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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 차이나] 성룡, 재키 찬, 우리들의 따거

 

  지난 6월 30일 성룡, 왕대륙 주연의 영화 <레일로드 워>가 개봉했다. 항일시기를 배경으로 기차 위에서 벌어지는 액션 활극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항일투쟁이 소재지만 애국주의를 강조한 것 같지는 않고, 그보다는 성룡 특유의 코믹함이 버무려진 코믹 액션영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국내 극장업계가 워낙 불황인데다가 중국영화가 별 인기가 없으니 <레일로드 워>의 흥행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은 더이상 성룡 영화에 예전처럼 열광하지 않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래도 성룡이기에 작게나마 꾸준히 개봉관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2020년 연말에도 성룡 주연의 <뱅가드>라는 영화가 개봉된 바 있다. 흥행 스코어는 어땠을까. 최근 한국에서 개봉되는 대부분의 중국영화가 형편없듯이 3만명 남짓의 초라한 성적이다. 한때 설이나 추석 등 가장 큰 대목에 맞춰 성룡 영화가 개봉되던 때를 생각하면 참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액션배우로서의 성룡의 전성기는 이미 지났다는 것을 감안해도 좀 씁쓸한 결과다. 그나마 좀 반갑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뱅가드>의 감독이 당계례라는 점인데, 그들이 누구인가. 성룡과 당계례, 1995년 <홍번구>를 만들어 할리우드 진출의 폭죽을 쏘아 올리지 않았던가. 아마도 그들은 제2의 <홍번구>를 기대하지 않았을까. 만듦새 여부를 떠나 한국에서의 반응은 좀 쓸쓸하다. 그래도 우리들의 큰 형님 성룡인데 말이다.

  자, 그렇다면 본토인 중국에서의 상황은 어떠할까. 중국에서도 성룡의 화제성과 티켓 파워는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 그래도 성룡은 매해 꽤 큰 규모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으며 맹활약중이다. 요컨대 제작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 영화계의 거물이라는 성룡의 위치와 영화에 대한 꺼지지 않는 열정이 더해져 쉬지 않고 신작이 나오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지금껏 그가 출연한 영화 편수가 120편이 넘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한마디로 중국 영화계의 파워맨 성룡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림1] <레일로드 워> 포스터

 

  때는 바야흐로 40년 전, 1979년 서울 국도극장에서 단관 상영되었던 <취권>은 89만 명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성룡이라는 슈퍼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이소룡의 시대가 지나고 새롭게 성룡의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같은 해에 만들어진 <사형도수> 역시 빅히트를 기록하며 성룡의 입지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이 두 편의 영화는 단순히 성룡을 스타의 반열에 올렸다는 것 외에도 여러 의미를 갖는다. 특히 기존 무협영화의 틀에 성룡표 ‘쿵푸 코미디’ 혹은 ‘코믹 액션’라는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장기를 잘 살린 아크로바틱하고 정교하게 합을 잘 맞춘 액션은 마치 서커스를 방불케 할 정도로 신선하고 재미있어서 관객들을 빨아들인다. 또한 결코 무겁거나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유머와 코미디를 잘 살려내는 이야기 구조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성룡이 나오는 영화는 거의 다 전 연령대가 시청 가능한 영화들이다. 이제 성룡이라는 이름은 흥행 보증수표가 되어 중화권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서 크게 인기를 끌게 되었다. 성룡은 또한 이 시기부터 자신이 직접 영화를 감독하고 제작도 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성룡은 <취권>의 성공 이후 홍콩 최고의 영화사 골든 하베스트로 적을 옮겨 더욱 규모를 키우면서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성공시킨다. <사제출마>,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 <프로젝트A>, <용형호제>, <쾌찬차> 등등 수많은 영화들이 이어진다. 이후 성룡은 아시아를 넘어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 1995년에 이르러 <홍번구>라는 영화로 미국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할리우드에서도 통하는 아시아 배우가 된다. 80년대 <캐논볼> 등의 영화로 미국 진출을 노렸다가 실패했던 성룡의 도전이 비로소 결실을 맺은 셈이었다. 이후 <러시아워> 시리즈, <턱시도>, <80일 간의 세계일주> 등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활약하며 글로벌 스타로 더욱 발돋움하였다.

