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번역 연재] 천잉전의 『그토록 노쇠한 눈물』(1)

 

그토록 노쇠한 눈물(1)
(那麼衰老的眼淚, 1961)

 

 

천잉전(陳映真)

 

  청아(靑兒)가 보내온 편지를 자세히 읽으며 캉(康) 선생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어쩔 수 없어, 결국 탁자 위 편지를 잡고 있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세월의 상념이 아련하지만 그렇게 생생히 뇌리를 스쳐지나가고, 축 늘어진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 단단하고 메마른 주먹을 불끈 쥐게 되었다.

  청아의 편지는 여전히 간략했다. 청아의 편지는 언제나 그렇게 간략하다. 그래도 최근 캉 선생은 특히나 더 간략하다고 느꼈다. 그저 잘 있다는 말뿐이고, 덧붙이는 말은 용돈이 좀 필요하다는 말이 전부다. 읽으면서 한숨을 내쉬는 모양이 한 덩이 고민을 내려놓는 듯싶었지만, 캉 선생은 곧 어떤 위협과도 같은 불안을 느꼈다. 편지에서 줄곧 말이 없긴 해도 청아가 필시 모든 걸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스물한 살 나이에, 대학을 다니고 있으니 배운 사람이다. 그는 아주 미묘한 수치감을 느꼈고, 노쇠해져가는 창백하고 홀쭉한 두 볼이 모처럼 우울하게 불그레해졌다.

  캉 선생은 이제 막 오십을 넘긴 남자였다. 섬세하고 새하얀 지위 높은 양반이었다. 안경을 쓰지 않은 캉 선생의 얼굴은 일종의 온화하고 연약한 남성의 미모가 있었다. 지금 캉 선생은 자기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뭔지 모를 권태감과 끝 모를 허무함이, 쇠약해지고 여전히 떨리는 덧없는 꿈자리 마냥 심장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소파에 몸을 맡겨 되는대로 가장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이곳 고급 주택가의 거실은 너무 적막해서 사람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창밖은 습기 찬 초봄이었고 맨드라미는 한바탕 활짝 꽃을 피워 피마자 덤불 사이로 유난히도 붉게 빛났다. 그는 가슴이 아팠다.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적막 속에 중얼대고 영악하게 중얼거렸다. 근래에 밀려온 실패와 늘그막의 황당함이 이 죽음과도 같은 적막 가운데 들고 일어나 그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캉 선생은 괴로움에 몸부림쳤지만 어떻게 달리 설명할 길 없이 이런 격렬한 고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힘없이 담배를 꺼내 사정없이 불을 붙이고 뻐끔뻐끔 담배를 빨았다.

  이 때 그는 삐걱하고 문 열리는 소리를 들었고, 연이어 익숙하고 유쾌한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현관에 들어서자 오리 떼가 지나가듯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거실 복도를 지나갔다.

  “캉 선생님, 저 돌아왔어요.” 이 말을 하고 오리 같은 발걸음 소리는 주방으로 사라졌다.

  캉 선생은 별 관심 없이 “응” 소리를 내며 허리를 곧게 펴고 청아의 편지를 봉투에 넣어 서랍에 넣었다.

  “아버님 전상서……” 청아의 편지에 생각이 미치고, 단숨에 날아갈 것 같은 필체가 떠오르자 불현듯 적막감에 사로잡혔다. 문이 열리고 아진(阿金)이 들어와, 들고 온 깡통에 담긴 사오빙을 그의 앞으로 밀며 끓인 물 반 잔을 그에게 따라주더니, 자기도 하나 들고 창문 밑 소파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캉 선생은 그래서 그녀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지 알았고, 정말로 평소와 다르다 생각하자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염증이 치솟았다. 새로 산, 몸에 꽉 끼는 털실로 짠 치마를 입고, 꽃무늬 격자무늬 홑옷을 받쳐 입은 위에 새빨간 털외투를 두르고 있었다. 화장을 참 진하게도 했군 하고 캉 선생은 생각했다. 부부가 된 이후로 순박하고 소박했던 그녀는 생각이 미치는 모든 방면에 있어 신분의 변화와 걸맞게 변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음식을 덜어주면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정성껏 양미간을 찌푸리며 양복 위에 앉은 먼지를 털어냈다. 작은 일에도 의견을 내거나 갖가지 사소한 일까지 반대하곤 했다. 그래도 이 모든 일이 캉 선생 기분을 그렇게 상하게 만들지는 않았는데, 왜냐하면 이 모두 한 여자가 한 남자에 소유되었을 때 나오게 되어 있는, 여성의 자연스러운 적응이자 변화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자면 하녀에서 주부로 변천하는 것은 도통 적응하기 어려운 법이어서, 아진 자신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늘상 이상하다 느끼는 쪽은 바로 캉 선생이었다.

 

 

 

※ 상단의 [작성자명](click)을 클릭하시면 저자의 다른 글들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