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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다시 보기 15] 일자천금(一字千金), 권력자의 책을 누가 감히 고칠 수 있겠는가

 

  지난 회에 소개한 한우충동(汗牛充棟)은 도서나 저작의 양이 많다는 의미였다. 오늘은 책의 내용이나 완성도를 표현한 성어인 일자천금(一字千金)을 살펴보려고 한다. 일자천금은 글자 하나의 값이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글씨나 문장이 아주 훌륭함을 이르는 말이다. 어떤 ‘문장이 훌륭하다’는 것의 객관적 기준은 없겠지만, 누구나 한번쯤 좋아하는 책이나 가슴을 울린 문장을 만난 적이 있을 것이다. 또한 글 쓰는 사람들은 일자천금의 작품을 쓰기를 바랄 것이고, 독자들은 일자천금의 작품을 만나기를 고대할 것이다. 그런데 일자천금의 기준에 어떤 힘이 작용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전국시대 진(秦)나라 왕인 영정(贏政, 훗날의 진시황)이 13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을 때 여불위(呂不韋)가 상국(相國)이 되어 섭정을 하며 실권을 행사했다. 여불위는 거상(巨商) 출신답게 가동(家僮)을 만 명이나 둘 정도로 막강한 부를 자랑했고, 여기에 정치권력까지 장악했으니 그 권세가 대단했다. 그는 재력을 바탕으로 각지의 논객과 학자들을 집으로 불러 후하게 대접했는데 식객이 삼천 명이나 되었다.

 

 

여불위의 재력과 권력

  당시 위(魏)나라 신릉군(信陵君), 초(楚)나라 춘신군(春申君),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은 모두 식객과 빈객 접대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여불위 역시 식객을 모은 것은 진나라에 그들과 비견할 만한 인물이 없어서 진나라의 위상이 뒤쳐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수천 명의 빈객을 접대한다는 것은 경제적 비용은 물론이고 문화적 토양도 마련되어야 가능한 일이었으니, 곧 국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림1] 여불위

 

  여불위는 자신이 불러 모은 식객들에게 책을 쓰게 했는데 그 책이 『여씨춘추(呂氏春秋)』이다. 『여씨춘추』는 천지 만물에 대한 고금의 일을 두루 갖춘 백과사전식의 책으로 20여만 자에 달하는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권력자의 기획 하에 여러 지식인이 동원된 공동 집필 방식으로 만든 책이었고, 결국은 진나라를 대표하는 저작이 되었다.

 

 

20만자 중 단 한 글자

  책이 완성되자 여불위는 수도인 함양(咸陽)의 성문에 책을 진열해놓고 이 책에 한 글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에게 천금의 주겠노라 공포했다. 책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책의 완성과 상금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여불위가 상금을 내건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 기록에는 상금을 내건 이유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그의 입장에서 추측해보자면, 첫째는 책의 완성을 세상에 알리며 진나라의 위상을 높이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둘째는 책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을 수용한다는 뜻을 밝히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책에 대한 자긍심이 바탕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림2] 죽간에 쓴 『여씨춘추』

 

  그렇다면 한 자를 고쳐 천금에 도전하려는 입장은 어땠을까. 천금이라는 거액의 상금이 동기부여가 되겠지만 그보다도 『여씨춘추』를 고친 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절호의 기회였다. ‘아무리 완벽한 책이라 해도 20만자 중에 한 자는 손댈 수 있겠지, 게다가 세상에 절대적으로 완벽한 저작이란 없으니 도전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역시나 글 좀 읽는다하는 지식인들이 함양으로 몰려왔다. 그리고 한 자를 더하거나 빼기 위해서는 먼저 책을 열람해야 했다. 이미 이 단계에서 여불위의 의도는 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완벽한 저작이란 없다, 과연 그러한가

  그러나 도전자들이 막상 책을 보니 방대한 양과 폭넓은 내용에 압도되었고 한 자 정도는 바꿀 수 있으리란 예견도 빗나갔다. 완성도가 높을 뿐 아니라 진나라 최고 실세인 권력자의 주도 하에 완성되었고 또 그에 의해 공개된 저서에 손을 대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책이 만들어진 과정을 알고 있다면, 책의 내용을 분석하기도 전에 이미 쉽게 덤비지 못할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결국 어느 누구도 한 자를 바꾸지 않았다, 아니 한 자도 바꾸지 못했다.

  권력자의 저작에 손 댈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섣부른 도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여불위는 애초에 이 점을 깊이 알고 있었으리라. 『여씨춘추』에 대한 그의 넘치는 자신감은 학문이나 도서에 대한 애정보다 권력 장악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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