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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다시 보기 23] 천하무적(天下無敵), 대국이 되려면 어진 정치를 해야 한다

 

  최근 국제사회에 전쟁이 발발했다. 이 시대에 전쟁이 일어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전쟁은 당사국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 영향을 끼치고 있고, 각국의 대응도 여러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유를 불문하고 전쟁은 우리가 피해야 할 목록의 가장 첫 번째 줄에 올라 있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번 사태가 조속히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전쟁에 관련된 고사성어는 많은데, 오늘은 ‘천하무적(天下無敵)’을 통해 국제사회의 일면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천하무적이란 세상에 겨룰 만한 적수가 없다는 뜻이다. 반드시 전쟁이 아니더라도 한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추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독보적인 지위에 올랐음을 나타낼 때 많이 쓴다. 그러나 천하무적의 애초의 뜻은 이와 조금 다르다. 고대 중국에서 국가 간 치열한 전쟁이 지속되던 대혼란의 시대, 그 시대 각 나라의 왕들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고심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맹자(孟子, 기원전 372-289)는 어떤 통치술을 제시했는데, 여기에서 바로 천하무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맹자 사상은 공자의 사상을 계승하고 심화한 것이다. 두 인물 사이에는 공통점도 있다.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는 천하를 주유하면서 제후들에게 자신의 정치 이상을 채택할 것을 권유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서 후진양성에 힘썼다. 공자 이후 백여 년이 지나 등장한 맹자 역시 공자와 마찬가지로 열국(列國)을 주유하며 제후들에게 인정(仁政)에 바탕을 둔 왕도(王道) 정치를 권고했지만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공자와 맹자 모두 자신이 생각한 정치가 현실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맹자가 열국을 주유하며 만났던 왕들 중에는 제(齊)와 양(梁)처럼 영토가 크고 백성 수도 많았던 대국의 통치자도 있었고, 작고 약한 소국의 통치자도 있었다. 대국은 소국을 침탈할 방법을 알고자, 소국은 위태로운 운명에서 벗어날 길을 모색하고자 맹자와 같은 사상가들을 초청해 그들의 의견을 들었다. 왕들 중에는 현명한 자도 있었고 어리석은 자도 있었는데, 맹자는 통치자들과의 대화와 다양한 경험을 통해 강국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맹자는 나라 사이 힘의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국과 소국의 관계

 

  ‘천하에 도가 있을 때는(有道), 덕이 작은 사람은 덕이 큰 사람에게 부림을 받고, 덜 어진 사람은 많이 어진 사람에게 부림을 받는다. 천하에 도가 없을 때는(無道) 작은 나라는 큰 나라에게 부림을 당하게 되고, 약한 나라는 강한 나라에게 부림을 당하게 된다. 이 두 가지는 하늘의 뜻이니, 하늘의 뜻을 따르는 자는 살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

맹자·이루(離婁) ()

 

  맹자는 우선 세상을 도가 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누어, 유도일 때와 무도일 때 각기 다른 원리가 있다고 했다. 도가 있을 때는 ‘덕(德)과 인(仁)이라는 무형의 가치’가 작동하지만, 도가 없을 때는 ‘대소(大小)’와 ‘강약(强弱)’이라는 힘의 논리가 작동한다. 특히 천하무도의 혼란의 시대에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부림을 당한다. 여기서 큰 나라와 작은 나라의 구분은 영토의 크기와 백성의 수에 근거한다. 영토가 크고 백성의 수가 많을수록 경제 규모가 커지고, 경제가 왕성해지면 군사력도 더불어 강성해져서 대국이 된다.

 

[그림1] <맹자주유열국도>

 

  대소와 강약이라는 힘의 논리는 역사적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 춘추시대에 170여 개에 달했던 나라들은 전국 시대에 20여 개로 줄어들었고, 전국 중기로 들어서면 칠웅(七雄)만이 살아남았다. 천하무도의 기간 동안 제후국 간의 패권 다툼이 격화되었고, 빈번하고 극렬한 전쟁을 치르면서 약소국은 소멸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국이 대국을 섬기는 것은 냉혹하지만 당연한 이치이다.

 

 

군사력으로도 안 되는 것이 있다

  이 당연한 이치에 따라서 전국시대의 질서도 재편되었다. 전쟁이나 협상을 통해서 대소와 강약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 힘의 논리를 맹자는 하늘의 뜻이라고 했고, 하늘의 뜻을 따라야 산다고 했다. 그러나 맹자가 힘의 논리만을 인정했을까? 결코 아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대국과 소국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공자께서도 어진 정치를 하면 적국의 백성 수가 아무리 많아도 어진 정치를 당해낼 수가 없다. 모름지기 임금이 어진 정치를 좋아하면 천하에 대적할 상대가 없게 된다(天下無敵)’고 하셨다. 지금 제후들은 천하에 대적할 상대가 없기를 바라면서 어진 정치를 하지 않는데, 이것은 마치 뜨거운 것을 잡았다가 손을 찬 물에 담그지 않는 것과 같다.

맹자·이루(離婁) ()

 

  맹자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통치의 핵심은 영토를 확장하거나 백성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어진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진 정치를 행할 수 있다면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천하무적의 나라가 될 수 있다. 앞에서 말한 대소와 강약이라는 힘의 논리가 여기서는 ‘어진 정치(仁政)’로 치환된다.

  그는 통치자가 인정을 베풀면 자연히 추종하는 세력이 늘어나고, 지지 세력이 늘어나면 난립하고 있는 여러 나라들이 자연스레 어진 통치자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분열과 전쟁의 전국시대에 법가나 병가는 부국강병을 주장하며 통일을 도모했지만, 맹자는 무력이나 군사력보다 어진 정치를 강조했던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맹자의 주장에 의구심을 품고 있다. 과연 어진 정치라는 것이 그 시대에 맞는 것이었을까?

 

 

맹자는 이상주의자인가

  어진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맹자의 주장이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로 전국 말기에 결국 법가적 이념에 기반한 진(秦)이 천하를 통일했지 않은가. 그러나 진은 통일 후 15년 만에 멸망했고, 뒤이은 한(漢)은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토대로 300여 년간 장기 지속했다. 이를 보면 어진 정치라는 것을 허무맹랑한 소리로만 취급할 수는 없다.

  맹자에 따르면 천하무적이 되기 위해서는 완력, 경제력, 군사력이 아닌 어진 정치가 가장 중요하다. 강대국이 되고 싶은데 어진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을 뜨거운 것에 손을 데이고도 찬물에 담그지 않는 것처럼 어리석다고 했다.

  어진 정치를 한낱 고대사회의 낡은 사상 정도로 치부하면 배울 것이 없지만, 역사를 회고하고 오늘날을 비추어보면 분명히 배울 것이 있다. 늘 그렇듯이 답은 항상 우리가 찾아야 한다. 천하무적의 원래의 뜻을 되새겨보고, 21세기에 천하무적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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