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1969)라는 유행가를 듣고, ‘월남에 계신 국군 장병 아저씨께’로 시작하는 위문편지를 썼던 소싯적 기억이 새롭다. 월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따이한의 용사들이 베트콩과 싸우느라 고생한다고만 들었던 어린이에게는 그곳의 위치조차 막연했다. 왜 그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는지, 우리나라 국군 아저씨들은 왜 그 무덥다는 나라에 가서 전쟁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자주 듣던 ‘인도차이나반도’에 어떤 나라들이 있는지도 당연히 몰랐다. 이제 중국 남동쪽과 육상·해상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Socialist Republic of Vietnam)을 통해 중국의 변강학, 그 첫 번째 문을 연다.
나폴레옹 3세(1808~1873)는 영국과 연합하여 제2차 아편전쟁(1858~1860)을 치르면서 인도차이나에 프랑스 식민지를 구축하기 위해 1858년 베트남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사이공 점령(1859.2.17.)으로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식민지화가 시작되었고, 프랑스 해군은 남부 베트남의 요충지에서 베트남군을 패퇴시켰다. 마침내 1862년 베트남 응우옌 왕조의 뜨득 황제가 항복하자, 프랑스는 베트남과 사이공 조약을 체결했다. 모든 침략 전쟁의 조약이 그렇듯 침략군의 일방적인 요구를 담은 불평등 조약임은 물론이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1914.7.28.~1918.11.11.)으로 프랑스군의 방위력이 약해지는 틈을 타 베트남 독립운동이 일어났으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다시 시간이 흘러 중일전쟁(1937~1945)이 격화되고 제2차 세계대전(1939.9.1.~1945.9.2.)에서 프랑스가 독일에 패하자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정부는 일본과 협력하여 일본군의 베트남 주둔을 허용하였다(1940). 대일본제국이 패전하고(1945.8.15.) 그 직후 ‘베트남 8월 혁명’이 일어난 뒤, 9월에 호찌민[胡志明]은 베트남민주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는 7년간 독립을 반대했고, 호찌민이 프랑스에 대항해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전쟁은 1954년 5월 7일 디엔피엔푸에서 베트남이 승리하면서 종결되었지만, 동년 7월 21일에 체결된 제네바 협정(Geneva Accords)에 따라 베트남은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남북 분단이 되었다.[1] 우리나라는 광복(1945.8.15.) 직후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되었는데, 베트남도 우리와 비슷한 현대사의 비극을 떠안아야만 했다. 북위 17도 이북은 소련의 지원을 받고, 이남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분할되었다. 미국이라는 연합국(USA, United States of America)과 소련이라는(USSR, 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 연합국은 민족 분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반도 지도에 30분만에 38도선을 그어 남북으로 나누던 짓을 9년 뒤 베트남에서도 되풀이했으니 말이다. 베트남은 독립을 위해 서구 제국주의자들과 전쟁을 치러야 했고, 우리는 분단 후 5년이 채 안 되어 6.25라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어야 했다. 지지부진하던 강대국들의 휴전회담이 겨우 성사되었지만(1953.7.27.), 아직도 휴전선으로 분단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이 제네바협정에 따른 공동 선거를 시행하지 않자 베트남 전쟁(Vietnam War, 1955~1975)을 일으켰다. 북베트남의 게릴라 활동과 남베트남 내 친공산주의자들, 일명 베트콩(Viet Cong)들의 반란은 미국 등 여러 나라가 개입하는 빌미가 되었다.[2]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으로 기록된 이 전쟁에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5천 명 이상 목숨을 잃어야 했고, 고엽제 피해자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인명 손실과 엄청난 파괴를 가져왔다.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전쟁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던 사회주의 우방(友邦)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도 방공포 부대와 탄약·군복 등의 군수물자를 지원했다. 미국의 요청으로 한국은 1964년 이동외과병원 파병 후, 비둘기·청룡·맹호·백마 부대 등 연인원 32만 명이 파병되었다. 호주·뉴질랜드·태국·필리핀·중화민국(타이완) 등도 미국 편이었다. 숱한 피해를 남기고 1973년 피리 평화/휴전협정으로 종전되었으나 전투는 계속되다가, 1975년 북베트남의 전면공세 속에 4월 30일 남베트남 정부가 항복하면서 종결되었고, 북부 하노이를 수도로 삼아 1976년 7월 2일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으로 통일되고, 남부 사이공은 호찌민(Ho Chi Minh) 시로 개칭되었다.
