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돈독해 보이는 요즈음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서방 자본주의 세계와 대결하는 과정에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로 엮인 두 나라가 산처럼 굳건한 우의를 표방하고 있다. 이런 관계의 밀착을 우려하며 둘 사이를 떼어놓으려 샤프 파워를 동원한 가짜 뉴스들도 심심찮게 들린다. 유라시아를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의 면적은 지대물박(地大物博)이라는 중국의 2배에 가깝다. 아시아의 맹주를 자처하는 중국이라도 영토의 넓이에서만큼은 러시아 앞에서 작아진다. 중국과는 몽골 다음으로 긴 국경선(약 4300km)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가 러시아인데, 지도에서 보듯 중국 쪽 국경은 주로 헤이룽장성과 내몽골자치주이며 특히 흑룡강(黑龍江, 아무르강)은 그 절반을 차지한다.
1917년 볼셰비키(Bolshevik)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대제국을 이루다가, 1922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일명 소련)이 되었던 러시아. 1990년 고르바초프의 냉전 종식 정책으로 각 공화국들에서 민족주의 분규가 일어나면서 1991년 12월 31일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 국가가 되었다. 국토 면적(1712,5407㎢)은 전 세계 1위. 남한의 170배, 한반도 전체의 76배 정도인데, 경작지는 123,7294㎢로 세계 4위란다. 인구 순위는 세계 9위(1억 4678만 명)로 방글라데시보다 적지만, 유럽에서는 1위이다. 러시아는 우랄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의 동유럽에 포함되는 유럽 러시아(전체 면적의 25%, 인구 77% 거주)와 동쪽의 북아시아(75% 면적에 23% 인구 거주)로 나눌 수도 있는데, 재미있게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14개 나라와 육지로 국경을 접하고 있다. 우랄산맥 동쪽 전부를 시베리아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실제는 북아시아 중부 지역을 지칭한다. 보통 북아시아의 서부는 우랄 지역, 동부는 러시아의 극동지역으로 구분한다. 최서단 칼리닌그라드에서 최동단 추코트카의 다이오메드 제도까지 총 11개 시간대를 사용할 정도이다. 베이징시간 하나로 통일해 쓰는 중국과 다르다. 약 200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79.8% 러시아인, 3.8% 타타르인, 2% 우크라이나인 등)이고 보니, 러시아를 유럽이라고만 부르기엔 조금 어색하다. 중국과의 변강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러시아는 총 85개의 연방 주체들로 국가가 구성된다. 공화국(22개), 자치주(1개), 자치구(4개), 지방(krai, 9개), 주(oblast, 46개), 연방특별시(3개) 등 6개의 단위로 나뉜다. 이 가운데 구성국(Constituent state)을 이루는 공화국들의 이름과 위치는 다음과 같다. ①아디게야(Adygeya), ②알타이(Altai), ③바슈코르토스탄(Bashkortostan), ④부랴트(Buryatia), ⑤다게스탄(Dagestan), ⑥잉구셰티야(Ingushetia), ⑦카바로디노-발카리야(Kabardino-Balkaria), ⑧칼미키아(Kalmykia), ⑨카라차이-체르케씨아(Karachay-Cherkessia), ⑩카렐리야(Karelia), ⑪코미(Komi), ⑫마리-엘(Mariy-El), ⑬모르도비아(Mordovia), ⑭타타르(Tatarstan), ⑮북오세티야(North Ossetia-Alania), ⑯사하(Sakha)[야큐트], ⑰투바(Tuva), ⑱우드무르티아(Udmurtia), ⑲하카시아(Khakassia), ⑳체첸(Chechnya), ㉑추바시야(Chuvahia) 등이고, 대부분 소수민족 위주 거주지역이라 이름도 소수민족에서 따 왔다. 크림(Krim) 공화국은 2014년 3월 18일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로 합병되었다.