  영화 속 성룡은 근사하고 폼나는 영웅적 주인공이 아니다. 늘 맞고 도망치고 구르면서 엄청나게 고생하다가 겨우겨우 성취를 이뤄내고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야 어렵사리 해피엔딩을 맞는다. 요컨대 성룡은 늘 만만하게 보이고 또 때로는 도와주고 싶은 그런 정감 있는 인물을 연기한다. 어떤 역을 맡던 미워할 수 없는 개구쟁이 같은 이미지가 있다. 그것이 또한 성룡표 액션영화의 묘미이기도 할 것이다.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재미와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와 감동을 추구하는 것이 성룡의 영화인 것 같다. 물론 <신주쿠 사건>, <뉴 폴리스 스토리>, <신해혁명> 같은 영화에서는 웃음기를 빼고 진지하고 비장한 연기를 펼쳐 보이기도 했다. 아마도 성룡 스스로 연기에 변화를 좀 주려고 했던 것 같다. 한편 성룡은 <신화>, <차이니스 조디악>, <드래곤 블레이드> 같은 영화에서는 우리 배우 김희선, 권상우, 유승준 등을 기용하기도 했는데, 성룡은 우리 한국과도 친숙한 중화권의 대표적인 친한파 스타이기도 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성룡은 예전 무명 시절 우리 한국에 거주하며 한국 홍콩 합작영화에 출연하기도 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성룡의 그런 경력은 우리 관객들이 그를 더욱 친숙하게 느끼게 하는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세계적 스타임에도 늘 소탈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성룡은 세계적 톱스타이지만 멀게 느껴지지 않고 늘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하고 친근한 이미지다. 가령 80년대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등 홍콩배우들의 인기가 높았을 때를 생각해보면, 성룡은 그들과는 좀 달랐던 것 같다. 그들에 앞서 독보적인 인기를 끌었음에도 뭐랄까 좀 더 편하고 푸근한 느낌이었다.

 

[그림2] <용형호제> 포스터

 

  그런저런 이유로 중년 이상의 한국인들에게 성룡은 단순한 외국의 한 영화배우를 넘어 오랜 시절 희노애락을 함께 한 푸근하고 애틋한 대상일 듯하다. 그 세월이 벌써 40년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영화를 접했고, 그가 스크린에서 보여준 신나고 흥미로운 액션과 이야기들을 보며 웃고 손뼉 치지 않았던가. 그랬던 성룡도 나이를 먹었다. 환갑을 훌쩍 넘어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인 것이다. 이젠 더이상 예전과 같은 날렵하고 화끈한 액션을 보여줄 수도 없고, 어떤 새로운 연기 변신으로 놀라운 연기력이나 작품성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열정으로 매해 계속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주연을 맡는다는 자체만으로도 박수를 보낼 만하다. 그야말로 우리 시대 진정한 광대이자 장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영화 자체보다도 정치적, 사회적 이슈로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하고 대표적인 친중 행보를 보이는 스타로 거론되기도 하는데, 그것에 관해서는 여러 견해와 입장이 있을 수 있으니 일단 논외로 하자. 성룡은 사생활 문제로도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른 바 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이자 공인으로서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음으로 성룡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을 좀 이야기해볼 차례인 것 같다. 그의 영화를 특별하게 좋아하고 찾아다녔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 역시 또래의 친구들처럼 어린 시절부터 성룡의 영화를 보아왔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당시는 어린 나이라 <취권>, <사형도수>를 직접 극장에 가서 보진 못했고, 본격적으로 성룡의 영화를 극장에 가서 보기 시작한 건 아마도 80년대 중반부터였던 것 같다. 아마 중학교를 다닐 때였을 텐데 <쾌찬차>, <오복성>, <용형호제>, <프로젝트A> 같은 영화들을 재밌게 보았다. 할리우드의 액션영화들과는 다른 정서와 질감이면서 또한 우리 한국영화들과도 차별되는, 독특한 느낌의 영화들이었다. 요컨대 코믹하고 호쾌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은, 건강한 영화들이었다고 할까. 에너지가 넘치는 중학생들에게도 성룡의 영화들은 여러모로 안성맞춤이었던 것 같다. 이어지는 <폴리스 스토리>, <쌍룡회>, <미라클>, <중안조> 등등 80년대를 지나 90년대 내내 성룡의 영화들을 보고 즐긴 것 같다. 특히나 <쾌찬차>, <용형호제>, <홍번구> 등 해외 올 로케이션으로 찍은 영화들이 꽤나 신선하게 다가와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주지하듯 80년대 중후반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여명, 양조위 등등 홍콩의 여러 스타들이 인기를 끌고 그들이 나오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큰 호응을 받았다. 성룡의 입지는 좀 작아졌을까, 그렇다기보다는 그때도 성룡은 그들과는 또 다른 한 축을 맡으며 인기를 유지했던 것 같다. 그러다 반환을 전후 해 홍콩영화의 인기가 전반적으로 시들해지면서 성룡의 영화들도 덩달아 슬그머니 힘이 빠졌던 것 같다. 성룡은 여전히 왕성하게 영화를 만들었지만 나를 포함한 여러 관객들에게 그의 코믹 액션영화가 더 이상 그렇게 재밌고 새롭게 다가오지 않은 듯하다. 개인적으로도 2000년대 이후로는 성룡 영화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고 그저 어쩌다 몇몇 작품을 본 정도인 것 같다. 그 중엔 별로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성룡인데 봐야지 했던 영화들도 종종 있다. 인상적인 영화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좀 아쉬운 쪽이었다. 예컨대 <뉴 폴리스 스토리>, <신화>, <BB 프로젝트>, <포비든 킹덤>, <베스트 키드>, <신해혁명>, <드래곤 블레이드> 정도를 본 것 같다. 이런 영화들로 보건대 최근 성룡은 중화권은 물론 범아시아와 할리우드까지를 겨냥하여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 여러 아시아 배우들과의 협업은 물론 유명 할리우드 배우들과도 함께 영화를 만들고 있는데, 인상적인 것은 단순한 출연이 아니라 기획부터 제작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쉬운 점은 이처럼 더욱 커진 규모, 그리고 다양한 시도를 함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만한 영화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그림3] <홍번구> 포스터

