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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다시 보기 24] 구우일모(九牛一毛), 내 죽음을 가벼이 할 수 없다

 

  구우일모는 아홉 마리의 소 가운데 박힌 하나의 털이란 뜻으로, 매우 많은 것 가운데 극히 적은 수를 이르는 말이다. 소는 농경사회의 가축 중에 가장 친근하면서 체격이 큰 동물이다. 큰 몸집에 우직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소가 아홉 마리나 있다. 한자에서 숫자 9는 가장 큰 수를 나타내므로, 아홉 마리 소의 털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무수히 많음을 뜻한다. 그 수많은 털 중 한 올이라면, 눈에 띄지도 않는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다. 오히려 하찮을 정도이다. 수많은 것들 중 하나이므로 별 의미도 없고 존재가치도 미미하다.

  사람들은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도 가끔 제 존재가 아주 작고 사소하고 가볍다고 여겨지는 순간에 맞닥뜨리곤 한다. 게다가 내가 마치 백사장의 한 알 모래와 같다는 그 생각이 몹시도 강렬하고 실감나게 다가올 때도 있다. 자기 존재의 크기와 가치가 문득 자각될 때가 그렇다. ‘구우일모’는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45년-86년)이 한 말인데, 이 위대한 역사가도 역시 자신의 존재를 한없이 작게 느낀 적이 있었다.

 

[사진1] 사마천 동상

 

  사마천은 이릉(李陵, 기원전 134년-74년)을 변호한 죄로 궁형(宮刑)에 처해졌다. 당시에는 궁형과 사형 중에 선택을 할 수가 있었는데, 궁형을 당하고 살아남는 것이 죽음보다 못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대부분은 사형을 택했다. 그리고 사형도 50만 전이라는 거액의 돈으로 면할 수가 있었기에, 사마천은 돈을 마련하기 위해 주변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황제의 노여움을 산 사마천을 도우려 나서는 이가 없었기에 뜻대로 되지 않았고, 결국 그는 궁형을 택했다.

 

 

살아야할 명분을 죽음에서 찾다

  저술 중이던 『사기(史記)』를 완성하기 위해서였지만, 당시 통념상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견디며 살기로 결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사마천이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그의 가치관이었다. 살아남을 것인가 죽음을 받아들인 것인가를 놓고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될까, 여생을 구차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내 결정을 역사는 어떻게 평가할까 등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겠는가? 삶과 죽음, 존재의 가치, 죽음의 무게라는 깊은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왜 여기서 이대로 죽을 수 없는지를 밝혔다.

 

만일 제가 법의 심판을 받아 죽음을 받아들인다면, 마치 아홉 마리의 소 중에 털 하나가 없어진 것처럼(若九牛亡一毛) 하찮을텐데 땅강아지나 개미의 죽음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사마천(司馬遷),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

 

  사마천은 이대로 죽는다면 자신의 죽음은 구우(九牛) 중 일모(一毛)가 사라진 것처럼 너무도 보잘 것 없게 될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서 죽음을 선택할 수 없었다. 구우일모의 출처인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는 사마천이 친구인 임안(任安, 字가 少卿)에게 보낸 답장 편지이다. 이 편지를 쓸 때에 임안은 유거(劉據)의 무고(巫蠱) 사건으로 투옥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였고,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고 『사기』를 저술하고 있었다. 사형을 선고받은 임안이 사마천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는데, 사마천은 자신의 처지로 인해서 답장을 못한 채 미루고 있다가 임안의 사형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답장을 보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기로 작정한 사마천이 죽음을 앞둔 친구에게 쓴 편지에는 임안을 향한 염려와 위로도 있지만, 실상은 사마천이 살기로 결정한 이유와 명분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고,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의 흔적이 드러나 있다.

 

사람은 본디 한번은 죽게 마련인데, 어떤 죽음은 태산처럼 무겁고 어떤 죽음은 기러기 깃털보다 가볍습니다. 추구했던 바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마천(司馬遷),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

 

 

죽음의 무게는 생전에 이룬 것으로 결정된다

  죽음의 무게는 생전에 추구했던 바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인데, 이는 죽음은 또한 삶의 연속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죽기 전에 『사기』를 완성한다면 자칫 개미의 죽음과 다를 바 없었을 자신의 죽음이 어쩌면 태산보다 무거울 수도 있을 것이라 본 것이다.

  사마천은 죽음도 궁형의 치욕도 두렵지 않았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오직 가치 없는 죽음이었다. 땅강아지나 개미의 죽음처럼 치부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끝내 살아서 저술을 남겼다. 살아서 고통스러울지라도 죽어서 이름이 수치를 당하는 것은 못 견딘 것이다. 생전의 고통과 사후의 명성을 맞바꾼 셈인데, 죽은 후의 이름값, 죽음의 무게가 무엇이길래 그는 사후의 명성이 죽음에 무게를 실어줄 것이라 믿었을까. 구우일모는 단순히 수많은 것 중의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것 중 하나가 되기를 극구 거부했던 사마천의 생사관(生死觀)이 반영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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