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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변강학 13] 몽골과 중국 변강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 가운데 몽골만큼 국경의 길이가 긴(약 4700km) 나라도, 사연이 구구절절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칭기즈칸 이전의 몽골 초원은 차치하고라도, 칭기즈칸의 몽골 부족 통합(1206), 서하(西夏) 점령(1227), 금(金) 점령(1234), 중국 정복(1279) 후 원(元) 건국 등의 역사를 어찌 일일이 다 말할 수 있으랴. 1995년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미국 주요 월간지에서는 지난 1천 년간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칭기즈칸을 꼽았는데, 이러한 선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칭기즈칸의 등장으로 세계사라는 개념이 비로소 정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물론 중국에서는 이런 사실을 달갑게 여길 리 없고, 그래서 최근까지도 중국 역사에서 ‘칭기즈칸’[전 세계의 군주] 지우기 혹은 감추거나 덮기에 공을 들였을 것이다. 한족의 정통성을 부활시키며 신해혁명이 일어났고, 만주족의 청나라 혹은 청나라의 만주족을 철저히 지워내며 건립한 작금의 신중국이니 말이다. 보기 좋게 성공하여 지금은 만주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제로에 가까울 정도로 잘 지워졌으니, 직간접적으로 줄이 닿아 있는 몽골족의 원나라 얘기는 더더욱 껄끄러울 것이다. 칭기즈칸이 한족이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칭기즈칸이 어느 민족이었든 몽골족도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라고 하며 테무진[鐵木眞] 칭기즈칸(1162~1227)도 중국인이라 부를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사진1] 칭기즈칸 국제공항(좌), 칭기즈칸 탄생 기념비(우)

 

  최근 몽골 통계국의 자료(2022.4)에 따르면 몽골의 수출입 동향은 아래 표와 같다.

 

몽골 수출입 동향

 

  수출도 수입도 중국에 의존하는 바가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수출의 80% 이상이 중국을 향하고 있으니, 대중 수출 길이 막히면 몽골 경제는 휘청일 수밖에 없다. 중국에 대한 수입의존도 역시 러시아를 앞서기 시작했고, 그 여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역사적 은원(恩怨)이야 어찌 되었든 현재 몽골인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중국에 달려 있으니, 민족적 감정은 감정대로 쌓여 있을지라도 현실의 경제적 상태는 철저히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수출은 주로 광물들이고, 수입은 소비재들이다. 그런데 이 소비재 질이 그다지 안 좋다 보니 중국(인)에 대한 인식 또한 좋을 리야 없을 것이다. 중국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을 테니 보다 개선된 몽중 관계를 위해 양국이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빈다.

 

[사진2] 내몽골자치구와 몽골공화국(좌), 몽골의 국기인 소욤보 기(우)

 

  지정학적 위치로 볼 때 몽골은 남북으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인 나라이다. 마치 부탄과 네팔이 남북으로 각각 인도와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것과 닮은 꼴이다. 몽골 서쪽에 위치하는 바양울기 아이막은 카자흐스탄과 접하면서 중러와도 국경이 잇닿는 지점이다. 북중러의 접경 도시 방천(防川)처럼 카몽중러 4국 접경 지역인 타왕복드(해발 4천 미터 이상의 5개 봉우리)는 몽골의 지붕이라 불리며 카자흐스탄-몽골-중국-러시아 네 나라가 만나는 지점이다. 바양울기(바양:부자, 울기:요람) 아이막[州, 부족]은 ‘독수리의 상징’ 아이막이라 부르기도 한다. 위 지도에서 보듯 몽중 국경은 주로 내몽골자치구와 신강위그루자치구에 맞닿아 있다. 본래 한족과의 접점은 지리적으로 멀었던 변강인데 신중국 성립 이후로 한족과의 접점이 확대되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남북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어서 위태롭기도 하고 안전하기도 하다. 전자는 강대국 틈바구니라는 점이고, 후자는 두 나라가 바람막이를 해 준다는 점일 것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바우하우스의 다자인 이념을 원용하자면, 위치(location)는 위기를 낳는다고나 할까? 소욤보가 그려진 몽골 국기의 좌우 붉은색이 부단한 전진과 번영(혹은 환희와 승리)을 상징한단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의 태극기 문양이 남북 분단선을 닮은 것처럼 몽골 국기에서도 두 강대국에 끼인 몽골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사진3] 몽골 게르(좌),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중심에 있는 수흐바타르 광장(우)

 

  중국 내몽골자치구에서 몽골어 교육 약화 정책을 시행하자 몽골공화국도 이에 반대하며 내몽골자치구(1947 중국공산당에 의해 세워짐)와 동질성과 유대를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호칭비칙(몽골 전통 문자)을 부활시키고, 델(몽골 전통의상) 입는 날을 지정하는 등 일련의 조치도 이런 기류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한 민족 두 나라로 나뉜 지구상의 또 다른 이산가족, 분단국가의 운명을 안고 있는 몽골로서는 나름의 생존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리 중국인들에 대한 악감정을 담아 그들을 ‘호짜’(중국인에 대한 비하 표현)라고 부를지라도, 중국과의 관계 개선은 몽골의 생존을 위한 필수요소라 할 것이다. 그래서 지난 2월 몽골 총리의 방중 기간에 양국 정부는 몽중 3개 주요 철도사업을 확정했단다(주로 몽골 광산이 풍부한 남고비에서 중국으로 통한다). 중국 수출의 대부분이 트럭을 통해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런 몽중 철도 수송으로 인해 2025~2028년 추출액을 140억~170억 달러로 늘리고, 2029년까지는 200억 달러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진4] 푸르공(좌), 부한카(우)

 

  푸르공(Purgon, Пургон)은 불편한 승차감으로 악명이 높지만, 비포장이 많은 몽골 초원 여행에 적합하고 공간도 넉넉해 특히 장거리 여행에 좋은 이동 수단이다. 실제로 초원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몽골 여행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구 소련의 부한카(Буханка, 작은 빵 덩어리)를 모방했다지만, 바우하우스의 이념을 너무나도 잘 이행해 놓은 탈 것이다. 이전에는 기마민족의 말이 이동의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이 푸르공이 이동을 담당한다. 튀르크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하레케테 테레케트 발’[harekette bereket var] ‘이동에는 풍부함이 있다.’ 시대가 바뀌어 기마민족의 이동 수단이 바뀌고 있다고는 해도 기마민족의 기상은 그들 가슴과 영혼에 아로새겨져 있을 것이다. 안주를 지향하는 농경민과 도전을 지향하는 유목민의 문화가 충돌하는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전쟁이 아닌 평화로운 이동을 통해 상호의 풍부함을 극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푸르공 타고 바양울기에서 게르에 초대되어 몽골 알타이 문명의 옛이야기를 간직한 몽골인들의 넉넉한 웃음을 만날 수 있는 날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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