베트남이 사회주의공화국으로 통일된 지 3년도 채 되지 않아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 혈맹임을 자랑하던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했다(1979.2.17.~3.15). 한국전쟁(Korean War)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를 기치로 참전하고, 베트남의 항불(抗佛) 전쟁에서 원월(援越)까지 하던 중국이 왜 그들을 침공했을까? 두 국가가 인접해 있기에 생기는 국경 문제와 재외동포[華人] 문제, 베트남에 대한 영향력 확보를 위한 노력, 중국에 대한 불신으로 점철된 베트남의 역사적 기억, 두 사회주의 국가 건설상에 대한 갈등, 국가 이익과 이해관계에 따른 여러 요소 등등이 거론된다. 미소 간에 가열되고 있던 사회주의 내 대패권 주의를 흉내 낸 소패권 주의에 대한 경고, 즉 이웃 나라 캄보디아 폴 포트(Pol Pot)의 킬링 필드(1975~1979)를 침공한 베트남에 대한 레슨(lesson) 차원이라는 견해도 있다. 중국의 덩샤오핑이 미국과 수교(1979.1.1.) 후 미국을 방문하여(1979.1.28.~2.4.) 지미 카터와 회담하던 중 남겼다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그 당시 국제정세를 엿보게 해준다. 중국의 베트남 침공에 대한 미중의 사전 교감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애가 말을 안 들으면 볼기를 좀 쳐야겠죠.[小朋友不聽話, 該打打屁股了]” 문화대혁명을 마감한 후 개혁개방을 기치로 내걸었던 1978년 이후부터 중국은 사회주의 소련과의 패권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으로 미국과 가까워지기를 택했던 듯하다.
중국과 베트남의 국경 도시로 유명한 랑선[諒善]성 동당[同登]역은 최근 김정은-트럼프의 북미 제2차 정상회담(하노이, 2019.2.28~29)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졌다. 이 역은 랑선시 북쪽의 베트남 철도[하노이-동당]역으로, 중국-베트남 국경선인 우정의 고개(Friendship Pass)를 넘어 중국 광시성 핑시앙[凭祥]을 거쳐 난닝[南寧]역으로 이어지는 국제 철도역이다. 지금은 이렇게 중월의 우호를 확인하는 국경 도시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벌어지던 전장이었다. 1400km에 달하는 중월 국경에는 열사능원(烈士陵園)들이 산재해 있다. 광시 방면의 8개 지역에 12곳(6761명), 윈난 방면의 9개 지역에 15곳(4598명)이나 있다. 도합 1만 1359명 이상의 중국 측 전사자들은 대부분 징병된 20대 젊은이들이었다. 이처럼 느슨한 형태의 전쟁이 종지부를 찍은 것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때였다. 장쩌민 총서기와 베트남 공산당의 응우예반린 서기장이 쓰촨성 청두에서 비밀회담을 하였다(9.3.~4). “과거를 끝내고 미래를 열어나간다”라는 공동의 이해에 도달했고, 이 회의를 계기로 중월 관계의 정상화가 진전되었으니, 중월 전쟁을 10년 전쟁으로 부르는 이의 의견도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3]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20 도쿄 올림픽이 역병 상황으로 1년 연기되어 지금 한창 진행 중이다(2021.7.23.~8.8.). 참가한 205개국의 젊은이들이 총칼로 싸우지 않고 스포츠로 즐기며 우의(友誼)를 다지는 축제가 되기를 바란다. 중국-베트남 국경 지대의 관문인 우의관(友誼關)을 통과해 중월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아픈 과거의 상처를 씻어내고 상호 우의가 진정으로 회복되기를 빈다. 아울러 중국과 베트남처럼, 이런 세계적 축제 기간에 우리나라의 전쟁 종식을 위한 비밀회담도 어디에선가 열릴 수 있으면 참 좋겠다.
[1] 프랑스·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정부의 대표들 사이에서 조인된 이 협정에서 한국의 재통일도 의제에 올랐었다.
[2] 존슨 행정부의 조작극으로 밝혀진 통킹만 사건(Gulf of Tonking Incident, 1964)도 있었다.
[3] 이시이 아키라(石井明), 이용빈 옮김(2016.8), 『중국 국경 – 격전의 흔적을 가다』, 162~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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