 

  결론적으로 성룡의 영화와 또 배우로서 성룡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그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영화계에 확실한 자신만의 위치를 갖고 있다는 점일 것 같다. 즉 그가 만들고 주도한 특유의 코믹 액션영화, 혹은 코믹 쿵푸는 성룡 본인만의 색깔을 확실히 가지면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하나의 장르로 인정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 노래가 그렇듯 액션은 만국의 공통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성룡은 온몸을 내던지는 박진감 있는 액션, 또한 마치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정교하고 재밌는 액션 등을 다양하게 선보이며 관객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성룡은 카메라 기교나 CG가 아닌 몸으로 부딪혀 만들어내는 사실적 액션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영화의 말미에 부록처럼 보여주는 NG 장면을 보면 그가 영화 속 액션을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곤 했다. 과거 대스타 이소룡 영화 속 엑스트라였던 성룡은 ‘용이 되겠다’라는 이름의 의미처럼 차츰 성장하여 그 역시도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이소룡의 액션과는 전혀 다른 자신만의 액션을 가지고 말이다.

  그리고 앞서도 언급했듯이 성룡은 일찍부터 연출, 제작까지 모두를 아우르며 자신의 영화세계를 만들어왔다는 점도 꼭 언급할 만하다. 능력 있는 이들이라면 몇 편 정도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룡만큼 수십 편을 지속할 수 있을까. 그런 예는 드물다고 봐야 할 것이고 역시나 독보적이다. 주로는 성룡 자신의 영화를 제작했지만, 8, 90년대에는 여러 다른 감독들의 다양한 영화들도 제작한 바 있다. 성룡이 만약 배우에 머물렀다면 당연히 지금과 같은 위치는 어려웠을 것이다. 모든 것을 관여하고 총괄했기에 지금까지도 영화를 직접 만들고 주연을 맡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점차 조연을 맡는 경우도 있지만, 그때도 존재감은 주연에 뒤지지 않는다. 성룡은 최근 들어 파이를 더 키워 글로벌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해외시장을 노리고 있다. 수십 년간 노하우를 쌓아온 거물 배우이자 제작자로 입지를 다졌기 때문에 아시아의 여러 배우들은 물론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을 자신의 주도 하에 모이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렇게 정리하고자 한다. 성룡은 영화에 모든 걸 걸고 한눈팔지 않고 매진한 사람이고, 또한 그에 대한 충분한 성과를 얻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영화를 꿈꾸는 현재 진행형인 광대, 혹은 살아있는 전설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부분을 가지고 이래저래 이야기하고 비판과 분석을 할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영화인 성룡에 대해서 인정할 수밖에 없고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이다. 계속 파이팅 하길! 성룡, 재키 찬, 그리고 우리들의 따거여!

 

[그림4] <드래곤 블레이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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