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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연재] 선충원의 「의사」(2)

 

 

의사(2)
(醫生, 1931)

 

 

선충원(沈從文)

 

  요 며칠 사이 내가 겪은 기이한 사건에 대해 당신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어요. 이런 자리에서 이렇게 가장 친한 벗들과 이야기할 기회는 영원히 다시 얻지 못할 거요. 열흘 가까이 나의 행적에 대해 여러 벗들이 알 길이 전혀 없어 아마도 무척 궁금할 것입니다. 이곳저곳 물어보고 편지도 보내 수소문했지만 아무 수확도 없었지요? 그런데 오늘 내가 돌아와 내 팔뚝에 생긴 흔적이며 상처를 보자니 내가 열흘 남짓 겪은 생활에 모험성이 있었고 장난이 아닌 일이 있었음에 틀림이 없음을 짐작할 것입니다. 이 상처가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또 내 얼굴이 말하도록 할 것이니(왜냐하면 보통은 이렇게 희지 않으니), 이것들이 과거에 일어난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면, 추측건대 이 이야기를 다시 말하면 당신들에게 모종의 흥밋거리가 될 거예요. 이것들이 지금은 말할 수 없는 관계로 침묵 속에서 여러분들에게 그 이상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니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당신들 표정을 보자니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 같네요. “평범한 사람에게 생긴 이야기는 평범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시오! 세상 허다한 일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 생활 속에서 맞닥뜨리는 것이지만 그 일은 결코 평범하지 않아요. 나란 사람은 평범하기 그지없어 일개 의사이고 일개 한의사이며 당신들이 못되게 비꼬며 부르는 일명 “저승사자”입니다. 사회에서 나처럼 사는 사람은 이루 셀 수 없이 많아요. 사회에서 나처럼 평범하여 본업밖에 모르는 사람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오. 나 같은 사람은 요컨대 많고 많다오. 내가 내일 일이 어떨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내가 내일 당신들과 다시 이야기 나눌 수 있을지 어떻게 알겠어요? 당신들 가운데 그 누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별안간 나타난 미친개에게 물리지 않을지 어찌 알겠어요? 요컨대, 우린 별반 도리가 없다오. 우린 모두 내일 일을 알 길이 없어요. 누구에게나 생각지 못한 일이 발생하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합니다.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그저 고기 먹고 거짓말 하는 입을 쩍 벌리고 놀라움을 표할 따름이라오.

  내 팔뚝에 생긴 상처를 보고 나를 믿어주시구려. 지난 열흘 동안 내내 이상한 사람이 되어 희한한 범죄자가 되었소. 나는 남자 하나를 알고 또 여인 하나를 알고, 그들과 무척이나 친했소만, 그들은 나를 잘 알지 못했어요. 그 여인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그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는 모양이 나를 아는 듯했어요. 하지만 그녀를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그녀 생각을 하면 참을 수 없이 괴롭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내가 큰소리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일개 한의사이고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일을 보는 사람일 뿐이고,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이 일정치 않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 여인과 한곳에 지내며 열흘 동안 이 여인과 함께 지내며 시간을 보냈으니 이 얼마나 희한한 일이란 말이오!

  내가 말이 좀 두서가 없어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잊었네요. 잘 듣고 제발 나를 비웃지 말아 주세요! 농담이 아니라 당신들에게 내가 왜 한 여인과 열흘 동안 같이 지내게 됐는지를 말하려니 처방을 잘 못 했다거나 한 것이 아니고 순서가 좀 어지러워졌을 뿐입니다.

  내가 실종된 날은 삼월 십칠일이고 이 날짜는 여러분도 알 겁니다. 그날 날씨가 무척 좋았다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이렇게 봄날이 오면 꽃이며 풀이며 사람들이 보기 불편해하고 특히 태양이 사람들 등에 내리쬐어 성질을 돋우게 마련이오. 나는 집에서 숨어지내길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하는 일이 사월에도 출장 가는 일이 많아 사람들은 내 앞에 서서 이런 말을 공손히 합니다. “선생님, 죄송한데요, **가 또 아프다네요, 좀 와서 봐주세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니면 이런 말도 하지요. “우리 아기한테 약 좀 주시면 선생님께 좋은 술 드릴게요.” ……내가 어떻게 술을 끊을 수 있겠어요? 날씨도 이리 따뜻하고 주인장도 이렇게 잘해주는데 술은 물론이고 식초 한 사발이라도 냉큼 뱃속에 넘길 수 있을 정도였죠. 그날 상동문(上東門) 여(余)씨네 집에 들러 한 잔 마셨고 그 집 할머니와 이야기를 오래 나눴기에 좀 취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문득 소싯적 생각이 들어 집에 가 환자들 부름을 기다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상동문 거리를 거닐다가 거리를 벗어나 제방을 거닐었지요. 비가 그치고 날이 갠 늦봄에 흥이 돋아 내가 그렇게 많은 길을 걸었는지 잊어버렸어요. 발걸음이 어느 상점 앞에 이르러 멈췄는데 나는 정신이 좀 얼떨떨하여 부지불식간에 십 리 길을 걸어 걸음이 멈춰 선 곳은 십리장(十里莊)에서 서양실 파는 곳으로 가장 유명했지요.

  왜 이곳에 왔는지 나는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어요.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매우 귀에 익다 싶어 바라봤을 때 두 사람이 있는 걸 보았지만 어디서 봤는지 도통 알지 못했지요. 그들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상점에 들어오라 했어요. 본래 거절하려 했는데 왜냐하면 하도 오랫동안 십리포(十里鋪)에 온 적이 없었고 십리포가 이미 떠들썩했기에 거리를 둘러보고 길거리에 열병에 걸린 사람이 없는지 좀 돌아보려 했기 때문이죠.

  그때 작은 골목 안에서 요리사처럼 건장한 청년이 나오는데 얼굴이 벌건 모양이 나를 오래 기다린 양 했지요. 나를 보더니 옷자락을 잡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소. 나는 의사고, 낯선 사람한테 거리에서 붙잡히는 일은 별반 괴이한 일이 아니지만, 나는 직업 경험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일에 대처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지요. 그때 이 사람은 나를 잡고 놓지 않아 무슨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말했지요. “무슨 일인가요, 선생님? 가장 요긴한 손가락을 뜨거운 기름에 뎄나요?” 이 말은 내가 장난삼아 하는 말이고 의사란 그때그때 제멋대로 말한다는 것을 그도 아는지라 “와 주셔서 정말 좋습니다”라고 말하며 나를 끌고 작은 골목으로 데리고 갔지요. 나는 걸음을 걸으며 한 편으론 이 요리사 모양의 청년 옆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좀 얼떨떨 했다는 것을 알았지요. 그는 다름 아닌 어느 지체 높은 양반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사내 집에 손님으로 방문했고 부친이 몇몇 친한 사람을 모셔오라 분부를 내려 나를 만나자마자 집으로 달려 돌아갔던 것이지요. 이번 술은 마시고 싶지 않았는데 관리를 모시는 게 즐거운 일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내가 말했어요. “좀 천천히 갑시다. 물어보고 싶은 게 도대체 무엇인가요? 자기 맘대로 이렇게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무슨 부잣집 사람 모시고 같이 술 마시기 힘들고 당신 집 접대를 받을 수 없어요. 지금 바로 돌아가 할 일이 산더미에요. 나는 한의사고 눈코 뜰 새 없다구요. 이씨네에서 처방을 달라하고 장씨네에서 처방을 달라하고 할 일이 쌓였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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