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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와 문화의 이모저모 5] 이사, 호해, 조고의 최후

 

[사진1] 호해의 무덤

 

조 작

  진시황의 마지막 순행은 기원전 211년 가을에 시작되어 이듬해 여름까지 이어졌다. 수도 함양(咸陽)을 떠나 사구(沙丘)에서 죽기까지 아홉 달 동안의 진시황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것은 바로 ‘죽지 않는 삶’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마지막 순행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을 직면하는 것이었다. 순행하는 동안 진시황은 회계산(會稽山)에 올라 비석을 세웠다. 영원한 돌과 더불어 거기에 새긴 송가 역시 영원하리라 믿었으리라. 더욱 바라 마지않은 것은 ‘살아서’ 그 찬송을 받는 것이었다. 진시황은 회계산에서 돌아오던 길에 낭야(琅邪)에서 방사(方士) 서불(徐巿), 즉 서복(徐福)을 만나게 된다. 이 년 전 진시황이 방사들을 생매장했을 당시에 서복은 불사약을 구하러 동쪽에 와 있었던 덕분에 함양에서 벌어진 갱유(坑儒) 사건의 희생자가 되지 않았다. 이미 방사를 불신하게 된 진시황을 이번에 또다시 성공적으로 꼬드긴 서복은 봉래(蓬萊)의 불사약을 가져오겠다는 희망을 남기고 떠났다.

  서복이 그렇게 떠난 사이 진시황은 병에 걸렸다.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시간이 끝내 다가오고야 말았다. 진시황은 큰아들 부소(扶蘇)에게 함양(咸陽)으로 돌아와서 장례를 치르라는 유조를 남겼다. 부소는 갱유 사건 당시 이를 말리다가 진시황의 노여움을 산 탓에 북쪽 상군(上郡)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지내던 중이었다. 부소에게 남긴 유조는 그가 후계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런데 진시황의 유조는 부소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유조를 보관하고 있던 조고(趙高)의 주도 하에 진시황의 막내아들 호해(胡亥), 승상 이사(李斯)가 유조를 조작한 것이다. 호해는 황제가 되려는 욕망 때문에, 조고와 이사는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고 더 큰 이득을 얻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의기투합했다. 부소가 황제가 된다면, 이사와 조고의 정적이자 부소의 측근인 몽염(蒙恬)과 몽의(蒙毅) 형제가 이사와 조고의 지위를 위협할 터였다. 호해를 태자로 삼는다는 내용으로 유조는 조작되었고, 부소에게 죽음을 명하는 편지도 날조되었다. 세 사람의 음모가 진행되는 사이, 무더운 여름날 진시황의 시신은 그 냄새를 감추기 위한 생선이 가득 실린 수레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조작된 유조가 부소에게 전달되고 부소는 자살했다. 부소의 죽음을 확인한 뒤에야 호해 일행은 함양으로 돌아와 진시황의 죽음을 세상에 알렸다.

 

 

파 국

  음모를 통해 제위에 오른 호해의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는 그를 불안과 의심으로 내몰았다. 그는 몽염과 몽의 형제를 죽게 한 것을 필두로 기존의 대신들을 모두 제거했다. 또한 본래 황제가 되었어야 할 부소를 죽게 했을 뿐만 아니라 손위 형제자매를 죄다 잔인하게 죽였다. 신하들과 공자와 공주의 죄를 심리하고 처형하는 일은 조고의 몫이었다. 진시황의 수레와 옥새를 관리했던 조고는 호해를 가르친 스승이기도 했다. 조고는 호해의 마음속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호해의 불안과 호해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고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혔다. 어쩌면 조고는 호해의 불안과 욕망을 구실로 자신의 불안과 욕망을 충족시켰던 것이리라. 일찍이 조고에게 사형을 판결했던 몽의가 첫 번째 희생양이 되지 않았던가. 또한 조고는 자신을 따르지 않는 눈엣가시 같은 인물들을 법망에 걸려들게 하여 제거해나갔다. 다들 몸을 사렸고, 간언의 소리는 사라졌다.

  음침하고 살벌한 기운은 진나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법의 집행은 진시황 때보다 더 가혹해졌다. 신하들뿐만 아니라 백성들 모두 생존의 위험을 느꼈다. 아방궁 공사가 재개되고 세금이 가중되었으며 부역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2세 원년(기원전 209), 마침내 진승(陳勝)이 진시황의 큰아들 부소와 초나라 장수 항연(項燕)의 이름을 내세워 봉기를 일으켰다. 진승에게 동조하는 반란이 옛 육국 지역 곳곳에서 잇따라 일어났다. 수많은 반란의 공동 목표는 ‘진나라 토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호해는 진나라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옛 육국이 하나씩 부활하면서, 진승이 파견한 주장(周章)의 10만 대군이 함곡관(函谷關)을 돌파하고 여산(驪山) 동쪽의 희수(戱水)까지 이르러서야 호해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죄수들에게 사면령을 내려 병력으로 동원하는 비상조치까지 취했다. 반란의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자 승상 이사가 나서서 간언했다. 도적이 많아지는 것은 병역과 요역과 세금이 과중하기 때문이니 아방궁 공사를 중단하고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라고 건의했다. 하지만 호해는 도리어 이사를 질책하며 그를 심문하게 했다.

