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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다시 보기 18] 낭중지추(囊中之錐),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라도 펼칠 기회가 있어야 한다

 

  간혹 재능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람은 저마다의 재능이 있고 모든 분야에는 탁월한 인물이 있다. 평범함 속에 뒤섞여있던 뛰어난 재능이나 탁월한 인물이 우뚝 솟아오르는 과정을 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데, 그 과정이 극적일수록 흥미는 배가된다. 흔히 실력 있는 인재는 반드시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반대로 재능이 뛰어난데 자칫 드러나지 못하는 경우는 없을까. 동일한 실력이라면 그것이 드러나는 것과 드러나지 못한 채 사장되는 것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우리가 자주 들어본 성어 가운데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것이 있다. 낭중지추는 주머니 속의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들에게 알려짐을 이르는 말이다. 주머니에 넣어둔 송곳은 언젠가는 주머니를 뚫고 나오게 마련이다. 이 낭중지추라는 표현은 전국시대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과 모수(毛遂)의 일화에서 나왔다.

  전국시대, 진(秦)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 왕은 초(楚)나라에 사신을 보내 외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고, 이 임무를 평원군에게 맡겼다. 평원군은 자신의 집에 머무는 수천 명의 식객 중 20명을 선발하여 초나라에 가는 임무에 동행케 하려고 했다. 그런데 식객 중 19명은 선발했으나 나머지 한 명은 뽑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이때 모수라는 식객이 자신을 뽑아달라고 나섰다. 이 모수란 자는 평원군의 집에 머무는 수많은 식객 중 말단으로, 그간 어떠한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고, 따라서 자신의 식객이지만 평원군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평원군은 모수에게 “선생은 내 집에 머문 지가 얼마나 되었소?”라고 물었다. 모수가 3년이 되었다고 답하자, 평원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름도 모르는 일개 식객

 

보통 재능 있는 사람은 비유컨대 송곳이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처럼(囊中之錐) 송곳 끝이 주머니 밖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선생은 내 집에 와서 3년이나 지났건만 주변에서 선생에 대해서 얘기를 하거나 칭찬하는 것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는 능력이 없다는 것이니 남아 있으시오.”

 

  3년 동안 이름 석 자도 들어보지 못했으니 내세울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중대한 국사를 완수해야 하는 자리에 동행할 인재를 뽑는 것인 만큼 신중을 거듭해야 하므로 재능이 없는 자는 갈 수 없다는 평원군의 직설적인 지적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모수는 여기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림1] 모수 동상

 

그러니 오늘 저를 주머니에 넣어 달라고 청하는 것입니다. 만일 진작 주머니에 넣어주셨다면 송곳이 주머니를 뚫고 나왔을 것이고, 어찌 송곳 끝만 보였겠습니까.”

 

  모수는 자신을 주머니에 넣어주기만 한다면 송곳 끝이 뚫고 나올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어찌 주머니에 넣어보지도 않고 송곳 운운하느냐고 대담한 반격을 한 것이다. 게다가 송곳 끝만이 아니라 송곳 자루도 주머니를 뚫을 수 있다고 강력하게 설득했다. 모수의 대답은 낭중지추라고 한 평원군의 말꼬리를 잡은 순간적인 말재간일 수도 있다. 혹은 이름 없이 3년간 쌓아온 내공에서 나온 자신감일 수도 있다. 평원군은 결국 모수를 포함한 20명의 수행단을 이끌고 초나라로 향했다.

 

 

송곳과 주머니, 무엇이 먼저인가

  두 사람의 대화에서 각자의 주장은 분명하다. 평원군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송곳을 어찌 믿을까, 즉 검증되지 않은 인물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질책도 포함되어 있다. 맞는 말이다. 반면에 모수는 송곳의 날카로움은 주머니에 넣어봐야 안다, 즉 능력을 펼칠 기회를 달라는 입장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품고 있어도 발현할 장이 마련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한쪽은 검증받은 인재를 등용하겠다고 하고, 한쪽은 검증의 기회를 달라고 한다.

  결국 제 힘으로 재능 검증의 기회를 붙잡은 모수는 초나라에서의 협상이 암초에 부딪쳤을 때 독보적인 활약을 하여 합종(合縱)의 동맹을 이끌어냈다. 귀국 후에 평원군은 모수의 능력과 성과를 높이 평가하여 그를 상객(上客)으로 삼았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수천 명의 선비들을 봐왔건만 모수 선생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우리 조나라의 위상을 드높였으며, 그의 세 치 혀는 백만의 군대보다 강하다’라며 재능 있는 인물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을 반성했다.

 

[그림2] 평원군

 

  재능의 유무도 중요하고 재능을 알아보는 안목도 중요하다. 그런데 모수의 예에서 보듯이 송곳이 주머니 밖으로 뚫고 나오려면 일단은 주머니에 넣어보는 것이 우선이다. 기회를 자주 얻어야 재능도 연마되고 경험이 쌓여서 더욱 날카로운 송곳이 된다. 그렇다면 동일한 실력이라고 가정 할 때, 드러나는 것과 드러나지 못한 채 사장되는 것을 결정짓는 첫 단추는 기회일 것이다. 모수는 이 첫 기회를 스스로를 추천하여 얻어냈다. 이를 모수자천(毛遂自薦)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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