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쇠락한 홍콩영화를 보면서, 또 최근 홍콩의 정치적 사태를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감독들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프루트 챈(Fruit Chan, 陳果)이다. 가끔 그의 영화들이 떠올랐고, 그래서 가끔씩 그의 소식도 찾아보고 근작들도 찾아보곤 했다. <메이드 인 홍콩(1997)>으로 혜성같이 등장한 그도 이젠 홍콩영화, 나아가 아시아 영화의 거장이 되어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오늘은 프루트 챈에 대해 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프루트 챈은 홍콩 반환을 즈음하여 이른바 반환 3부작을 선보였다. 앞서 말한 <메이드 인 홍콩(1997)>,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1998)>, <리틀 청(1999)>이 그것이다. 이 세 작품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비평과 해석들이 있으니 여기서 자세히 풀어 쓸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간단하게 요약을 하자면 대략 이러하다. 일단 이 세 작품에서 묘사된, 반환 즈음의 홍콩은 몹시 허무하고 위태롭다. 홍콩은 과연 무엇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당시 많은 감독들이 그런 질문을 던졌는데, 프루트 챈이 관찰한 3부작 영화 안에서도 홍콩인들의 정체성은 많이 흔들리고 있고, 그 상실감이 만만치 않게 그려지고 있다. 여러 장면과 사건들을 통해 홍콩의 미래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마치 예고하는 듯하다. 출세작 <메이드 인 홍콩>은 10대의 방황을,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에서는 청년들의 허무와 절망을, 그리고 <리틀 청>에서는 아이의 눈으로 홍콩의 암담한 현실을 담아내고 있다.
이후 프루트 챈은 소위 매춘부 3부작을 만들며 반환 직후, 그리고 20년 뒤의 홍콩에 대해 관찰하기 시작한다. <두리안 두리안(2000)>, <할리우드 홍콩(2001)>, 그리고 근작인 <1+3(2018)>으로 이어지는 이 3부작 역시 예상대로 재밌고 밝은 영화들이 아니다. 먼저 <두리안 두리안>은 본토에서 건너와 불법 체류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매춘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극 중 주인공 인은 그러나 홍콩에 적응하지 못하고 본토로 되돌아간다. 주인공 진해로는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대만 금마장과 홍콩 금자형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할리우드 홍콩>은 전작들과는 다르게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뒤섞이는데, 마치 우스꽝스러운 블랙코미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반환 이후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는 홍콩의 모습을 비유하고 있는 듯 하다. 상하이 출신 창녀 홍홍은 바베큐집 뚱보 삼부자와 날건달을 유혹, 그들에게 잠깐의 달콤함을 선사한 뒤 그들을 곤경에 빠지게 만든다. <두리안 두리안>의 주인공 인과는 다르게 홍홍은 본토로 돌아가지 않고 홍콩에 적응하여 살아남는다. 홍홍역은 톱스타 주신이 맡아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인다.
<할리우드 홍콩>으로부터 17년, 3부작의 완결편 격인 <1+3> 역시 평범하지 않은 파격적 설정의 영화다. 멈추지 않는 성욕을 가진 여주인공 무이와 그녀의 세 명의 남편을 그리고 있다. 무이는 세 남편을 위해 밤낮없이 선상에서 몸을 팔지만 결국은 이용당하는 비련의 여인이라 하겠다. 여기서 여주인공은 홍콩을, 세 남편을 각각 중국, 영국, 홍콩 행정부로 빗대어 표현했다고 하여 화제가 된 문제작이기도 하다. 무이 역을 맡은 증미혜자는 금마장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프루트 챈은 2019년 서울독립영화제에 참가하여 한국의 한 매체와 인터뷰를 가진 바 있다. 그때 그는 홍콩 영화계를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홍콩영화는 현재 겨울잠을 자고 있고, 상업영화는 검열을 받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며, 독립영화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의 말대로, 홍콩 영화계는 2022년 지금까지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과거 그 시절처럼, 홍콩 특유의 멋진 영화들을 볼 수 있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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