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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 차이나] 왕가위 특별전을 보며

 

  작년 연말 개봉 20주년을 기념하며 재개봉되었던 왕가위의 <화양연화>는 코로나 상황에서도 관객 10만을 돌파하며 화제를 모았다. 해를 넘겨 올해에는 이런저런 이름의 왕가위 특별전, 혹은 기획전이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은 왕가위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어필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새롭게 관심이 가는 이렇다 할 새로운 중국영화가 없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이런 상황도 있는 것 같다. 왕가위는 영화마다 엔딩이 다른 몇 개의 버전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고, 그 스스로 리마스터링이니 리덕스니 하며 계속 손을 보는 것을 즐기는 것도 같다. 시대를 대표 했던 명작이라도 대개 시간이 지나면 좀 올드하게 느껴지고 촌스럽게도 여겨지는 법인데, 확실히 왕가위의 영화들은 지금 다시봐도 여전히 세련되고 스타일리시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가장 흔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되 평범하지 않고 독특한 형식을 구사하니 뭔가 색다르고, 거기에 반환을 앞둔 홍콩이라는 시공간적 의미가 더해지니 더더욱 남다른 의미가 더해지는 것 같다. 그런 여러 가지 것들이 더해져 왕가위는 데뷔 이래 늘 뜨거운 관심과 인기를 얻었고 세계영화계에서 자신만의 선명한 좌표를 찍은 바 있다.

  상기한 대로 왕가위에 대한 여러 행사들을 보면 아직 그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지만, 왕가위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한때 중화권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세계 영화계에서 큰 주목을 받던 때와 비교하면 최근의 화제성은 미미한 수준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제 좀 식상하다 라는 느낌도 받는다. 왜 더 이상 새로운 뭐가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자, 그렇다면 현재 그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을까. 변화된 상황에 발맞추어 웹드라마를 찍네, 아마존에서 제작하는 시리즈를 찍네 말들이 많았지만 제대로 진행되는 것 같지 않다. 왕가위가 뭘 하는지는 나중에 작품이 나와 봐야 알 수 있지, 중간에 하도 변동도 많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제대로 파악이 안 된다. 한마디로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래도 비교적 확실한 뉴스는 그가 영화 <블러썸>을 찍고 있다는 것이다. <블러썸>은 몇 년 전 루쉰 문학상과 마오둔 문학상을 수상한 진위청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90년대 개혁, 개방 이후의 상하이를 배경으로 세 명의 청춘을 따라 상하이의 근대사를 담아내고 있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왕가위로서는 <화양연화>, <2046>을 잇는 근현대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며, 그가 고향인 상하이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 궁금해진다. 내 개인적으로도 상하이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터라 왕가위가 그려내는 상하이, 상당히 기대가 된다.

 

[그림1] <화양연화> 재개봉 포스터

 

  나에게 왕가위는 여전히 90년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당시 한창 영화를 보던 때이기도 했고, 그의 여러 영화들이 워낙 독특하고 매혹적이어서 그 인상이 워낙 강렬했던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화양연화> 이후로는 작품 자체도 별로 없고 더 이상 그리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가령 2004년, 제작에 오랜 시간을 끌었던 <2046>이 공개되었을 때 다소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최근작 <일대종사>는 다시 그로부터 거의 10년 뒤에나 만나볼 수 있었다. 물론 중간에 옴니버스 <에로스>나 할리우드에서 만든 <마이 블루베리나이츠>가 있었지만 둘 다 이렇다 할 임팩트는 없었다. <일대종사> 같은 경우, 역시 허투루 영화를 만들지는 않는다는 느낌은 받지만, 그렇다고 막 환호할 만한 작품도 아니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변화는 있으나 본인이 노리는 새로운 영상언어의 창출까지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그것이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한 왕가위의 팬으로서 나름대로 왕가위 월드를 요약, 압축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말들을 할 것 같다. 먼저 왕가위 영화 중 대표작을 3편을 고르라고 하면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화양연화>를 든다.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를 2편만 들라면 데뷔작 <열혈남아>와 무협작 <동사서독>을 들겠다. 홍콩, 특히 반환 전의 홍콩이 궁금하다면 역시 <타락천사>와 <중경삼림>을 봐야 한다. 왕가위 영화는 과연 뭘 말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든다면 <아비정전>을 필수적으로 좀 봐야 할 것 같다. 그 영화 안에 왕가위 영화의 근간, 혹은 원형이 잘 담겨있다고 보여진다. 물론 해석과 감상은 관객들의 몫이자 자유이며, 왕가위 영화는 또한 그만큼 여러 층위로 구성되어 있어 폭넓은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2] <블러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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