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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연재] 천잉전의 『시골선생님』(3)

 

시골선생님(3)
(鄕村的敎師, 1960)

 

 

천잉전(陳映真)

 

 

4

  조금씩 서른을 넘은 개혁가 우진샹은 퇴락해갔다. 그는 지금 그저 하나의 나태한 양심 있는 사람에 불과했다. 이제 어릴 때 그랬듯 늦은 밤까지 독서에 열심이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다음 날 학생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일종의 손실이기 때문이었다. 매 학기 노트가 남으면 팔아서 체육용품을 구입했다. 그는 절대로 학생들에게 자기 집 청소를 시킨다든지 부엌일을 시켜 물을 길어오게 한다든지 하지 않았다. 그는 생활이 곤란한 학생들에게 자기 돈을 들여 소풍에 참가하게 했다. 이런 종류의 일들은 당연히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는 정성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동들은 우진샹에게 있어 그저 도덕이나 양심이라 말할 수는 없어, 커다란 이상이나 커다란 의지가 붕괴된 후에 남은 유산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 비웃음을 사고도 그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또 다른 양심상 행동이 있다면 결혼을 하지 않으려 고집한다는 것이었다. 이 일은 건푸 아주머니 마음을 퍽이나 아프게 했다. 하지만 우진샹에게 결혼이란 하나의 작은 사회문제가 될 것이었다. 이 타락한 개혁가는 자기 생활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이미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이 있었다. 가끔씩 시내로 나가 싸구려 영화를 보고 그 김에 일본 잡지 몇 권을 빌려와 그 중 실린 통속소설을 아주 재밌게 읽곤 했다. 하지만 다른 몇 가지 취미는 말을 들을 만 했다. 술 마시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래도 그는 결국 온화한 사람이었고 주벽도 없었는데, 다만 아무 까닭 없이 술 취하면 울곤 하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그래도 그런 일은 아주 드물었다.

  그 해 여름, 어느 학생의 연회에 참석했다. 그의 학생이 처음으로 군대를 가는 자리였다. 잔칫상이 안채에 마련되어 가족이 모두 둘러앉았다. 붉은 빛 테이블 위에 쌀로 빚은 술 큰 병이 놓였다. 등불 아래 사람들은 들떠있었고 얼굴은 벌갰다.

  “몸 관리 잘 해야 해!” 어르신이 말하고 술잔을 청년 앞에 놓았다.

  “물론이지요.” 청년이 말하며 술잔을 공손히 들어 마시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청년은 웃으며 미친 듯이 술을 마시고 있는 선생님을 바라봤다. 큰 개 한 마리가 테이블 밑에서 우걱우걱 뼈다귀를 먹고 있었다.

  “선생님!” 청년이 말했다.

  “그래, 술 마시자.” 우 선생은 학생에게 술을 따르며 실눈을 떴다. 파르라니 깎은 수염 부위의 볼을 제외하고는 얼굴이 온통 시뻘갰다.

  “빨리 마시지 그래.” 어르신이 말했다.

  “빨리 마시라구.” 모두들 맞장구치며 말했다. 청년은 여전히 웃으며 말이 없었다.

  “뭘 빨리 하라구 그래?” 우 선생이 말하며 애써 눈을 크게 떴다. “빨리라구?…… 사람 고기가 그렇게 짠데 먹을 수 있어? 응?”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먹을 수 있어요? 사람 고기는 엄청 짠데 정말 드실 수 있냐고요!”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하며 어르신께 물었다. 어르신은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럼, 물론이지. 사람 고기가 짜서 어디 먹을 수 있겠나?”

  “저는 먹어봤어요.” 모두들 여전히 나태하게 웃었다. “보르네오에서요, Borneo요!”

  그래서 모두들 조용해졌다.

  “먹을 게 없어서 사람 고기를 먹었어요…… 여자를요, 누구 하나 잠들지 못하고 잠들면 죽어서 잡아먹힐까봐 겁났어요.” 실눈을 뜨고 어깨를 으쓱거리는 모양이 비수를 맞고 괴로워하는 듯 했다.

  “정말 그렇게 짜?”

  “짜냐구요?―짭니다! 아직도 입에서 거품이 나요.”

  “……”

  “사람 심장도 먹어본 거야? 응?”

  “……”

  “먹어봤냐구요?…… 하나가 주먹만 한데 썰면 이렇게 돼요…… 한 조각 한 조각―” 그는 젓가락에 술을 적셔 탁자 위에 사선으로 작고 길다란 조각을 그리며 “hango(반합)에 담아서……”

  모두들 똑바로 앉아 탁자 밑에서 나는 우걱우걱 소리를 들으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불 위에 올리며 심장이 위로 튄다고! 한 척이나 높이!”

