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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연재] 천잉전의 『그토록 노쇠한 눈물』(2)

 

그토록 노쇠한 눈물(2)
(那麼衰老的眼淚, 1961)

 

 

천잉전(陳映真)

 

  초봄 습기를 머금은 햇빛이 창문으로 들어와 사오빙을 야금야금 먹고 있는 아진의 얼굴을 비췄다. 타이완 남부 궁벽한 시골 여인치고 흰 피부를 가졌다니 불가사의한 노릇이다. 그녀는 절대 아름다운 여인이라 말할 수 없었고 다른 타이완 하녀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아진은 다른 사람을 시중들 운명을 타고난 것 같은 펑퍼짐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꺼풀이 없는 눈을 보자니 우연히 그곳에 벌려져 있는 듯했다. 그녀 코는 뭉툭하게 내려 앉아 반짝거리는 기름기를 띠고 있었다. 입술은 크지는 않아도 너무 두툼하지 않나 싶었다. 특히나 한 달 전 첫째 아이를 떼어낸 때문인지 그녀 입술은 유난히도 두툼해보였다. 모친이라면 늘상 그렇듯 적막과 우수를 머금고 있는 듯 무겁게 축 늘어져 있었다.

  캉 선생은 잘라내어 버린 생명에 생각이 미쳤다. 의사가 남자 아이라고 말했지. 그래도 무슨 말을 들어도 떼어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온갖 말을 늘어놓아 집요하게 모성에 집착하는 그녀 마음을 돌려놓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 후로 아진의 아내로서 세심한 배려가 줄어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훨씬 더 열정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캉 선생은 점점 더 그녀의 무심한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은밀하고 가련하며 망연하고 적막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모친이 일면식도 없는 생명에 대해 애정을 느낀다니 캉 선생에게는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그도 역시 아이를 남겨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는 겨울방학에 청아가 돌아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새로운 관계에 대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필요하다면 결혼과 같은 형식과 수속을 밟아 아이를 기를 수도 있었다. 청아가 감정상 아직 어려 이런 관계를 받아들일 수 없어, 겨울방학 내내 집안 분위기가 당황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캉 선생은 이만저만한 낭패를 당한 것이 아니라서 이제까지 품었던 아름다운 꿈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청아가 학교로 돌아간 뒤, 민감한 마음으로 이 해결이 난감한 문제를 눈치 챘는지 아진은 말수를 잃고 말았다. 아이를 떼어낸 그날 밤, 아진은 퇴원하고 침대에 누워 식은땀으로 젖은 캉 선생의 손을 잡고 흐느껴 울었다. 캉 선생은 이 때야 비로소 그를 향한 아내의 따뜻한 마음을 알고 격정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아진은 그 당돌하고 체념에 빠진 침묵 속에 저편에 앉아있다. 부쩍 나이가 들고 병이 든 창백한 얼굴에 자잘한 주근깨가 얼굴 가득이었다. 캉 선생은 봉지를 뜯어 아무 생각 없이 사오빙 하나를 집어 들고 깨물었다. 밀가루 향내와 단팥의 달콤함을 느끼며 천천히 씹어 물었다. “그저께……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어요……” 그녀가 말하며 입술 주위에 묻은 사오빙 가루를 조심스레 손으로 닦았다. “그저께, 그가 왔었어요.”

  “어,” 그는 천천히 반응하며, 이상하게 여겼다. “어, 누가 왔었다고?”

  그녀가 천천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 오빠요. 우리 오빠가 그저께 나를 보러 왔어요.”

  캉 선생은 이에 그 시커멓고 우악스러운 청년이 떠올랐다.

  아마도 이 년 전 어느 가을 오전, 캉 선생은 밖에서 돌아와 현관에서 낡아빠진 보따리와 먼지를 뒤집어 쓴 가죽신 한 짝을 보았다. 거실로 들어서자 청아가 불러 세웠다. 캉 선생은 거실로 나가 아진의 방에서 수군거리는 남자 목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아진은 도통 아무 말이 없어 그 때문에 남자가 화가 난 듯했다. 잠시 뒤 그 처음 본 남자가 떠나려 했고, 아진이 문밖까지 바래다주며 두 사람은 또 한참을 수군거렸다. 타이완 말을 아는 청아가 캉 선생에게 말해주길, 그 남자가 아진에게 돌아가서 시집가라 한다고 했다. 그날 저녁, 아버지와 아들 두 사람은 그녀를 된통 놀려주었다. 그 때 그녀가 말했다.

  “오빠한테 말했어요. 시집가지 않아도 돈 벌어서 부칠 수 있는데, 뭘 그리 급하게 결혼 지참금을 받으려 하냐구요.” 그러면서 무심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때, 캉 선생의 사업은 아주 좋았다. 그는 아진에게 만약 돌아가 시집간다면 잔치 한 번 크게 벌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청년이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청아는 이미 대학에 진학했을 때였다. 그리고 아진이 캉 선생의 침실로 들어선 지 일주일이 되었을 때였다. 캉 선생이 무안하여 거실로 들어갔을 때 남자가 흉악하면서도 참느라 안간힘을 쓰며 꾸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아진은 여전히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캉 선생은 거실 문틈으로 우람하고 시커멓고 우레처럼 발을 구르는 청년을 비로소 보게 되었다. 청년이 신발을 신고 화가 나서 손가락질 하는 모양을 아진은 현관에서 평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곧 아진이 거실로 들어와 그를 보며 우직하게 미소 지으며 천진한 눈빛을 보냈고, 일종의 청춘과 안정, 그리고 행복으로 빛을 발하는 눈빛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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