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살인은 한 치의 쇠붙이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뜻으로, 간단한 말로도 남을 감동하게 하거나 남의 약점을 찌를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작은 쇠붙이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하니 말의 날카로움과 정확성이 강조된 표현이다.
여기서 한 치라고 하는 촌(寸)을 우리말로는 ‘마디’라고 풀이하기 때문에 통상 손가락 한 마디의 길이로 오해하기 쉬운데, 사실 한 치란 손가락 하나의 좌우 폭을 나타내는 크기이다. 마디 촌(寸)은 의사가 진맥할 때 손목에서부터 손가락 하나 정도를 띄운 위치에서 맥을 짚는 데서 나온 글자이다.
말의 힘, 말의 무게
이처럼 작은 쇠붙이인 촌철(寸鐵)로 사람을 죽이려면 급소를 정확하게 겨누어서 단번에 죽음에 이르게 해야 할 것이다. 말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촌철살인의 표현’이라는 것은 날카롭고 정확한 짧은 한 마디 말이 마치 살인도 가능할 정도로 힘이 있다는 것이다. 백만 마디 천만 마디의 장황한 말보다 의표를 찌르는 단 한 마디 말의 힘은 실로 크다. 그렇다면 촌철살인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처럼 단지 말의 힘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일까. 이 성어가 유래된 문장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어떤 사람이 수레 한 가득 병기를 싣고 와서 그 중 하나를 꺼내서 던지고 다시 또 하나를 꺼내서 던지지만 그렇게 해도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 나는 단지 한 치의 쇠붙이(寸鐵)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殺人).
– 『학림옥로(鶴林玉露)·지부(地部)』의 ‘살인수단(殺人手段)’ 중 –
이 구절만 보면 마치 살인의 기술을 전수하는 듯한 내용이다. 게다가 수록된 책의 항목이 ‘살인수단’인 것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사실 이 글은 북송(北宋) 임제종(臨濟宗)의 선승(禪僧)인 대혜선사(大慧禪師) 종고(宗杲)가 한 말이다. 종고는 자신을 찾아온 손님과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상대방에게 종교적 깨달음을 주고자 했고 촌철살인도 그런 대화중에 나온 표현이다.
종고가 말한 살인이란 그저 비유일 뿐이고 마음에서 생겨나는 망상이나 악심을 끊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망상이나 악심이 살인에 빗댈 만큼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수레 한가득 담긴 병기는 수양과 깨달음을 방해하는 장애를 제거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깨달음을 얻고자 다급한 마음에 이것도 써보고 저것도 써보지만 백방이 무효하다. 병기가 아무리 많거나 크기가 크더라도 일체 소용이 없다. 핵심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집중하여 요체를 파악한다면 한 치의 쇠붙이로도 충분하다.
방법은 바깥이 아닌 내부에 있다
촌철살인에서 죽이는 대상은 내 마음속 망상과 악심이다. 결국 병기를 던지는 대상은 남이 아니라 자신이고, 말이 겨누고 있는 대상도 남이 아니라 자신이다. 수양이든 깨달음이든 방법은 바깥이 아닌 내부에 있다. 촌철살인은 단지 말의 힘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 수련과 깨달음에 관한 표현이다.
굳이 거창하게 종교를 논하지 않더라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종고의 문장이 시사하는 바는 많다. 깨달음이 무엇인지, 왜 깨달아야 하는지, 어떻게 깨닫는지 등 연속적으로 피어나는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각자의 내부에 있고 그래서 다분히 주관적이다. 바쁘고 혼란한 시기일수록 내면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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