중·러 주요 국경 도시들 다섯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만저우리[滿洲里]는 내몽골자치주에 위치한, 중국에서 가장 큰 육로 국경도시이다. 원래는 몽골어로 ‘훠러진부라거[霍勒津布拉格, 왕성한 샘물]’라고 부르다가 1901년 동청(東淸) 철로 건설과 함께 러시아어 ‘만저우리야’[滿洲里亞]가 되었다고도 하며, ‘동아시아의 창’이라고 불린다. 둘째 헤이허[黑河]는 러시아 극동지역 제3의 도시이자 아무르주의 주도인 블라고베센스크시와 마주하고 있다. 두 도시를 연결하는 중·러 국경에는 연간 약 600만 명이 이용할 수 있는 972m 길이의 케이블카가 설계되었다. 중·러 변경선에서 규모나 효능 면에서 으뜸인 도시로, 두 도시의 최단거리는 650m 정도에 불과한데, 강을 사이에 두고 있기에 배로는 약 20분, 겨울에는 부교, 봄가을에는 호버크라프트(Hovercraft)를 이용해서 왕래할 수 있다.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8분 만에 이동할 수도 있다. 셋째 푸위안[撫遠]은 흑룡강과 우수리강이 만나는 삼각지대로, 한·중·일·러의 경제 핵심지대이며 극동 러시아의 정치·경제·군사·문화 중심도시인 하바로프스크와 65km 거리에 있다. 넷째 쑤이펀허[綏芬河]는 동해로 통하는 육로 무역 국경도시로 중국의 동북과 극동 러시아를 잇는 중요한 교량역할을 하는 ‘황금길’이다. 도로와 철도가 러시아 연해 지역과 연결되어 있다. 다섯째 훈춘[琿春]은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위치하는데, 중·러·북이 만나는 변경 도시이며 중국이 직접 동해로 들어가는 유일한 길로 ‘동북아의 골든 트라이앵글’이라 불린다.
지금의 중·러 국경이 정해지기까지는 무려 300년이라는 분쟁과 조정의 기간이 있었다. 네르친스크 조약(1689), 부라 조약과 캬흐타 조약(1727), 아이훈 조약(1858), 베이징 조약(1860), 한카 의정서(1861),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1881), 노보키엡스크 의정서와 하바롭스크 의정서(1886), 치치하얼 협약(1911)을 거쳐, ‘소·중 동부국경협정’(1991.5)이 체결되었다. 이후 2004년 10월 14일 베이징에서 푸틴의 방중 기간에 중·러 간의 국경 추가협정 회담이 있었고, 2005년 5월 양국 의회의 승인을 받았다. 협상 대표들이 최종 협의 결과를 바탕으로 국경지대 하바로프스크 인근에 마지막 국경표주를 설치하고, 드디어 양국이 2008년 10월에 국경협정을 타결함으로써 국경설정을 마무리하였다. 그런데 러시아 안에서, 모스크바(중앙)와 달리 극동지역(지방)은 이 협정에 대한 불만이 가시지 않고 있단다. 하기야 최근(2022.7.7.) 푸틴 이후의 지도자로 거론되는 중앙의 주요 인사(바체슬라프 볼로딘 하원의장)가 155년 전 미국에 팔았던 알래스카 반환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으니 재미있다. 알레스카는 1959년부터 미국의 49번째 주로 편입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러시아의 역사가 9세기 ‘키이우 루시’ 공국(公國)에서 출발했던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첫 번째 왕조 ‘류릭 왕조’와 240년간 이어진 몽골의 지배(1240~1480), 그리고 동란 시대(Time of Troubles)의 혼란기를 거쳐 1613년 두 번째 왕조인 ‘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되고 걸출한 대제들이 등장해 영토를 확장했다. 1917년 10월 혁명으로 이 마지막 왕조가 막을 내리고, 이후 70년간의 ‘소련’ 시대를 거쳐 지금의 러시아 연방이 되지 않았는가? 그런데 2000년부터 집권하여 4년 중임제를 교묘히 피해 평생 대통령의 길을 가고 있는 푸틴 대통령이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중앙아시아 약소국 젊은이들이 자국보다 월급을 많이 주는 러시아군에 용병으로 지원하고 있는, 전쟁이 낳은 비극에 마음이 아프다. 왕조로의 회귀를 통해 구소련의 영광을 추구하는 러시아와 이를 흉내 내며 영구집권을 꿈꾸는 이웃 나라 지도자가 그래도 사이좋게 힘을 합해 세계 평화를 유지해 갈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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