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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연재] 선충원의 「황혼」(1)

 

 

황혼(1)
(黃昏, 1932)

 

 

선충원(沈從文)

 

  폭풍우가 지난 후, 처마 밑 기왓장마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하늘에서 비는 다시 내리지 않아, 시간은 어느새 밤으로 접어들었다.

  해 저무는 하늘 저편엔 아직 구름이 많이 남아 이들 구름이 가린 해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깔을 내뿜었다. 저 멀리 구름이 금색, 백색, 마노색, 담자색 테두리를 두르고 도시 부인과 같은 자태를 선보이며 단정하면서도 화려했다. 구름은 온갖 색을 모두 비추며 마술사와 같이 수완을 부리며 계속 흘러가며 변했다. 공기는 비 개어 청량하고 경치는 오랫동안 병을 앓다가 나은 사람 마냥 기운을 차렸다.

  이리도 아름다운 하늘은 남방의 오월이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고 이 하늘 아래 도시는 보통 쇠락한 모습이다. 국내 여러 해 병란이 터져 오곡이 자라는 땅은 모두 황무지로 변했고, 게다가 독성 물질이 널리 퍼져나간 이유로 농촌 경제는 파산을 선포했고 크고 작은 농촌은 거진 빈궁함과 스산함으로 가득하여 도시는 어느 하나 가릴 것 없이 온통 타락하고 멸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장강 중부의 X성 X지역의 어느 현 자그마한 돌 성곽 안 북편 성벽에 맞붙은 일대 거리에는 늘 그렇듯이, 이 시각이 되면 민가마다 시꺼먼 지붕 위에 난 조그마한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를 내뿜고 있었고, 그 연기는 축축하다 못해 무거워 보였다. 연기는 차례대로 일어나 들쭉날쭉 제멋대로인 것이, 마치 처음엔 불이 붙는 걸 꺼리다가 좀 이따 불이 붙으면 어쩔 수 없이 위로 올라가야 해서 억지로 연기가 나오지만 올라갈 힘이 없어 보였다. 이 밥 짓는 연기는 지붕 위에 머물며 맴돌고 한데 몰려 흩어지지 않다가 결국 한 조각이 되어 황혼 무렵 장막과도 같이 모든 걸 감싸 안으며 옅은 안개 속으로 거두어 갔다.

  XX 지방의 성벽을 따라 지어진 단층집들은 공공건물과 나란히 서 있어 어느 때고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냈는데, 이 밥 짓는 연기 때문에 한층 더 우울해졌다.

  여기서 유명한 공공건물이라면 바로 감옥이다. 감옥에는 각지에서 보낸 별 볼일 없는 빈민들과 매우 성실한 농민들이 갇혀 있어, 어느 지방 혹은 어느 감옥과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감옥과 이웃하여 사는 사람은 자연히 빈민들이고, 이들 빈민 가정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남자 주인 하나, 여자 주인 하나, 나이 많은 아이들과 어린 아이들 한 무더기. 주인은 대부분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매일같이 먹을 음식을 쟁취해오는 사람으로 목공 일을 많이 했다. 아낙들은 대개 눈동자가 빨갛고 얼굴은 수척하여 폐병 환자들과 같은 몰골이었다. 아이들은 온통 제대로 기르지 못하고 가르치지도 않아 신기하게 살아남아 자란다 해도 거렁뱅이 아니면 죄인이 되는 괴상한 생명이다. 근래 들어 마을에서 사람이 죽으면 얇은 이불과 대나무 멍석으로 둘둘 말아 묻어주어 관짝도 필요가 없었다. 목공은 이런 상황에선 상상할 수 없이 처참한 지경으로 떨어지게 된다. 군대에 가기 싫거나 토비가 될 용기가 없거나 노동을 못 하는 사람들은 성 남쪽 부두로 가 막노동을 하거나 닥치는 대로 가리지 않고 일을 하고 먹고 살 수만 있다면 못 하는 일이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직업을 고집해 하루종일 집안에 머물며 시궁창 냄새가 풍기는 습지 위에서 도끼로 이것저것 자르거나 베어 넘겼다. 옛날 목재를 써 간단한 가구를 만들다가 집안에 가득 차면 되는대로 시간을 때우며 하릴없이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여인들은 지역 관습에 따라 일거리가 조금 있어 밥 한 사발은 얻을 수 있었다. 세심하고 성실하며 참을성 있고 품삯도 그렇게 저렴할 수 없어 여러 면에서 장점이 많아 여인들은 그리 쉽게 굶어 죽지 않았다. 그들 일거리는 대부분 성동(城東) 롄쯔좡(蓮子庄)에 가 연잎을 다듬는다거나 차예좡(茶葉庄)에 가 찻잎을 선별한다던가, 아니면 폭죽 가게로 가 낱개로 떨어진 폭죽을 받아다가 집에 돌아가 폭죽을 벌여 맞추면 매일 같이 백 문(文)이나 오 분(分)은 쉽사리 벌 수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나이가 좀 많으면 남녀 구분 없이 어른을 따라 동성(東城)에서 일을 하여 매일 사십 문 가량을 벌었다. 열 살 아래 아이들은 대부분 매일 같이 먹을 게 없고 할 일이 없어 모두들 바구니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입에 넣고 씹을만한 게 있으면 손으로 잡아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어떤 아이들은 집 근처에 머물며 감옥 바깥 연못 돌 제방에서 장어를 낚았다. 이 연못은 과거 어느 적에는 자못 쓸모가 있어, 견고하고 무거운 돌을 쌓아 만든 기다란 돌 제방은 물론 면적으로 보더라도 이 연못이 옛날엔 모든 성민들에게 식수를 제공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같아서는 남성(南城)의 우물은 산에서 수원을 새로 끌어냈고 서성(西城)은 강물을 많이 사용하여 이 연못은 더럽고 오염된 지 이미 오래였다. 연못은 온갖 더럽고 지저분한 물건으로 가득 차 오랜 세월이 흐르며 물 색깔은 시커멓고 푸르죽죽하고 위에는 두껍게 한 층 덮혀 있어 태양 빛을 받아 기이한 악취를 내뿜고 있었다. 물이 얕은 곳은 날씨가 더우면 진흙탕 속에서 물거품이 쉬지 않고 솟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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