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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변강학 4] 중국 변강과 미얀마

 

  중국과 미얀마의 국경선 길이(2100km)는 북쪽의 변경 국가들인 몽골(4700km), 러시아(4300km) 그리고 서쪽의 인도(3400km)를 제외하면 나머지 11개국 중에서 가장 길다. 중국과 육상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는 14개 국가들 가운데는 해양으로 나갈 수 없는 국가들이 대부분이다. 지난 회에서 알아본 라오스를 비롯해서 부탄, 네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몽골 등이 모두 내륙 국가들이다. 러시아는 오호츠크해로, 한반도는 황해와 동해로 이어지고, 베트남은 남중국해, 미얀마와 인도는 벵골만과 인도양 등을 면하고 있다. 미얀마는 중국이 자신의 접경국 중에서도 전략적 요충지로 여기는 곳인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석유와 가스 운송 문제이다. 해상으로 중동의 석유와 가스를 미얀마 짜욱퓨(Kyauk Phyu)까지 운반한 뒤 다시 미얀마 내 800km에 달하는 송유관을 거쳐 중국에 들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신(新) 실크로드 전략 구상이라는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있어 미얀마의 육상[one belt]과 해상[one road]은 모두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 수입국이라는 사실도 미얀마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윈난성 루이리[瑞麗]시와 얕은 강을 두고 접해 있는 미얀마의 무세(Muse) 지역은 무기와 마약 밀매, 카지노 등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중국에서 유통되는 마약의 90%는 미얀마에서 생산된 것이다. 미얀마는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가장 넓은 나라로, 한반도 면적의 3배가 넘는다(67,8500㎢). 약 6천만 명의 인구 중 다수 민족인 버마족(68%)을 비롯해 샨족(9%), 카렌족(7%), 중국인(3%), 인도인(2%), 몬족(2%) 등 여러 민족이 함께 사는 대표적인 다민족 국가이다. 미얀마 땅에 살면서도 미얀마 국적을 얻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로힝야(Rohingya)족은 미얀마 정부가 공식 인정한 소수민족(135개 민족)에도 포함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인종 청소의 위험을 피해 도망가거나 이웃 나라로 쫓겨 간 로힝야 난민의 수가 수십만이나 된다고 한다. 미얀마 근대사가 낳은 비극의 일단이다. 아웅 산 수 찌(Aung San Suu Kyi, 1945~ ) 여사가 받았던 노벨 평화상(1991년)도 이 학살에 대한 책임으로 인해 회수되었다고 한다.

 

[사진1] 중국 루이리시의 건물들과 미얀마 무세(좌), 방글라데시 로힝야 난민촌(우)

 

[사진2] 중국-미얀마 고속도로(좌), 중국-미얀마 고속철도 개통식(우)

 

  1287년 몽골의 침입으로 멸망한 바간 왕조(1050?-1287)와 16세기에 몽골과 함께 남하했던 샨족 유민을 중심으로 한 타웅우 왕조(16C 중반-1599)에 이어, 콘바웅 왕국(18C 중엽-1885)은 3차 영국-버마 전쟁에서 패하여 1885년 막을 내린다. 이후 인도의 속주 형태로 영국의 지배를 받던 미얀마는 1946년 영국령 버마가 되었고, 1942년에 아웅 산 장군과 손을 잡은 일본군이 진출하여 영국을 내쫓고 괴뢰 정권인 ‘자유 버마’를 세웠다. 그리고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 다시 영국 식민지로 돌아갔다가 1948년 1월 4일 독립을 이루고 독립국 ‘버마 연방’(The Union of Burma)이 되었다. 그러다가 1962년 네 윈의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부가 1989년에 국호를 미얀마연방공화국(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으로 바꾸었는데, 다수 민족인 버마족에서 따온 명칭인 ‘버마’는 영국 식민지 시대의 잔재이며 135개 민족 전체를 아우르지 못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국호뿐 아니라 수도도 옮긴다. 1988년의 대규모 민주화 시위(일명 8888혁명) 이후 아웅 산 수 찌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을 거둔 총선을 백지화하고 제2쿠데타를 통해 권좌에 오른 딴쉐 군부 정권은 2005년 수도 이전 계획을 전격적으로 실행에 옮긴다. 다분히 민간 신앙에 의지해 양곤 북쪽 320km 지역의 네피도(Naypiydaw)로. 연방국가인 미얀마의 단합을 위해서는 남쪽 해안에 치우친 양곤 대신 국토의 중심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해야 한다는 명분이었으나, 1988년 ‘양곤의 봄’으로 미국이 미얀마를 ‘폭정국가’ 리스트에 올리자 딴쉐 정권은 미국이 자신들을 이라크식으로 제거하려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방어에 유리한 내륙 도시를 선택했다는 분석도 있다.

  2020년 11월 총선이 부정선거였다는 명분으로,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벌써 8개월이 흘렀다. 2021년 2월 1일 군부 쿠데타 3주 후, 2021년 2월 22일 반 쿠데타 민주화운동, 일명 ‘22222 시위’가 일어났고, 약속한 1년의 혁명 과도정부 시한도 이제 4개월 남았다. 그런데 지난 27일, 갑자기 군부에서 4개월 동안의 휴전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군부와 사전 교감을 하고 일으킨 쿠데타라고 여기며, 미얀마 곳곳에서 중국 공장에 대한 방화와 약탈 소식도 전해진 바 있다. 일반 백성들 가운데 반중국 정서가 팽배해 있다고는 해도 국가라는 조직이 감정적으로 작동할 수 없으니,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나 중국-미얀마의 변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반군에 앞장서고 있는 여러 소수민족들이 중국-미얀마 국경 지역에서 자신들의 생존과 입지 강화를 위해 마약 및 무기 거래를 공공연히 일삼고 있는 상황이다. 복잡한 외교 문제와 국경 무역 등이 앞으로의 미얀마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열강들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동남아 국가들, 특히 중국과 국경을 마주한 인도차이나 반도 3국(베트남, 라오스, 미얀마)의 처지가 한반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21세기에는 미국과 중국 간 패권 다툼의 대리전 양상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점령 소식과 아프간 난민 소식으로 미얀마에 대한 국내 언론의 관심이 줄어든 것 같다. 한반도에도 아세안(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동남아 국가연합)에도 속히 사람들을 죽이는 전쟁 대신 살리는 평화가 깃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

 

[사진3] 중국-미얀마 국경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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