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상반기, 개인적으로 관심이 간 두 편의 중국영화가 있다. 두 영화는 큰 시차를 가지고 있는데, 한편은 1983년도 영화이고 또 다른 한편은 2021년작이다. 바로 <해변의 하루(海灘的一天)>와 <열대왕사(熱帶往事)>다.
<해변의 하루>는 대만 뉴웨이브의 주역이자 거장 감독인 양덕창(에드워드 양)의 장편 데뷔작으로 1983년작이다. 그동안 저작권 등의 문제로 국내에서 정식 개봉이 안되다가 올 초 드디어 극장에 걸렸다. 그래도 양덕창의 작품인지라 몇몇 언론에서 소개와 리뷰를 올리기도 했다. 근 40년 전의 영화임에도 감탄을 자아내는 훌륭한 미장센을 보여주고 있는데, 스타일리시하기로 정평 난 왕가위 영화를 도맡아 찍은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이 처음으로 촬영을 맡은 영화가 바로 이 <해변의 하루>다.
영화는 사랑을 잃고 오스트리아로 유학,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어 13년 만에 귀국한 웨이칭이 옛 연인 자썬의 여동생 자리을 만나 대화하는 장면으로 시작되고, 플래시백을 통해 그녀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담담히 보여준다. 자리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정략적인 결혼을 한 오빠 자썬과 다르게 집을 박차고 나가 가난한 대학 친구 더웨이와 사랑하고 결혼한다. 하지만 자리의 결혼생활은 평탄치 못하고 점점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어느 날 남편은 해변에서 실종된다. <해변의 하루>는 통속적인 가족 서사와 다소 느슨한 미스테리 스릴러가 결합된 구조인데, 대만 사회의 현실을 담담히 담아내는 동시에 이들 여성이 어떻게 성장하고 자아실현을 해 나가는지를 긴장감 있고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에드워드 양과 크리스토퍼 도일이 선사하는 유려하고 감각적인 화면, 적시적소의 음악, 그리고 호기심과 긴장감을 자아내는 여러 상황과 사물들이 영화의 몰입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적어도 왜 양덕창을 거장으로 부르는지 알게 해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열대왕사>는 작년 칸영화제를 비롯하여 부산영화제에도 출품되어 많은 화제를 모았던 영화이고, 역시 화려하고 감각적인 미장센과 강렬하고 다채로운 색감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작품이기도 하다. 얼핏 왕가위의 영화들이 연상될 정도다. 제목처럼 뜨거운 열대의 여름밤을 담아낸 서스펜스 영화다.
1997년 중국 선전, 어느 여름 밤 에어컨 기사 왕쉐밍은 차를 몰고 가다 사람을 치어 죽게 하고 시체를 유기한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자수를 결심하지만 경찰서에서 발길을 돌리고, 실종된 남편을 신고하러 온 후이팡과 마주친다. 그녀가 자신이 죽인 남자의 부인이란 걸 알게 된 왕쉐밍은 그녀 주위를 맴돌며 자신의 죄를 고백할 기회를 찾는다. 후이팡을 몰래 따라가 집안의 에어컨을 일부러 고장나게 하여 다시 그녀를 마주할 계획을 세우고, 후이팡 남편의 빚을 받으러 온 남자들이 후이팡을 괴롭히자 그들과 맞서 싸우기도 한다. 그런 이상한 인연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게 된 왕쉐밍과 후오팡, 왕쉐밍은 자신이 남편을 차에 치어 죽게 했다고 고백하지만, 후오팡은 자신의 남편이 총에 맞아 죽었다는 뜻밖의 사실을 전한다. 이후 후오팡 남편의 죽음에 가려졌던 배후가 서서히 드러나게 되고 스토리는 또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영화 <열대왕사>의 매력은 역시 독특하고 감각적인 미장센이다. 주인공의 심리를 드러내는 여러 장치들도 흥미롭고, 푹푹 찌는 열대의 더위와 습기가 관객들에게 전달되면서 극의 긴장감을 더해가는 것도 인상적이다. <청설> 등의 영화에서 순수하고 풋풋한 매력을 선보였던 펑위옌의 연기 변신도 충분히 인상적이다.
<해변의 하루>, <열대왕사>, 이 두 편의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크고 흥미로운 요소는 바로 여주인공 실비아 창, 즉 장애가일 것이다. <해변의 하루>에서는 20대의 장애가를 만날 수 있고 <열대왕사>에서는 60대 장애가의 명품 연기를 만날 수 있다. 역시 명불허전이다. <해변의 하루>에서 장애가는 풋풋하면서도 뭔가 비밀을 간직한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었고, <열대왕사>에서는 그냥 가만히 서 있어도 인생의 여러 가지를 전달하는 관록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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