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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연재] 선충원의 「의사」(5)

 

 

의사(5)
(醫生, 1931)

 

 

선충원(沈從文)

 

  정말 너무 어지러워 그냥 주저앉고 싶을 뿐이어서 그 뒤에 어떻게 어떤 사람 빈집에 들어앉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지요. 모든 게 영문을 모를 일이라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어느새 밤이 되어 방에는 불 하나가 켜져 있고 이 불은 까마득히 먼 곳에서 오는 듯했고 도대체 무슨 불빛인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지요. 조금 생각해보다가 앞의 일을 떠올리게 되었고 어떻게 어느 사내를 따라 내달려 왔고 논바닥으로 뛰어들어 내달렸고 어떻게 쉴 생각을 했으며 어떻게 앉을 생각을 했는지 좀 지나자 또 가물가물해지기 시작했죠. 내가 도대체 꿈을 꾸고 있는 건가 하고 생각했어요. 이마를 만져보니 꿈을 꾸는 것 같진 않았죠. 내가 있는 곳이 매우 청결하고 상쾌하여 앉아 있는 멍석 너머 무엇이 있나 만져보니 뽀송뽀송한 잔돌과 모래가 한 움큼 잡혔지요. 지난 일을 되짚어 생각하자니 무심코 길 옆 구덩이로 굴러떨어졌던 일이 떠올랐지요. 내가 있는 곳이 구덩이가 아니면 동굴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왜냐하면 그렇게 잘디잔 모래는 동굴이 아니면 있을 수 없었지요. 나는 소리 질러 누군가 나를 구출해줄 희망이 있는지 보려 두세 번 소리쳐 봤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지요. 내가 있는 곳은 무슨 집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구덩이도 아닌 것이 내가 만약 무심코 미끄러졌다면 이 멍석 위에 있을 리 없었겠죠. 그리고 온몸을 더듬어봐도 어디 다친 곳도 없었지요. 내가 왼쪽으로 희미한 불빛을 내는 물건을 만졌을 때 다름 아닌 사람을 고치는 내 기구인 것을 알았고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이곳으로 모셔진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요.

  내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그 사람이 나를 업어 이곳으로 데려왔고, 이곳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동굴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를 깨닫자 다시금 불안하고 두려워지기 시작했죠. 이게 바로 돈을 목적으로 사람을 유괴하여 몸값을 받으려고 모셔놓은 거 아닌가하고 말이죠. 왜 하필 나 같은 사람을 가지고 계책을 꾸몄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죠. 내 직업이 이런 일을 겪을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지 미처 몰랐던 거지요. 내가 사는 곳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몰라 불안했답니다.

  납치하여 몸값을 요구한다는 소문을 들으면 지인들이 얼마나 안절부절못할지를 알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나는 그저 한갓 사람이고 모든 일을 당신들이 돌봐줘야 하고 당신들 정신을 수고롭게 만드는 허다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유괴라는 일은 지주에게 발생하는 재난이지 나도 그런 일을 당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지요. 이들이 나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이내 그들 인질이 되었다고 믿게 되었지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나는 전후 사정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볼 수 있었고 내가 왜 시골에 내려와 이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그에게 이끌려 왔으며 길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를 기억하게 되었고 그들이 정교하게 계획을 세운 대로 되었다고 느꼈지요. 이번에 그들은 내가 R시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를 탐문했을 것이고 내 친구들에게 금전상의 손해를 입히려 한 것이지요. 그 토비가 바보처럼 연기를 꾸몄을 때 나는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 무슨 나쁜 짓을 할 거라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나를 잡아 왔으니 언제 그들 두목을 만나게 될까? 두목을 만나고 나에게 십 만이나 오 만을 요구한다면 나는 산골 두령에게 무엇이라 둘러댈까? 한참을 생각해봐도 어떻게 몸 성히 빠져나갈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죠. 몸값이 좀 적게 나와 내가 좀 모아 놓은 돈으로 지불할 수 있어 지인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길 바랐죠. 그리고 하루속히 나가서 관청을 시끄럽게 만들지 않길 바랐죠. 혹여 군대가 출동해 수색하면 토비가 떠나고 나를 여기 남겨두었다 해도 군대는 마을로 들어가 하릴없이 하늘로 총을 쏘아대며 닭이며 오리며 잡고 돼지와 양을 끌고 가 선량한 마을 사람들을 잡아 무리를 지어 북을 울리며 전과를 보고하게 마련이니 차라리 산동굴에서 굶어 죽을지언정 그러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죠.

  동굴에는 아무도 없었고 밧줄에도 묶여있지 않았지만 내가 여기까지 끌려왔으면 누군가 나를 돈줄로 알았을 것이니 도망가기 쉽지 않을 거라 마음속으로 짐작했지요. 동굴 안에는 아무도 없지만 동굴 밖에는 매복을 깔아놓아 겉으로는 소홀한 것 같아도 실제로 나에겐 자유가 없는 것이지요. 나를 속여 이곳으로 끌고 온 수완이 이미 작지 않으니 두목질 하는 사람도 당연히 이 일에 주목하고 있을 것이지요. 밖에는 분명히 매복 중인 졸개들이 있을 거고 손엔 칼을 들고 동굴 밖에 몸을 숨기고 내가 도망가려 하면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그 졸개는 서슴없이 칼을 쓸 것이지요. 나는 전에 토비굴에서 도망치려다 두 귀를 잘린 사람을 보았는데 그렇게 되긴 싫었죠. 하물며 여긴 토비굴이고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텐데 내가 어디로 도망간들 이 사람들에게 붙잡혀와 벌을 받을 것이 뻔하지 않겠소?

