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방학, 중국 무협영화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 무협영화에 대한 지금까지의 견해와 경험에 대해 총체적으로 조감하는 책이 될 것 같다. 중국 역사와 문화를 관통하는 무협의 연원과 계보에서 시작하여 <화소홍련사>나 <황비홍> 같은 초기 무협영화, 6, 70년대를 수놓은 쇼브라더스의 무협영화들, 장철, 호금전 같은 전설적 감독, 왕우, 이소룡 같은 스타들 이야기, 90년대 이후 서극의 무협영화, 리안, 장예모의 무협 명작, 그리고 무협의 전설 김용의 소설과 그것의 영화화, 2000년대 이후의 무협영화 등 쓸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쓰다 보니 70년대 홍콩에서 무협영화를 만들며 맹활약한 우리나라 감독이 있어 하나의 독립된 챕터를 만들었다. 중국 무협영화 안에 자신만의 인장을 강하게 새긴 감독, 그 대단히 흥미로운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바로 정창화 감독의 이야기다.
정창화 감독은 1928년생으로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 1953년 <최후의 유혹>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다. 이후 정력적으로 작품활동을 하는데, 전후 척박했던 한국 영화계에서 특히 액션물을 개척한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가령 1960년 작인 <햇빛 쏟아지는 벌판>은 박노식, 김승호, 허장강, 황해 등 당대 스타들을 총출동시켜 만든 액션 스릴러 영화다. 1958년 작 <망향>이라는 영화는 홍콩 합작영화로, 이후 정창화 감독이 홍콩에서 활동하게 되는 기반을 마련한 작품이었다. 당대 아시아 최대의 영화사로 명성을 날리던 쇼브라더스는 새로운 무협영화를 만들 요량으로 한국의 정창화 감독을 초청한다. 이미 다수의 액션영화로 이름을 날린 정창화는 1969년 <천면마녀>를 시작으로 <여협매인두>, <육자객>, <래여풍>, <천하제일권> 등 여러 편의 무협영화를 연출했다. 그중 <천하제일권>은 홍콩에서의 흥행은 물론 북미에서도 개봉되어 첫주 1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북미 개봉 시에는 <죽음의 다섯 손가락>이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할리우드의 악동 쿠엔틴 타란티노의 역작 <킬빌>에서도 오마주 되었고 영화 속 독특한 음악 역시 차용되었다.
정창화는 쇼브라더스는 물론 홍콩 영화계를 양분했던 영화사 골든 하베스트와도 손을 잡고 여러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흑야괴객>, <파계>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1977년 귀국하였고 이후 영화사를 설립했다. 몇 편의 영화를 만든 뒤 은퇴하고 1984년 도미, 현재까지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지난 2011년 부천영화제에서 장편영화 심사위원장을 맡아 관객을 만난 적이 있고, 2003년 부산영화제에서 정창화 감독 특별전을 개최한 바 있다. 아무래도 오래전 은퇴하고 도미하여 영화계를 떠나 있다 보니 좀 잊혀진 면이 큰 것 같다. 전후 한국 액션영화를 개척했다는 점, 그리고 홍콩으로 진출하여 큰 족적을 남겼던 점 등은 적지 않은 업적이다. 그의 영화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재평가되고 재조명되기를 희망해 본다.
정창화 감독보다 한 세대 앞서 중국 영화계에서 맹활약하며 성과를 거둔 영화감독이 또 있다. 1930년대 중국영화의 첫 번째 황금기 시절, 그 한복판에서 활약한 정기탁 감독이다. 평양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정기탁은 이광수의 소설을 영화화한 <개척자>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다. 이후 여러 편의 영화를 감독하고 동시에 배우로도 활약했다. 전설적인 영화인 나운규와도 함께 작업했다. 1928년 부인과 함께 상하이로 건너가 역시 감독과 배우로 활동했다. 정기탁은 안중근의 의거를 소재로 한 <애국혼>이라는 영화를 만들어 명성을 얻었다. 그가 직접 안중근 역을 맡았다. 정기탁이 동양의 할리우드 상하이에서 연출을 맡은 영화는 총 9편이다. 또한 이 시기 최고의 남자 배우로 인기를 끌며 영화 황제라는 호칭을 얻은 한국인 남자 배우가 있었다. 그가 바로 김염이다. 같은 한국인 출신으로 김염이 정기탁의 영화 활동을 도왔다는 점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정기탁이 당대 최고의 여배우 완령옥과도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기탁은 완령옥과 함께 배우로 영화에 참여하기도 했고, 자신의 영화에 완령옥을 출연시켰다. 특히 그의 상하이에서의 마지막 작품인 <상하이여 안녕>에서 완령옥이 주연을 맡은 것이 인상적이다. 완령옥은 이 영화에서 과도기를 살아내는 신여성의 용기와 좌절을 잘 표현했고 흥행도 성공적이었다. 한국에서도 개봉하여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귀국한 뒤 정기탁의 행방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대동강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미확인 소문만이 남아있다.
이처럼 일찍이 중국 영화계에 진출하여 은막을 뒤흔든 한국의 선배들이 있다. 지금도 몇몇 배우들이 중국에 진출하여 인기를 끄는 경우가 없진 않지만, 이들은 그 정도가 아니라 영화계 중심에서 맹활약한 케이스다. 어려운 시절 이룩한 잊지 말아야 할 성과다. 적극적으로 재조명되고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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