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계묘년(癸卯年)이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서 또 새해를 맞이했고, 매해 그렇듯이 1월에는 한 해의 계획을 알차게 세워본다. 새해의 계획목록에 독서가 포함되었는지 궁금하다. 사람들은 책에서 지혜를 얻고 즐거움과 위안을 찾는다. 특히 지난 2~3년간의 팬데믹을 경험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진입한 이때에, 전문가들의 전망처럼 전 세계 경제는 어려워졌고 사회는 다소 혼란해졌으며 겪어보지 못한 일상의 크고 작은 변화들은 많아졌다. 세계적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과연 3년 후, 5년 후는 어떤 세상이 될까. 이렇게 급변하는 사회의 미래를 누가 알 수 있을까. 앞날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이 어려울수록 가장 쉽고도 고전적인 문제해결 방법인 독서를 통해서 안정감과 힘을 얻을 수도 있으니, 독서를 새해 계획에 넣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독서망양은, 글을 읽는 데 정신이 팔려서 먹이고 있던 양을 잃었다는 뜻으로, 하는 일에는 뜻이 없고 다른 생각만 하다가 낭패를 봄을 이르는 말이다. 글을 읽는 데 정신이 팔렸다니, 가히 독서삼매(讀書三昧)의 경지이다. 독서를 권장하기로는 부모와 선생이 으뜸이다. 부모와 선생 입장에서는 자식이나 학생이 독서에 빠졌다면 양을 잃는다고 해도 기특하기 그지없겠지만, 이 말은 그렇게 기특한 심정에서 나온 표현이 아니다.
독서는 항상 좋은 것인가
독서망양은 다른 일에 몰두하다가 정작 해야 할 제 일을 그르쳤다는 뜻으로 쓰인다. 만일 게임을 하다가 학교에 지각을 하고 밥도 거르고 운동도 하지 않는 자녀가 있다면 독서망양의 상태이다. 게임에 빠져서 다른 일은 아예 돌보지 않으니 생활의 균형은 깨지고 말았다. 그런데 만일 게임이 아니라 독서에 빠진 것이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독서에 빠졌다면 부모들은 틀림없이 반기며 뿌듯해할 것이다. 게임에 빠진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니까.
부모들은 자녀가 책을 읽는다고 하면 생활의 균형이 깨졌다 해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줄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 독서는 그만큼 다른 일을 팽개친 채 몰두하더라도 별반 비난받지 않는 전적으로 유익한 취미이자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뿐인가. ‘권장하고 추천하는 좋은 것’의 리스트에도 언제나 빠지지 않고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독서망양은 독서 옹호론자가 한 말인가 싶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성어의 출처가 장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독서망양은 『장자(莊子)·변무(騈拇)』에 나온다.
장(臧)과 곡(穀) 두 사람이 함께 양을 치다가 모두 양을 잃어버렸다.
장에게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묻자 ‘채찍을 옆구리에 끼고 독서를 했다’고 했다.
곡에게도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묻자 ‘박색(博塞)을 하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했던 일은 다르지만 양을 잃어버린 것은 마찬가지이다.
장은 노비이고 곡은 시종 드는 아이이다. 그리고 박색은 요즘의 주사위 놀이와 비슷한 도박의 일종이다. 노비와 시종은 천민인데, 당시 천민이 독서를 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상반된 예시를 들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독서와 노름이라는 원인은 달랐지만 양을 잃었다는 결과는 똑같으므로, 독서는 좋은 것이고 도박은 나쁜 것이라는 기존의 판단이 완전히 힘을 잃는다. 그러니 독서를 칭찬하고 도박을 비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양을 잃었다는 결과만 놓고 따져봐야 한다는 것인가.
새로운 판단 기준
장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독서와 노름의 구절에 뒤이어 바로 나온다.
백이(伯夷)는 명예를 위해서 수양산(首陽山) 밑에서 죽었고,
도척(盜跖)은 이익을 탐하다가 동릉산(東陵山) 위에서 죽었다.
두 사람이 목숨을 바친 목적은 다르지만 생명을 해쳐가면서 본성을 해친 점은 마찬가지인데, 어째서 백이는 옳다고 하고 도척은 그르다고 하는가?
사람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위해서 죽는다.
이 사람이 인의(仁義)를 위해 죽었다고 하여 세속에서 군자(君子)라고 일컫고,
저 사람이 재물(財物)을 위해 죽었다고 하여 세속에서 소인(小人)이라고 일컫는다.
무엇인가를 위해서 죽은 것은 같은데, 군자니 소인이니 한다.
생명을 해치고 본성을 손상시킨 점에서는 도척이나 백이나 같을 뿐인데,
어찌 그 사이에서 군자니 소인이니 하는가?
백이는 의리와 절개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초개처럼 버렸고 군자의 대명사로 칭송받아왔다. 도척은 도둑의 대명사로 상상을 초월하는 포악하고 악랄한 짓을 서슴치 않았다. 소인이라는 표현조차도 아까운 인물이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백이를 군자로 떠받들고 도척을 소인으로 낮추었다. 그러나 장자가 보기에는 절개를 위해 산에서 스스로 굶어죽은 백이의 행위도 억지스럽고, 재물을 탐하다 죽은 도척도 역시 잘못되었다.
본성을 해치지 않는다
군자나 소인이나 모두 무엇인가를 얻거나 성취하다보면 무엇인가를 놓친다. 명예든 재물이든 목숨을 버리고 본성을 파괴해가면서 얻었다면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군자나 소인이나 본성을 해쳤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인데, 사람들은 핵심은 보지 못한 채 군자와 소인으로 나누고 평가한다.
독서와 군자는 좋은 것이고 노름과 소인은 나쁜 것이라는 세상의 인식과는 다른 해석을, 장자는 하고 있다. 장자에게 군자와 소인의 구분, 백이와 도척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둘 다 어떤 것을 얻거나 이루기 위해 본성을 해쳤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의 시비판단의 기준과는 완전히 다른 기준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그 기준은 본성을 지켰는가이다.
독서망양은 독서를 한다면 양을 잃어도 괜찮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고 독서든 도박이든 적당히 해야지 깊이 빠져 제 일을 그르치면 안 된다는 뜻도 아니다. 무엇인가를 얻거나 성취하기 위해서 본성을 해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만큼 본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독서, 노름, 노비, 군자, 소인의 예시에 매몰되어 정작 장자의 메시지를 오해한다면 독서망양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새해이다. 장자가 말한 본성은 무엇인지, 본성을 지킨 채로 무언가를 성취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이에 대한 궁리를 새해 계획목록에 포함시켜 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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