  그래도 난 오래 생각하다가 고함을 두 번 질러도 누구 하나 대답이 없으니 내 심장은 좀 뛰기 시작했어요. 그들이 모두 밥 먹으러 몰려가 나를 잊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라 생각했지요. 용기를 내어 빛이 있는 곳으로 가만히 다가갔지요. 바닥에 모래가 뽀송뽀송한 걸 보니 중간에 물속에 빠지는 일이란 없을 거고 천천히 기어나가다 보니 앞에는 커다란 돌이 있고 빛이 바깥에서 바위틈으로 새어 들어오다가 꺾여서 그렇게 희미하게 보이는 것이었지요. 그 바위틈으로 바라보자니 다른 검은 돌 하나가 있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도통 알 도리가 없었지요. 민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게지요. 바위 사이로 들어오는 광선으로 보건데 곧 날이 저물 거라는 것을 알았죠. 마음이 조급해지는데, 굶주리는 건 습관이 들지 않았고 반나절 물도 마시지 않아 뭘 좀 먹어야지 싶어서였죠. 지금처럼 사람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고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고 사람이 언제 올지 알지 못하니 이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요?

  난 좀 조급해지고 조금은 이상했는데 내가 도대체 어디로 해서 이 동굴로 오게 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죠. 이 바위틈으로는 사람 하나 드나들 수 없으니 다른 방법으로 이 산동굴의 출입을 막았다는 말인 거죠. 얼마 뒤 땅 위를 기어 다니며 여기저기 더듬어보니 동굴이 그리 넓지가 않아 사방 열다섯 장에 못 미치니 바로 어느 정도 넓이인지 알아차렸고 동굴 안이 퍽이나 건조하다는 것을 알았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더듬어보니 나무 기둥으로 만든 쪽문을 있단 걸 알게 되었어요. 졸개가 칼을 들고 밖에 있을까 봐 조심하며 가만히 그 쪽문을 밀었어요. 쪽문은 아주 견고한 듯 싶었지만 걸쇠를 채우지 않아 그리 힘들이지 않고 밀어제칠 수 있었지요. 심장이 마구 뛰었지만 그리도 기쁠 수가 없었지요. 칼이 들어올까 방비하며 아주 오래도록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지요. 혼잣말도 해봐도 문 옆에 누가 매복하고 있지 않아 문을 밀어제쳤지요. 나는 정말 바보였어요. 알고 보니 막힌 길이었다니! 거기는 동굴에서 다른 방향으로, 쪽문으로 분리하여 양식을 전문으로 저장하는 창고였지요. 발아래 감자가 가득했고 큰 항아리 하나가 손에 닿았는데 항아리 속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넣어보니 동그란 계란이 가득 만져졌지요. 그리고 다른 물건도 만져지니 소리를 지르며 기뻐할 정도였지요.

  원래 종이 꾸러미도 손에 만져져 성냥 한 개비만 있으면 종이로 촛불을 삼아 동굴 안을 밝힐 수 있겠다 생각했죠. 난 정말 바보예요, 반나절이 가도록 성냥 생각을 못 하다니! 난 정말 바보예요, 보통 때 담배도 안 피우니 만약 담배를 피웠더라면 목숨을 부지할 물건을 가지고 다녀 성냥 써먹을 생각을 했겠지만 성냥 한 개비 나올 구멍이 없었지요.

  나는 여전히 멍석 위에 앉아 하늘이 나에게 내린 재난이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끝날지를 기다리며 만약 하느님이 이 동굴로 왕림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불안해하더라도 소용이 없다 생각했지요.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아주 희미한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듯해서 귀가 울리는가 싶기도 했는데, 좀 지나니 소리는 가까워져 사태가 좀 변화가 있겠구나 싶었고 마음이 차분해져 조급해하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아 만약 그 우두머리를 만나면 해명할 말이 아주 많아 손해 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죠. 조금 있으니 그 목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작아져 내 일에는 별반 도움이 안 되는 듯하여 무척 실망하게 되었지요. 그래도 아직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사람이 머무는 촌락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사람 사는 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것은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었죠. 게다가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일은 토비들의 터무니없는 요구도 아니고 사람들이 나를 가둬 결국 굶겨 죽이고 말 것이라는 게지요. 지금 무심코 창고를 발견하고 동굴에 이렇게 많은 양식이 저장되어 굶어 죽을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니 다른 일은 그리 많은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죠.

  다시 멍청히 잠이 들어 잠이 들 적에 어쩌면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고 잠에서 깨면 다를 것이라 생각했죠. 내 상황이 하느님이 마귀를 부려 시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친구들이 장난치고 있는 거겠죠. 친구들 몇하고 토론을 벌인 적이 있어, 과연 아미산에 도사가 은거하고 있느냐였고 나는 사천성에 신선이 살고 있다는 미신이 어디에서 기원했는가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한 결과 신선은 하나도 없음을 증명해냈는데, 지금 혹시 이들 친구들이 장난치는 것인지도 모르는 일이었죠.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죠. 이렇게 장난을 치니 사흘이 될지 닷새가 될지도 모르고 내가 조급을 떤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그때 가서 그들이 나를 생각해서 문을 열어줄지도 모르는 일이고 다른 이상한 방법으로 나를 풀어줘 돌아가게 할지도 모르는 거였죠. 나는 그때 좀 즐겁지 않아 그들이 나를 가지고 논다고 해도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고 이런다고 병원에서 환자들이 피해를 보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나를 가지고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내가 병원에 휴가를 내야 한다는 일을 까먹어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 할까 두려울 따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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