

 

  중국의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百度]에서 ‘巴基斯坦’을 검색하면 대뜸 ‘파키스탄은 왜 중국과 단교하나[巴基斯坦爲什么和中国斷交]’라는 글이 나오는데, 이 글에서 말하는 단교의 이유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마음 고약한 나쁜 세력이 중·파 관계를 도발하기 때문이며, 둘째로 속내를 헤아릴 수 없는[叵測] 서방 매체들이 중·파 관계에 먹칠하려는 수작이고, 마지막으로 관련국들이 까닭 없이 중·파 양국 관계에 재를 뿌려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제목에서 대뜸 느껴지던 단교의 이유는 없고, 중국과 파키스탄의 단교란 있을 수 없다는 논리를 꽤 수사적 형식에 기대어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왜 단교했나?’가 아니라, ‘왜 단교하겠는가?’로 읽어 달라고 요청한다. 제목만 훑어보면 ‘아, 파키스탄이 중국과 단교했구먼.’이라고 여길 노릇이다. 1947년 8월 14일 파키스탄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고, 신중국이 성립(1949.10.1.)된 이래 중국과 파키스탄은 태생적으로 우의(友誼) 국가였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The enemy of my enemy is my friend. 我敵人的敵人是我的朋友]라는 경구가 딱 들어맞는 경우였기 때문이다. 인도와 중국은 인구 대국 톱 랭킹을 다투는 관계이기도 하고, 역사적으로도 오랜 국경분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파키스탄이란 나라는 인도와의 분쟁 과정에서 태동한 나라이고 보니 중·파 관계는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 인도는 졸지에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다. 지정학적으로도 그렇다. 파키스탄 남부 항구도시[과다르(Gwadar)와 카라치(Karachi)항]에 중국 해군기지가 들어서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마치 한반도 남부에 미국 해군기지들이 있듯이.

 

[그림2]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파키스탄 과다르항(借港出海)

 

  중국의 변강학을 시작하면서 중국과의 국경선 길이 일람표를 작성한 바 있다. 그곳에서는 파키스탄과의 국경선 길이도 아프가니스탄처럼 73km로 기록했다. 그런데 아래 지도에서 보이듯 파키스탄과의 국경선은 아프간과의 국경선보다 훨씬 길게 이어져 있다. 한눈에 봐도 길다. 73km가 아니라 500km라고도 한다. 카쉬미르 지역이 아직도 공식적으로 국경을 획정하지 못한 3국의 분쟁지역이기 때문에 보는 견해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이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선포하려는 의도가 무엇일지 짐작이 간다. 간도협약 무효를 주장하던 국내의 목소리가 슬그머니 수그러든 이유도 궤를 같이 할 것이고.

 

[그림3] 파키스탄과 주변국 지도, 카쉬미르-인도·파키스탄·중국 지배구역도

 

  동서독의 베를린 장벽은 한 도시에 늘어서 있었고, 한반도의 휴전선 철조망은 국토의 허리에 세워져 있는데, 파키스탄은 참으로 기구한 분단의 현장이다. 지금의 파키스탄(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동벵골. 지금의 방글라데시, 1972년 독립) 사이에는 무려 2천km의 거리가 있다. 힌두교의 인도(Hindu, Sindu, Yindu, India)라는 나라가 버티고 있다. 인도와 피키스탄의 분단은 종교적 원인이 주였겠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식민 통치의 원조 대영제국의 정책(일명 분할통치, Divide and Rule)이 낳은 괴현상(怪現象)이다. 반면 같은 이슬람 종교국이면서도 종파가 다르기 때문에 분단된 동·서파키스탄은 현대사의 또 다른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 언어도 종파도 인종도 다른 다민족 국가가 겪는 통합의 어려움을 목도하게 된다. 기독교를 강요하던 영국의 이간정책에 반발한 현지인들은 힌두교의 인도와 이슬람교의 동·서파키스탄, 불교의 스리랑카로 독립하게 된다. 아, 언어도 인종도 문자도 통일되어 있는 한반도는 언제쯤 하나가 되어 그 위상을 세울 수 있게 될 것인지.

  파키스탄의 불편한 진실은 우리가 미·중 패권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고민하는 것 이상이다. 그들은 미·중뿐만 아니라 러시아(구 소련 접경국)와 인도(현재 가장 긴 접경국)의 눈치도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슬람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로서의 자신감인지 무엇인지, 그들은 아시아 최빈국이라는 경제 규모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생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영국이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를 통해 인도 식민지를 경영하다가 세포이 항쟁(1857년)을 계기로 직접 통치에 나서게 되었던 역사적 사실은 이미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자세히 실려 있다.

 

[그림4] Kashgar Old City와 라호르

 

  최근 중국이 파키스탄에 62조 원을 퍼주며 건설하고 있는 ‘중·파경제회랑(CPEC)’이 과연 파키스탄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중국을 위한 것인지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CPEC 프로젝트의 최우선 계약대상자였던 인민해방군 별동대 ‘신강생산건설병단(新疆生産兵團, XPCC)’이 제2의 동인도회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파키스탄 내부에서 들렸던 것도 이미 5년 전이었다. 그 무렵 파키스탄 서부 라호르(Lahore)의 펄컨티넨탈 호텔 로비에 걸려있던 문구가 무색해지는 중·파 관계의 현실은, 아마 서두에서 인용했던 바이두의 필진도 간파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파키스탄-중국의 우정이여, 영원하라.”, “양국의 우정은 히말라야보다 높고, 심해보다 깊으며 꿀보다 더 달콤하다.”, 최근 파키스탄 내 금융 위기에 빨간불이 켜지고, 심심치 않게 파키스탄 내 중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자살 폭탄 테러 소식이 들린다. 부디 똑같이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 통치의 아픔을 겪었던 두 나라의 우의(友誼)가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따라 카스에서 라호르까지, 파미르고원 넘어 과다르항까지 평화롭게 이어지기를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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