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마침내 지상으로 내려온 체흐부버와 초제르으는 열심히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살아갔다. “자손나무에도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 마침내 아들 셋을 낳았는데, 3년이 지나도록 ‘아빠’, ‘엄마’ 소리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둘은 새매와 참새를 하늘로 보내어 즈라아프에게 가서 방법을 알아오라고 했다.
그런데 돔바 경전의 내력에 대한 신화를 수록하고 있는 책에 보면, 하늘로 올라간 새매와 참새가 원래 만나고자 했던 신은 ‘퍼즈싸메’였다. ‘퍼즈싸메’는 지혜의 여신이다. 그런데 하늘로 올라가는 길은 험했다. ‘세 개의 검은 언덕과 세 개의 검은 강, 세 개의 검은 절벽과 세 개의 검은 산’을 지나 마침내 신이 거주하는 곳 근처까지 가게 된다. 그런데 날이 저물더니 내리 사흘 동안 눈이 내렸고, 먹을 것이 없어지자 새매는 참새를 잡아 먹어버렸다. 그런 후에 새매가 홀로 퍼즈싸메를 찾아갔지만, 여신은 새매가 정결하지 못하다면서 쫓아버렸다.
이렇게 새매가 실패했으니 다른 새를 보내야 했다. 그때 나선 것이 박쥐이다. 하지만 박쥐는 “제 날개가 튼튼하지 못하여 18층 하늘까지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아요”라고 하면서, 자기를 태우고 갈 새를 찾는다. 그때 박쥐가 커다란 수리에게 “너의 날개가 크고 튼튼하니, 네 날개를 하나만 주겠니?”라고 말한다. 물론 수리가 박쥐에게 자기 날개를 내줄 리가 없다. 수리는 당연히 싫다고 했고, 박쥐는 수리에게 슬그머니 내기를 제안한다.
“내일 아침 해가 뜰 때, 빛나는 햇빛을 누가 먼저 보는지 내기를 하자. 먼저 햇빛을 보는 자가 ‘사람’(타는 자) 되고, 나중에 햇빛을 보는 자가 ‘말’(태우는 자)이 되는 거야, 어때, 해볼래?”
수리는 날카로운 눈을 가진 자기가 당연히 이길 거라고 생각했기에, 선뜻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음 날 새벽, 아직 해가 뜨지 않았을 때, 영리한 박쥐는 강물의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앉아 있었다. ‘해 뜨는 걸 본다면서 왜 서쪽을 향해 앉아 있는 거지?’ 수리는 박쥐가 바보스럽다고 생각하며 동쪽 산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새벽이 되자 “동쪽의 하얀 소라 같은 높은 산 뒤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 찬란한 빛이 검은 보석 같은 서쪽 산의 꼭대기를 비추었고”, 반사된 찬란한 그 빛을 박쥐가 먼저 보았다. 해는 동쪽에서 떴지만, 해 뜨기 전의 환한 빛은 이미 서쪽 산에 반사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내기에서 이긴 박쥐가 수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천신 즈라아프를 만난 박쥐는 체흐부버의 아들 셋이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즈라아프는 여전히 딸과 사위에게 심술이 나 있었다.
“내가 주기 싫은 곡식 종자 세 가지를 지상으로 갖고 갔고, 내가 주기 싫은 가축 두 가지를 지상으로 갖고 갔어! 말을 할 줄 알게 되는 비방? 그런 건 절대 알려주지 않을 거야!”
하지만 박쥐가 누구인가, 총명한 박쥐는 대들보 뒤에 숨어 있다가 즈라아프가 자신의 아내 즈라아즈와 나누는 대화의 내용을 몰래 들었다.
“황율수 가지 두 개, 향백나무 가지 한 개를 사용하면 아들들이 말을 할 수 있지. 물론 반드시 하늘에 제사를 지내야 해!”
박쥐는 깔깔 웃으면서 즈르아프의 말을 다 들었다고 놀렸다. 화가 난 즈라아프는 황금 지팡이를 휘둘러 박쥐의 손가락 두 개를 부러뜨렸고,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버렸다.(오늘날 박쥐의 발이 세 개밖에 없고, 코가 납작한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란다) 지상으로 돌아온 박쥐의 말을 들은 체흐부버와 초제르으는 황율수 가지 두 개, 향백나무 가지 한 개를 꺾어 꽂아놓고 경건하게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지내는 날, 말 한 필이 나타나더니 순무를 먹었는데,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각각 세 가지 다른 언어로 “말이 순무를 먹어요!”라고 외쳤다. 그 세 가지 언어가 바로 티베트어와 나시어, 바이족 (白族)의 언어였다고 한다. 그들 민족이 원래 같은 민족 계통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신화이다.
여기서 박쥐는 영리하고 총명한 존재로 등장한다. 박쥐가 없었다면 지혜의 여신에게서 경전을 얻어올 수도 없었고, 체흐부버의 세 아들이 세 가지 언어로 말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신에게 바치는 ‘언어’와 ‘문자’, 그 모든 것을 박쥐가 천상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런 박쥐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몸에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미움을 받았다. 그러나 이미 5천 만 년 전부터 살아온 박쥐는 오랫동안 인간과 공존해 왔다. 원래 동굴이나 폐광 등에 살던 박쥐가 인간과 접촉을 하게 된 것은 그들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도시화로 인한 주거 형태의 변화 등으로 살 곳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박쥐는 과일의 꽃가루를 옮겨주기도 하고, 모기 같은 해충을 하룻밤에 수천 마리나 잡아먹는다. 알고 보면 이로운 동물인 박쥐, 신화 속에서도 이렇게 지혜롭고 영리하게 묘사되어 있으니, 미워하지 말 일이다.
(*황율수와 향백나무를 세우고 지내는 나시족의 ‘제천祭天’에 대해 다음 호에 소개하면서 나시족 이야기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그림1] [그림3] 『納西象形標音文字字典』(李霖燦 編著·和才 讀字·張琨 標音, 雲南民族出版社, 2001)에서 필자 스캔 / 『納西象形文字譜』(方國瑜 編纂·和志武 參訂, 雲南人民出版社, 1981)에서 필자 스캔
[그림2] 김선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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