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성’ 담론의 성립 ― 루쉰과 『지나인 기질』의 관계를 중심으로(3)
(“國民性”話語的建構―以魯迅與『支那人氣質』之關係為中心)
리둥무(李冬木)
*李冬木 著, 『越境―“魯迅”之誕生』, 杭州: 浙江古籍出版社, 2023, 295-483.
(3) ‘쉬서우상’의 가능성과 그 한계
쉬서우상 회고록의 원문 문제가 분명해졌다면 다음번 토론으로 들어갈 수 있다. 여기서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쉬서우상의 회고는 기존에 있는 루쉰의 ‘국민성 사상’과 ‘탐원’에 관한 연구에서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 그리고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 책과는 또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필자는 이 경전 문헌을 재인식하는 작업을 통해 이 구체적 역사 문헌이 역사를 해석할 때 표출되는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파악하고자 한다.
먼저 쉬서우상이 회고를 하는 가운데 루쉰과 그의 ‘국민성’ 문제를 토론함에 있어 도대체 무엇을 말했는지 살펴보자. 앞에서 이미 소개했듯이 쉬서우상은 세 편의 글에서 이 일을 이야기했다. 기타오카 마사코의 연구에 따르면 그 가운데 두 편 글의 원문을 얻을 수 있어, 『내가 아는 루쉰』에 수록된 「죽은 벗 루쉰을 기억하다」와 「루쉰을 회고하다」로 앞에서 이미 소개했으니 아래 ‘1’과 ‘2’를 보라. 다른 한 편은 『죽은 벗 루쉰 인상기』에 실린 「잡지를 편찬하고 소설을 번역하다」로, 원래 발표된 잡지를 필자가 직접 찾아 수록된 문장과 동일함을 확인했으니 역시 원문을 확보했다 하겠으니 아래 ‘3’을 보라. 세 편 문장 속에 관련 부분은 발표 시간순으로 배열했고 아래 양상을 보인다.
1. 「죽은 벗 루쉰을 기억하다」(『신묘』(新苗) 제11기, 1936년 11월 16일)에서 관련 부분 |
루쉰이 고분 학원에 있을 때 수업이 끝나면 철학과 문학 서적을 읽기 좋아했다. 그는 나에게 세 가지 관련 문제를 이야기하곤 했다. 1. 어떻게 해야 이상적인 인성인가? 2. 중국 국민성 가운데 가장 결핍된 것은 무엇인가? 3. 그 병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로부터 보건대 당시 그의 사상은 이미 보통을 넘었다. 뒤에 그는 또 의학을 배우고자 하여 과학으로부터 시작해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나는 그래서 매우 존경하게 되었다. 광업으로 졸업장을 받은 사람이 이처럼 이상이 드높고 공부가 이처럼 튼실하니 범속한 무리가 감히 꿈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의학을 배운 후 성적도 매우 좋아 선생님들이 매우 아꼈다. 하지만 둘째 해 봄방학 무렵 평소처럼 동경으로 돌아와 돌연 ‘돌변’했다. “나 학교 그만뒀어.” 그가 나에게 말했다. “왜?” 내가 듣고 놀라 물으며 생각이 변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네가 아주 관심 있어하는 거 아냐? 왜 그만두었는지……” “맞아,” 그가 머뭇거리다가 결국 말했다. “나 문예를 공부하기로 결심했어. 중국의 멍청이들, 나쁜 멍청이들을 어떻게 의학으로 치료할 수 있겠어?” 우리는 서로 쓴웃음을 지었는데, 왜냐하면 멍청이와 나쁜 멍청이, 이 두 부류는 본래 우리가 늘상 이야기하는 소재였기 때문이었다. |
2. 「루쉰을 회고하다」(『신화일보』[新華日報], 1944년 10월 25일) |
1902년 나와 루쉰은 같이 동경 고분 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있었고 같은 반도 아니고 같은 자습실도 아니었지만 그가 먼저 나를 보러 왔고 처음 봤을 때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 역사적으로 중국인의 생명이 너무 값어치가 없어 특히 이민족의 노예가 되었을 때 우리는 더욱 처량했다. 이후로 나는 더욱 가까워져 볼 때마다 중국 민족성의 결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국에 있는 몸이었기에 심사가 복잡했다…… 우리는 항상 세 가지 연관된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1. 어떻게 해야 이상적인 인성인가? 2. 중국 민족에게 가장 결핍된 것은 무엇인가? 3. 그 병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1번에 대해서는 고금 중외 철학자들이 부지런히 추구한바 설명이 무궁무진하니 우리는 좋은 걸 가려 뽑아 좇으면 되니 더 말할 필요 없다. 2번을 탐색하자면 우리 민족에게 가장 결핍된 것이 성과 애임을 깨닫게 되고, 바꿔 말하면, 사기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서로 의심하며 적대시하는 나쁜 기질이 깊이 박혀있다는 것이다. 구호만 보면 듣기 좋고 표어와 선언은 보기에 좋고 서적에서는 겉으로 휘황찬란하고 듣기에 번지르르하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가면 정반대로 펼쳐진다. 3번 문제로 가면 당연히 역사 속으로 찾아 들어가야 하는데 이유가 많다 하지만 이민족에게 두 번이나 노예가 되었던 것이 가장 크고 깊은 병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노예가 된 사람이 어떻게 성과 애를 말할 수 있겠는가? …… 유일한 구제 방안은 혁명이다. 우리 두 사람은 모여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
3. 「죽은 벗 루쉰 인상기, 잡지를 편찬하고 소설을 번역하다」(『민주』(民主) 제38기, 1946년 7월 6일) |