  불과 2년 전 함께 어마어마한 음모를 꾸몄던 이들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생긴 것이다. 조고는 이사가 왕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으며 이사의 아들이 반란군과 내통하고 있다고 호해에게 말했다. 조고가 자신을 모해한 것을 알게 된 이사는 호해에게 상서를 올렸다. 신하가 군주와 알력이 있으면 나라가 위태로워지는데, 조고는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기에 지금 그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호해는 조고가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이사의 말을 털끝만큼도 수긍할 수 없었다. 호해에게 조고는 일편단심으로 자신에게 충성하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호해는 혹시라도 이사가 조고를 죽일까 봐, 이사가 조고를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고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조고는 자신이 죽으면 이사야말로 군주를 시해하고 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호해는 이사를 조고에게 넘겨 심문하게 했다. 결국 이사는 모반죄로 추궁 당했고, 조고는 가혹한 고문으로 이사에게 거짓 자백을 받아냈다. 이사는 함양의 저잣거리에서 허리가 잘려 죽었고 삼족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부소가 죽은 지 두 해가 되던 때였다.

  이사가 죽자 호해는 조고를 승상으로 삼고 모든 일을 조고가 결정하게 했다. 그런데 조고는 딴마음을 품고 있었다. 부활한 육국이 다들 서쪽 진나라를 향해 진격해오는 상황에서 그는 관중(關中)의 남대문인 무관(武關)을 함락한 유방(劉邦)과 은밀히 접촉하고 있었다. 2세 황제 호해를 죽이고 진나라를 배반하는 대가로 진나라를 유방과 나눠서 차지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조고는 함양 현령인 사위 염락(閻樂)과 낭중령(郞中令)인 동생 조성(趙成)을 불러 호해를 폐위시키기로 모의했다. 염락과 조성은 군사를 이끌고서 호해가 머물고 있는 망이궁(望夷宮)을 점령했다. 호해를 찾아낸 염락은 그의 죄상을 열거하며 천하가 모두 배반했으니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라고 말했다. 자살하라는 의미였다. 그토록 신임했던 조고가 배반했는데 호해는 이 마지막 순간에 그를 찾았다. 염락은 이렇게 말했다. “신은 승상의 명을 받아 천하를 위해 족하足下를 주살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호해는 이사가 죽은 지 한 해 만에 자살하게 되었다. 부소를 자살로 내몬 지 삼 년 만이었다.

  이제 황위 찬탈의 음모에 가담했던 세 사람 가운데 조고만 남았다. 호해가 자살하자 조고는 자신이 제위를 차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고가 옥새를 가지고 대전에 오르자 대전이 여러 번 무너질 듯했다고 한다. 조고는 하늘이 자신에게 황제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고 신하들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서 진나라 황족인 자영(子嬰)에게 옥새를 넘겨주게 된다. 자영은 조고가 자기를 죽이고 진나라 종실을 멸망시킨 뒤 관중의 왕이 되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영은 두 아들과 함께 조고를 죽이기로 계획했다. 자영이 아프다고 하자 조고가 문병을 왔고 이것이 조고의 마지막이었다. 조고의 삼족이 함양에서 본보기로 처형되었다.

 

 

유 혹

  일찍이 유조를 조작해 부소를 죽이고 그 자리를 호해가 차지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호해도 이사도 알고 있었다. 조고의 유혹에 호해는 주저하며, “천하가 복종하지 않을 것이고 자신의 몸마저 위태롭게 될 것이고 나라도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조고는 “과감하게 행하면 귀신도 피해가고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끝내 호해를 설득했다. 이사는 자신을 음모에 끌어들이려는 조고에게, 하늘의 뜻을 거스르면 나라가 멸망하게 될 것이라며 “나도 사람인데 어찌 그런 음모에 참여할 수 있겠소!”라고 거부했다. 그러자 조고는 자신의 계획을 따르면 부귀와 장수를 보장받게 되지만 이 기회를 놓친다면 자손에게까지 화가 미칠 것이라며 “처세에 능한 사람은 재앙도 복으로 바꿀 수 있는데 어떻게 처신하시겠습니까?”라며 이사를 회유하고 협박한 끝에 동의를 얻어냈다.

  조고의 유혹은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세 사람의 음모가 성공한 지 삼 년이 지나는 동안, 이사가 죽고 호해가 죽고 결국 조고도 죽었다. 천하가 복종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마저 지키지 못했고 나라도 멸망했다. 악마의 속삭임은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도처에 존재했고 존재하고 존재할 것이다. 그 속삭임에 쉽게 무너져버릴 나약한 우리 인간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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