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필자는 홍콩에서 열린 학술회의가 끝난 후 문득 화려한 홍콩의 중심부를 벗어나 외곽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작정 버스를 타고 한참을 지나자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아파트와 바닷가 풍경이 나왔다. 높은 아파트 건물 집집마다 부적을 부친 것이 예사롭지 않아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막상 내려 보니 특별한 것은 없었다. 널린 빨래들이며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는 노부부, 언덕 아래 초등학교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열린 창문을 타고 하늘로 퍼지고 하늘은 맑았다. 조금 더 내려가니 아담한 공원이 나타났는데 폭포만공원(瀑布灣公園)이라는 팻말이 있었다.
파도를 볼 요량으로 해안가 기슭을 찾아 걸음을 옮겼는데 낡은 철문에 빗장을 걸어둔 것이 아닌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자물쇠가 걸려있기는 했어도 문이 비스듬히 열려있다는 것을 알았다. 출렁이는 바다를 보니 가슴이 시원해져서 울통불퉁 좁은 돌길을 따라 내려가 작은 등성이를 넘으니 이럴 수가! 그 동안 중국 묘우(廟宇)를 제법 다니기는 했지만 이토록 많은 신들을 모신 곳은 본 적이 없었다. 그야말로 신들의 세계, 아니 신들의 산이라고 할 만큼 빈틈없이 빽빽이 자그마한 신상들이 서 있었다. 사람 발길 하나 없는, 신들로 가득 찬 공간에 선 필자는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서조차 음산하고 미묘한 기류를 느꼈다. 갑자기 사람 사는 세상에서 너무 멀리 벗어난 것 같았다. ‘아니야, 여기는 마천루와 쇼핑의 도시, 모던시티 홍콩이야. 정신을 차리자.’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지만, 여전히 이 많은 신상들은 어디서 왔으며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신상들을 갖다 둔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신들의 산 사이로 난 좁은 벼랑길을 따라 한참을 가다보니 드디어 얼기설기 엮은, 묘우라고 부르기는 애매하고 초라한 작은 건물 하나가 나타났는데 ‘관음전’이라고 적혀있었다. 한 노인이 가만히 문을 열고 나오더니 바다를 바라보다 신상들을 찬찬히 둘러보고 위치를 바꾸곤 하였다. 뭔가 알 수 없는 괴기스럽고 미묘한 느낌이 드는 이곳, 홍콩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신기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곳은 원래 무주고혼(無主孤魂)의 공동묘지였단다. 1900년대 초중반 살 길 찾아 홍콩으로 왔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음을 맞아 ‘적당히’ 묻힌 공동묘지였다. 이 어둡고 쓸쓸한 죽은 사람들의 공간을 죽은 신들의 공간으로 바꾼 것이 바로 이 노인에 의해서였다. 민간신앙을 신봉하는 홍콩인들은 지금도 가정이나 가게에 신상을 봉안한다. 아침저녁 신상에 신성한 과일이나 맛있는 과자를 올리고 향을 피우며 소원을 빈다. 신들은 편안히 앉아 인간들이 바치는 공양물을 받아먹는다. 그러나 변하는 인심에 영향을 받는 것은 신도 예외가 아니다. 아무리 빌어도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슬그머니 봉안한 신상에 싫증을 낼 수밖에 없다. 날마다 빌고 또 빌었건만 소원성취가 감감무소식일 때, 더구나 소원이 이루어지기는커녕 가까운 이가 아프고, 죽고, 기대하던 장사가 파리를 날릴 때는 대접 받던 신도 슬슬 보따리를 싸서 쫓겨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홍콩 사람들은 신을 집안으로 모실 때 꽤나 신경을 쓰지만 신을 내보낼 때에도 제법 궁리를 해서 내보낸다. 그냥 갖다 버리면 혹시라도 앙갚음이 있을 것을 대비해 ‘이사’라는 개념을 활용한다. 그래서 대개 캄캄한 밤에 해변가 반얀나무[榕樹] 밑에 살짝 갖다 두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신을 다른 곳에 이사 보낸다고 말하며, 신령한 반얀나무가 이들을 거두어 줄 것으로 믿는다. 그렇지만 사실은 바닷가 나무 밑에 신을 ‘내다 버리는’ 것이다. 신상들끼리 부딪히고 깨져서 굴러다니는, 폐허가 된 신들의 공동묘지일 뿐이다.
한참 후에야 보았다. 산처럼 가득한 신상들 너머, 집이라 부르기도 애매하고 절이나 묘우라 보기에 더욱 걸맞지 않은 허름한 가건물에 적힌 ‘관음전’이라는 푯말을. 허리 구부정한 한 할아버지가 그곳에서 나왔다.
노인은 어렸을 때 형제자매가 많은 대가족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집안에 죽어나가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자신을 어딘가로 데려 갔다고 한다. 바로 관세음신상을 모신 관음묘였다. 어렸던 노인은 어머니와 함께 관음묘에서 기도를 했고, 그 후 평생 관세음보살에 의지하며 살았단다. 초하루와 보름이면 관음묘를 찾았고, 돼지고기 정육점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지만 정작 본인은 평생 고기를 입에 댄 적이 없단다. 그러다가 우연히 버려져 깨진 신상들이 나무 아래 빼곡하게 쌓여서 산을 이룬 것을 본 뒤로, 노인은 다른 일을 접고 이것들을 거두어 보살피기 시작했단다. 이미 1980년대부터의 일이라고 하니 보통 마음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마을사람들도 동참해서 함께 이 일을 돕고 있다고 하니 마천루로 들어찬 홍콩의 또 다른 얼굴이다.
사람들이 버린 여러 신상들 중에는 관우, 마조 등과 함께 백의관음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조건 없이 모든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이 수많은 관세음보살상은 한 때 누군가의 큰 의지처요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평생을 관세음보살에 의지하여 살아온 탓일까? 노인은 모르는 사람들이 내다버린 이 많은 신상들을 구분 없이 보살핀다. 어쩌다 태풍 등으로 파손되면 손질해서 살릴 수 있는 데까지 살렸다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정도가 되면 바다 밑으로 보낸다. 신상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과 열망이 깃들어 있을까? 한 때는 누군가의 열망을 담았다가 버림받은 신상들을 차별 없이 보살피는 노인의 모습에서 관세음보살을 본 것은 필자만의 착각일까?
※ 상단의 [작성자명](click)을 클릭하시면 저자의 다른 글들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