  “……”

  “그러면 재빨리 뚜껑을 닫으면 소리가 들리는데, 띵동띵동 하면서 튀어 오르는 게 멈추지 않아, 튀어 오르는 게 멈추지 않는다고. 한참을 띵띵동동 하면서……”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우 선생은 갑자기 젓가락을 팽개치고 빨간 비단을 걸친 청년에게 성난 소리로 말했다.

  “먹어봤어? 먹어봤냐구? 응?……”

  그러면서 어린아이 마냥 엉엉거리며 구슬프게 울었다.

 

5

  다음 날 술이 깨자 우진샹은 창문으로 징과 북을 치는 한 무리가 붉은 비단을 걸친 청년 서넛을 거느리고 마을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 가족들은 색동옷을 입고 뒤에서 빼곡히 둘러쌌다. 그는 허탈해져 아무 의미 없이 홀로 웃음을 터뜨렸다. 풍악 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지만, 징소리는 여전히 사람의 가슴을 울리고 있었다. 태양은 산비탈을 태우고 있었고, 황금빛으로 눈부신 논을 태우고 있었고, 붉은 벽돌로 지은 새 농가를 그을리고 있었다. 산비탈 능선 상의 나무그늘은 정오의 여름 기운 가운데 적막하게 서 있었다. 갑자기 그는 열대의 남방으로 돌아간 듯, 그곳의 태양으로 돌아간 듯, 도깨비처럼 울창한 숲과 포화 소리로 다시 돌아간 듯 했다. 징과 북 소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갔고, 포화 소리도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는 흡사 빗소리 같은 큰 북 소리를 경청하고, 순간 다시금 반합 속에 튀어 오르던 심장이 뚜껑과 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얼굴과 몸에 가득한 땀을 닦고 갑자기 자신이 허약하고 어지러우니 이상하다 생각이 들었다.

  우진샹이 사람 고기와 심장을 먹어봤다는 이야기는 삽시간에 산골 마을로 퍼져나갔다. 이로부터 우진샹은 어디를 가나 이상한 눈길을 받게 되었다. 학생들은 토론을 벌이고, 아낙들은 몰래 뒤에서 귓속말을 하고, 수업 시간 학생들은 시체와 같은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쉴 새 없이 땀이 흘렀다. 학생들의 머리가 그렇게 작아 보일 수 없었다. 이러한 호기심 어린 눈빛은 보르네오 원주민 여인들의 놀란 눈빛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는 땀을 닦았다. 여름의 산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왔지만 그는 여전히 쉴 새 없이 땀을 흘렸다.

  그는 계속해서 허약해져만 갔다. 남방의 기억, 전우의 피와 시체, 그리고 심장의 띵동띵동 소리는 멈추지 않고 그의 환각 속에서 울려 퍼졌고, 게다가 점점 더 날카롭게 울렸다. 한 달이 못 되어 그는 비쩍 마르고 창백해졌다. 다시 한 달 반이 채 지나기도 전에 건푸 아주머니는 그녀 아들이 침대 위에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양쪽으로 펼친 앙상한 손 아래로 선혈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정맥을 끊은 상처는 아주 깔끔했다. 하얗고 조금은 투명하고, 그렇게 불규칙하게 자른 살점은 신선한 돛새치 살과 비슷했다. 눈은 뜨고 있었다. 대문니는 아랫입술을 꽉 물고 있었고, 수염과 머리, 눈썹은 제멋대로 자라있었다. 핏기 없이 백랍과 같이 하얀 얼굴에는 불가사의하고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표정이 잠겨 있었다.

  오전 내내 건푸 아주머니는 시체 옆에서 멍하니 정신이 나가 앉아 있었고, 벌어진 상처를 어루만지곤 하며 검붉은 핏줄기와 금파리를 바라보곤 했다. 정오가 되자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산가와 같은 곡소리를 내며 무슨 말을 하는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젊은 사람들은 이런 음산한 죽음과 통곡 소리에 좀 화가 났지만 어르신들은 태반이 침묵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 듯 했지만 결국엔 그저 중얼거리기만 했다. 밤이 되자 이 통곡 소리는 잦아들었다. 그 날 밤에는 달빛이 너무 좋고, 별빛이 너무 좋았으며, 산바람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찌감치 문을 닫아걸었다.

 

 

― 1960년 8월 『필회』(筆匯) 2권 1기

*劉紹銘 主編, 『鈴鐺花: 陳映眞自選集』, 香港: 天地圖書, 200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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