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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 차이나] 페마 체덴과 장률

 

  티베트 영화를 선도하며 국제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페마 체덴(1969.12.03.~2023.05.08., 萬瑪才旦 Pema Tseden)감독이 최근 갑자기 별세했다. 신작을 준비 중이었고 아직 젊은 나이인지라 그의 별세는 너무 갑작스럽고 아쉬운 마음이 크다. 최근 그의 영화 <풍선>과 <진파>를 재밌게 보았고 계속 주목하고 있던 터라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더 큰 것 같다.

  페마 체덴은 소수민족인 티베트족으로, 한족이 아닌 티베트인 스스로의 관점에서 티베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 왔다. 소수민족 출신이 중국 주류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성공하기는 어려운 상황일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터, 페마 체덴은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따라서 중국 내에서 보다 오히려 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적극 알렸다고도 할 수 있겠다.

  왕가위가 제작을 맡아 큰 화제를 낳기도 했던 <진파(2018>는 한국에서도 개봉되어 접하기 어려운 티베트의 광활한 자연과 티베트인들의 독특한 생활 문화 등을 보여주었다. 영화의 서사 자체는 단순하지만 독특한 풍광과 좀 낯설기도 한 그들의 문화가 더해져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한다. 거친 티베트 고원을 운전하는 트럭 운전사 진파는 끝없는 그 길을 걷고 있는 남자를 태운다. 그의 이름도 진파, 어딜 가냐고 묻는 질문에 아버지를 죽인 사람을 찾아 원수를 갚으러 가는 길이라고 답한다. 받은 원한은 반드시 돌려준다는 티베트의 전통적 은원관, 중간에 차에 치여 죽게 한 양을 위해 사원에 들려 기도를 하는 남자, 복수를 가슴에 품은 진파와 그를 뒤쫓아가는 또 다른 진파, 영화는 티베트의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로드무비의 형식을 취한다. 티베트의 풍광과 문화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작인 <풍선(2019)>은 부산영화제에도 출품되었던 작품이다. 티베트 고원에 사는 주인공 부부는 아버지를 모시고 세 아들과 살아간다. 평범하고 또 전형적인 티베트 가족문화를 보여주던 그들에게 의도치 않게 일련의 일들이 발생한다. 아이들이 콘돔을 가지고 노는 바람에 엄마는 생각지 못하게 임신을 하게 되고, 부부는 세 자녀만을 허용하는 당국의 정책과 티베트의 전통 문화 사이에서 고민한다. 제목인 풍선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하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풍선을 통해 자유와 순수를 갈망하는 하나의 의미와 동시에 콘돔으로 상징되는 어떤 통제, 또는 스스로 조심하고 있는 티베트인들의 고민 같은 것이 읽힌다.

  관찰자의 시선이 아닌 그 자신 티베트인으로서 자신들의 삶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표현한 페마 체덴 감독은 분명 중국영화, 나아가 세계 영화계의 소중한 자산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부디 명복을 빈다.

 

[그림1] <진파> 포스터

 

[그림2] <풍선> 스틸 컷

 

  페마 체덴을 이야기하다보니 자연스레 또 다른 소수민족 감독인 장률(張律)이 떠오른다. 장률 역시 중국의 소수민족 감독이면서 동시에 우리와 뿌리가 같은 조금은 복잡한 문화적 국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 또한 페마 체덴과 마찬가지로 중국 내 소수자인 조선족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담으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자신의 출신이 그렇듯 사회적, 문화적 경계에 있는 인물들, 소수자들의 삶을 이야기해왔고 한국을 비롯 국외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05년 <망종>을 시작으로 <중경>, <경계>, <두만강> 등의 작품을 잇달아 선보였고, 이후 한국에 거주하면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경주>, <춘몽>, <후쿠오카> 등의 도시 연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다시 중국으로 복귀하여 <야나가와>, <백탑지광> 등의 영화를 만들어 중국 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신작 <백탑지광>은 5월에 열린 북경 국제영화제에서 5관왕을 차지했다는 후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초기부터 장률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 영화작업을 지켜보았다. 중국과 한국, 소설가, 지식인, 소수자 등 여러 경계에 서 있는 그의 문화적 국적이 특히나 흥미로웠다. 한국에 와서 만든 작품들 중엔 사실 크게 인상에 남는 작품이 없고,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경계(2007)>와 <두만강(2010>이다.

  <경계>는 사막화가 진행되는 황량한 몽골의 초원에 탈북인 모자 순희와 창호가 숨어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다. 몽골과 중국의 경계 마을, 몽골인 헝가이는 모두가 떠나가는 마을을 지키며 고집스레 사막에 나무를 심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희 모자를 받아준다.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먹먹함을 안기는 엔딩이 기억에 남는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두 모자는 다시 길을 떠난다.

  <두만강>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두만강을 사이에 둔 조선족 소년과 북한 소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두 소년의 우정, 의리는 그러나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예상치 못하게 전개되고, 두만강은 그들 모두의 슬픔과 희망, 안타까움을 다 품고 아무 말 없이 그저 묵묵히 흘러간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고향인 북한에 가겠다며 펄펄 눈이 내리는 두만강 다리를 걸어가는 장면은 그대로 먹먹한 슬픔이다.

  장률 영화에 대한 느낌을 한마디로 말해보라면 그런 ‘먹먹함’인 것 같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활발한 활동을 해주면 좋겠고, 중국영화계에서도 더 인정받고 큰 거장으로 우뚝 서길 기대해 본다.

 

[그림3] <경계> 스틸 컷

 

[그림4] <두만강>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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