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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의 관세음보살 이야기 6] 부름에 따라 이동하는 대만 묘우의 민간신들

 

  대만의 묘우를 찾다보면 묘우를 운영하는 사람들끼리 자주 왕래하는 것은 물론 묘우에 봉안된 신들이 다른 묘우로 이사를 다니기도 한다. 대만의 민간 신들은 우리네 인간들처럼 서로 활발히 교류하고 얼마나 영험한 힘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서열이 바뀌는 등 매우 유연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신들의 이동이란 것이 심심해서 여행을 다니는 인간들처럼 즉흥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고, 대부분 세상에 큰 변고가 생기는 등 부득이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만 서남부의 도시인 대남시(臺南市) 안평구(安平區)에 위치한 민간신앙 묘우 광제궁(廣濟宮)도 이러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이 묘우는 18세기 중반부터 기록에 등장하는데, 본래는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이 지역 세 묘우 중 하나였다는 말이 있다. 이 설명은 묘우의 이름을 볼 때 이치에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지역 주민이 개인적으로 청부천세(清府千歲) 신을 모시던 곳이었다고도 한다.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가 맞는지, 두 가지가 모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관세음보살도 청부천세도 이곳의 주신이 아니다. 현재 광제궁의 주신은 보생대제(保生大帝)이며, 관세음보살과 청부천세는 주신을 보좌하는 신이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보생대제는 대도공(大道公) 혹은 오진인(吳真人)이라고도 불리는, 중국 남방 사람들이 즐겨 신봉하는 신이다. 보생대제는 원래 북송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초반에 복건(福建) 천주(泉州)에 살았던 실존 인물인데, 생전에 뛰어난 의술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무수히 구해준 인물이라 한다. 그의 사후에도 그를 기리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마침내 신이 되었다. 보생대제는 중국 대륙 복건성과 광동성 일대, 홍콩, 마카오, 대만은 물론 화교가 거주하는 동남아시아 여러 곳에서 신봉되는 신이다. 현재 보생대제를 봉안한 묘우는 전 세계적으로 2천여 곳이 넘고 신자만 1억 명을 헤아릴 정도이다.

  광제궁에서 보생대제를 주신으로 모시게 된 배경이 있다. 이곳에 살던 한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방향을 잃고 표류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보생대제가 나타나 바다 위에 큰 등불 하나를 들고 그를 인도하였다고 한다. 이에 어부는 보생대제가 든 등불을 따라 무사히 육지에 닿아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은 보생대제를 주신으로 모시게 되었다.

 

[사진1] 광제궁의 주신 보생대제

 

  보생대제가 지금의 주신이라고는 해도, 시대환경에 따라 광제궁에서 주목받는 신은 그때그때 달랐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마조여신이 이곳에 머물렀다. 이 마조여신은 원래 부근의 천후궁 묘우에서 모시던 신이었으나 사정이 생겨 광제궁으로 이사를 왔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당시 이 일대는 매일 공습을 받았다. 특히 마조여신을 모시던 천후궁(天后宮) 묘우는 집중적인 폭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당시 천후궁이 군 주둔지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천후궁에 50~60여 명의 군인들이 주둔하다 보니, 주민들이 묘우에 가서 기도를 올리고 싶어도 마음대로 찾아갈 수 없었고, 매일 쏟아지는 폭격에 천후궁 묘우는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 거의 폐허 직전에 이르렀다. 고민 끝에 주민들은 마조신상을 잠시 다른 곳에 모시기로 결정했다. 이제 여신이 가시고 싶어 하는 묘우가 어디인지 알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에 각 묘우의 담당자들이 모여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 후 제비를 뽑았다. 이렇게 하여 선택된 곳이 바로 광제궁이었다.

  당시 주민들은 언제 어디로 폭격이 떨어질지 몰라 늘 불안한 상태였다. 광제궁은 이런 주민들을 위해서 마조신상을 문밖에 봉안하여 각자 편한 시간에 찾아와 마조를 만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마음을 진정시키고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일수록 신과의 교감을 원하는 사람이 많기에 내방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 같다.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이 시기에 한국의 종교 공간도 여기에서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싶다. 신을 만나는 데 무조건 실내를 고집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사진2] 광제궁 입구

 

  다시 광제궁 이야기로 돌아가면, 어느 날 새벽, 평소와 같이 경건한 마음으로 묘우를 찾아 정성껏 마조신상을 닦던 한 주민은 마조의 신발에 모래가 가득 묻은 것을 발견했다. 간밤에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기에 이는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하여 난단을 열어 점을 쳐보니 마조신이 하강하여 쏟아지는 폭탄을 받아내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바람에 모래가 가득 묻었노라고 답했다. 며칠 후에는 다른 주민이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마조가 나타나 손으로 폭탄을 받아내면서 손가락에 상처를 입었노라고 말했다. 이튿날 묘우로 달려가 신상의 손가락을 살펴보니 과연 손가락 하나가 구부러져 있었다고 한다. 아울러 마조신은 자신의 손가락이 상처 입을 때마다 붉은 천으로 닦아주면 바로 낫는다고 일러주었다 한다.

  이상의 이야기들이 마치 전설 속 일화처럼 허무맹랑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들이 과연 진실일지, 그 신빙성을 따지기보다는 이를 통해 대만 민간신앙에 내포된 의식구조를 살펴보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만의 묘우에서 모시는 신들은 자신의 위치와 머무는 공간에 대해 열린 자세를 보인다. 그들은 설사 한때 어떤 묘우의 주신으로서 지극한 숭배를 받았다 할지라도 자신의 때가 다했다 싶으면 다른 신이 자신의 상위에 오르는 것을 기꺼이 수용한다. 또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면 주민들과 함께 피난도 다닌다. 그러나 피난길에서조차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해 주위의 저 가련한 사람들을 보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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