루쉰이 고분 학원에 있을 때 항상 나와 같이 아래 들은 세 가지 관련 문제를 토론했다. 1. 어떻게 해야 가장 이상적 인간인가? 2. 중국 국민성 가운데 가장 결핍된 것은 무엇인가? 3. 그 병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는 이 세 가지 문제에 대해 평생토록 부지런히 연구하여 뒤에 의학을 버리고 문예 운동에 종사하는 결단을 내린바, 그 목표 가운데 하나는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으로, 이들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조금씩 문제를 해결한다면 공헌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잡지를 편찬하고 소설을 번역하는 주지는 여기에 중점이 있다. 후반생에서 창작이 여럿으로 그 주지 역시 여기에 중점이 있다. |
시간상으로 보자면 「죽은 벗 루쉰을 기억하다」는 “1936년 11월 8일 루쉰 서거 19일 후”에 적었고, 「루쉰을 회고하다」는 “1944년 10월”에 적어 8년의 시차가 있고, 「죽은 벗 루쉰 인상기, 잡지를 편찬하고 소설을 번역하다」의 발표 일시(작성 일시는 불분명)는 1946년 7월 6일로 근 10년의 시차가 있다. 만약 이 근 10년의 시간이라는 간격이 있는 세 편의 문장 속에서 ‘최대 공통점’을 찾는다 하면 바로 루쉰과 쉬서우상이 ‘고분 학원에 있을 때’ ‘국민성’ 화두 속에 세 가지 문제에 대한 것이라 하겠다. 이것이 쉬서우상의 기억 속에 가장 깊게 남고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일 것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억 역시 미묘한 변화를 일으키지만 위에서 본 바대로 30여 년 혹은 40여 년을 지나더라도 이 ‘공통점’의 내용은 그대로 변하지 않고, 유일하게 다른 부분이라면 ‘2’번 항목에서 ‘1’번과 ‘2’번의 “중국 국민성”이 “중국 민족”으로 변했고, ‘3’번 항목 제1조에서 “이상” 앞에 “가장”이라는 글자가 추가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찾아 열람한 관련 논문과 연구 저서 가운데 쉬서우상 기억 속에 상술한 자료의 처리는 모두 ‘최대 공통점’을 수용하는 방식을 취했으니, 곧 화제의 시간과 장소 그리고 화제의 내용을 추려 단순한 사실로써 사용했다. 그래서 자료를 인용함에 있어 매우 편리하고 상호간 비교와 대조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아무 자료나 골라잡아도 동일한 지점을 증명할 수 있었다. 루쉰이 일찍이 고분 학원에 있을 적에 이미 ‘국민성’ 문제를 사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대 공통점’ 가운데 ‘중국 국민성’과 ‘중국 민족’과 같은 종류에 보이는 미세한 차이에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해, 앞에 든 우번싱의 논문 가운데 ‘국민성’과 ‘민족성’ 의미가 동일하다는 증거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 뒤 혹은 지금에 이르러 이와 같은 미세한 차이는 완전히 무시되기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최대 공통점’은 다시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종의 ‘상식’으로 변하고 말았다.
필자는 이 ‘최대 공통점’을 역사 사실로 삼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고 이 역사 사실을 인용하여 하나의 상식으로 삼음이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 또한 아니다.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이 역사 사실을 인용자 역시 마찬가지로 상응하는 ‘걸러내는’ 처리를 하지 못했고, ‘상식’이 전문 서적에서 역시 ‘비상식’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루쉰 국민성 사상을 ‘탐원’하는 글을 보았는데 그 가운데 놀라운 점이 있었다. “센다이에서 의학을 배울 때 그는 친구 쉬서우상과 ‘어떻게 해야 이상적 인성인가? 중국 국민성 가운데 가장 결핍된 것이 무엇인가? 그 병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와 같은 세 가지 문제를 토론했다.” 여기서 쉬서우상의 원래 말이 규범에 맞지 않게 인용되었거나, 더 엄중하게는 역사 사실의 시간과 장소에 착오가 있었다. 쉬서우상이 제공한 이 역사 사실이 인용되는 과정에서 대수롭지 않게 변해, 그저 역사 사실의 일종의 기계 복제, 추상적 부호에 불과하게 되어 논자는 자신의 입론에 전제를 구성하는 역사 사실 자료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필자는 쉬서우상의 말을 하나의 대상으로 삼아 토론한 논문을 본 적이 없고 이 의의로 본다면 기타오카 마사코의 논문이 하나의 예외라 하겠다. 바로 위에서 소개한 것과 같이 이 논문은 원래 문장에 근거하여 『내가 아는 루쉰』에서 생략되고 변경된 부분에 대해 수정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국민성’ 개조가 쉬서우상이 회고하며 말한 그 자신도 현재 계속해서 고집하고 있는 문제라 보았던 것이다. 이는 매우 통찰력 있는 말이다. 이 점을 계승한다는 전제 아래 필자는 쉬서우상의 말이 자신의 관점을 제기했다는 점을 분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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