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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다시 보기 22] 점입가경(漸入佳境), 남다른 방식으로 즐기는 참맛

 

  점입가경에는 ‘들어갈수록 점점 재미있다’라는 뜻과 ‘시간이 지날수록 하는 짓이나 몰골이 더욱 꼴불견이다’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두 번째 뜻은 현대에 추가된 것으로, 대상을 비유적으로 비꼴 때에 사용한다. 그리고 첫 번째 뜻은 옛날 중국 유명화가의 식습관에서 비롯되었다.

  고개지(顧愷之, 약 344-409년)는 동진(東晉)의 화가이다. 그는 회화의 대가이고 『화론(畫論)』이라는 회화이론서도 남겼는데, 이 책은 중국예술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창작과 이론에 모두 정통했던 고개지는 특히 초상화를 많이 남겼는데, 사람의 개성과 특징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눈빛이나 표정 등 각기 다른 인물의 핵심요소를 포착하여 표현해내는 것에 그의 특장이 있었다. 그러나 고개지가 했던 다음 말을 보면 대가에게도 초상화 그리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림 중 그리기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이고, 그 다음이 산수이고, 그 다음이 개와 말이다. (凡畵, 人最難, 次山水, 次狗馬)”

– 『화론』

 

  고개지는 회화 뿐 아니라 문학과 서예에도 뛰어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재절(才絶)·화절(畵絶)·치절(痴絶)의 삼절(三絶)이라 불렀다. 치절이라 한 것은 그가 보통사람과 달리 독특했기 때문인데, 특이한 언행에 관련된 일화가 여럿 전해진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점입가경과 관련이 있다.

 

 

사탕수수 먹는 방법

  재능 있는 예술가여서인지 비범한 면이 많았던 고개지는 사탕수수 먹는 것을 즐겼다. 당시 사람들은 보통 사탕수수를 뿌리부터 시작해서 줄기를 먹고, 그 다음에 끝부분을 먹었다. 뿌리 쪽이 단맛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맛을 먼저 보았기 때문에 먹다가 달지 않은 부분이 나오면 버리곤 했다. 그런데 고개지는 끝부분에서 시작해서 줄기를 먹고 마지막에 뿌리부분을 먹었다. 남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먹는 것을 의아하게 여긴 친구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고개지는 이 말로써 답을 했다.

 

“(이렇게 먹어야) 점점 단맛이 강해진다(漸入佳境).”

 

[사진1] 재배 중인 사탕수수

 

  단지 먹는 순서를 반대로 했을 뿐이지만, 먹을수록 단맛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끝까지 단맛을 느낄 수 있고, 버리는 부분도 줄일 수 있었다. 단맛이 약한 쪽에서 시작하여 점점 달콤해지는 사탕수수를 즐겼던 것이다. 맛있는 부분을 먼저 먹느냐 나중에 먹느냐는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이고 그저 사탕수수를 맛있게 먹는 방식일 뿐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음식 맛을 보는 것도 남들처럼 관습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방식을 찾거나 남들과 정반대의 방식을 시도하고 음미한 것이다. 사탕수수 먹는 회화의 대가에게서 눈여겨 볼 것은 익숙하고 평범한 것에서 벗어나 낯설지만 독특한 방식을 시도한 점이다. 결국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탕수수의 맛을 즐겼다.

 

 

음식 맛과 예술 표현

  고개지가 말한 점입가경을 직역하면 ‘점점 뛰어난 경지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경(境)이란 경지나 수준을 말하는데 예술 표현에서 자주 쓰인다. 고개지가 사탕수수의 맛을 예술의 경지로 표현한 것은, 음식 맛으로 예술을 감상하고 비평하는 중국의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예술비평을 할 때 ‘품평(品評)’이라는 표현을 한다. 여기서 ‘품(品)’은 사람의 입(口)이 세 개 있는 글자로 고대의 원뜻은 ‘많다’이다. 많은 것들을 분별해내고 수준의 고하를 가려낸다는 뜻으로 확장되어, 사물의 등급이나 우열을 구별한다는 뜻이 되었다. 또한 음식의 맛을 표현할 때도 썼다. 차를 마시고 음미하며 차의 등급을 나누는 것을 ‘품차(品茶)’라고 한다. ‘일품요리’, ‘그 작품은 일품(一品)이다’, ‘솜씨가 일품이다’라고 할 때도 ‘품’자의 뜻이 살아난다.

 

[사진2] 고개지의 대표작 <낙신부도(洛神賦圖)>의 부분, 조식(曹植)의 문학작품 <낙신부(洛神賦)>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중국에서는 음식을 먹는 일상적 행위와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예술적 행위를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미각표현을 예술 비평에 사용했다. 일상이 곧 예술이 되므로 이 자체로 멋스럽다. 회화의 최고경지에 오른 고개지 역시 창작과 사탕수수 먹기를 동일선상에서 즐겼다. 점입가경이라는 표현도 이런 수준에 올랐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탕수수든 예술이든 남과 다른 시각이나 방법을 통하면 진정한 맛과 멋에 이른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그래서 삼절 중에도 재절이나 화절보다 치절이 가장 얻기 어려운 별칭일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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