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중국의 변강학 5] 부탄과 중국 변강

 

  중국인들은 접경국인 부탄(Bhutan)이 왜 중국과 국교 관계를 안 맺고 있는지 궁금해 한다. 바티칸, 팔라우, 남미의 파라과이와 과테말라, 아이티 등은 지정학적 원인 때문이라지만, 부탄은 14개 접경 국가들 가운데 유일한 미수교국이다. 그러면서 부탄인들의 비상식적인 태도를 짐짓 나무라고, 속히 중국과의 정식 수교를 통해 G2라는 대국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충고한다. 일대일로는 당신들처럼 개혁 개방이 어려운 나라들을 위해, 국제적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위해 베푸는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가르친다. 부탄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은 역사적으로 강대국에게 시달림을 당했기에 어떻게 사는 것이 이 외교 정글에서 생존할 수 있을지에 민감하다. 과거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삼자 부탄도 덩달아 그 영향을 받았다. 영국이 물러난 후에는 무서운 중국에 놀라서 주변의 강대국인 인도에 바싹 붙어 지내고 있다. 요즘 중국과 인도의 국경 분쟁도 요 작은 부탄이란 국가의 언저리에서 벌어지고 있다. 국토 면적으로 보나, 인구수로 보나 중국[Dragon]이나 인도[Elephant]와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작고 적다. 위성 지도를 보아도 알 수 있듯 그 지리적 위치가 가련하기조차 하다.

 

[그림1] 부탄의 위치

 

[그림2] 팀부(Thimphu), 탁상곰파 사원(부탄 제1의 성지)

 

  산악국가, 불교국가, 절대 군주제에서 입헌 군주제로, 위로부터의 혁명, 국왕도 정년이 있는 나라, 지구상의 마지막 샹그릴라(Shangrila), 국민행복지수 1위인 나라, 의료와 교육이 무료인 나라, 왕이 스스로 절대 권력을 내려놓은 나라, 한 해의 여행객 수를 제한하는 나라, 여행자들에게 하루 200달러씩 세금을 물리는 나라, 국토의 70%는 삼림을 유지하는 나라, 지속 가능한 성장의 모범 국가, 지정된 지역을 지정된 가이드와 함께 여행하는 나라, 살생을 금한다고 도로에도 개들이 활보하는 나라, 금연이 국법인 나라, 인종 갈등으로 네팔 난민 10만 명이 발생했던 나라, 사방이 꽉 막힌 내륙국가, 첫눈이 내리는 날은 공휴일인 나라 등등… ‘부탄[梵語 보타나-티베트의 변방, 부우탄-높은 지역]’이라는 나라를 설명하는 말들이다. 중국과의 영토 분쟁은 잠시 소강상태이긴 하나 지금도 진행 중이다. 1950년 티베트가 중국에 편입되면서, 그 티베트 남부에 붙어있던 작은 부탄이 합방(合邦)되지 않은 것은 현대사의 복잡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히말라야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부탄의 공한증(恐漢症) 혹은 공중(恐中)이나 공공(恐共) 증상이 폐쇄 국가라는 오명을 갖게 하였을지도 모르겠다. 네팔 공산당으로 인해 정치적 인종 갈등에 휩싸였던 기억도 이런 정책에 한몫했을 듯하다.

  2021년 4월 중국 윈난성 쿤밍시에서 부탄과 중국 간에 제10차 영토 회담이 열렸다. 1984년부터 2016년까지 모두 24차례에 걸쳐 영토 확정 회담이 있었지만 아무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날 전문가 모임은 25차 회담 날짜와 의제를 정하는 회의였단다. 이런 와중에도 중국은 양국 간 기존 영토 분쟁 지역이었던 부탄 북부의 자칼룽-파삼룽, 서부의 도클람 2곳 외에, 작년 6월 부탄 동부의 사크텡 자연보호지역까지 주권을 주장하고 나섰다니. 부탄 국경을 2.5~10km 들어온 곳곳에 티베트인 정착촌과 중국군 기지를 건설했다고 전해진다. 전랑(戰狼) 외교의 일면이다. 중국이 히말라야 전선을 구축한 인도-시킴-부탄과 히말라야 대치를 이어가며 ‘실리구리(Siliguri, 닭의 목) 회랑(Corridor)’을 움켜쥐려는 잠식경탄(蠶食鯨呑)의 현장을 보는 듯해 아슬아슬하다.

  “한 사회 안에서 부유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보다 행복한 경향이 있다. 그러나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다. 그리고 한 나라가 부유해진다고 해서 그 국민이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제사학자 이스털린(Richard Easterin)이 1974년 발표한 일명 ‘이스털린의 역설(Easterlin’s Paradox)’이다. 이후 UNDP나 OECD 같은 국제기구뿐 아니라 캐나다, 호주, 홍콩, 일본 등이 ‘웰빙’ 혹은 ‘삶의 질’ 지표를 국정에 반영하였다. “GDP가 증가하고 있어도 사람들은 삶이 점점 팍팍해진다고 느낀다. 실제로 그들의 삶이 더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파악한 프랑스의 사르코지(Nicolas Sarkozy) 대통령은 스티글리츠 등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에게 의뢰해 GDP를 대신할 새로운 계량지표 개발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 위원회는 2009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GDP 증가만을 추구하다가 정작 국민은 더 못살게 되는 사회로 갈 수도 있다.”라는 경고를 남겼다. 이런 선진국들의 논의가 있기도 전인 1972년부터 국민총행복 지수를 국정지표로 삼았던 부탄이다. 그 결과 34년 후인 2006년의 조사에서 국민총행복 지수 아시아 1위, 세계 8위를 찍었던 부탄이 놀랍다.

  최근 경제 대국 중국의 20대 젊은이[九零后]들 가운데 80% 이상이 은행 빚에 짓눌려 살고 있다고 한다.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 같다는 소리를 들으며 성장한 중국 경제이다. 제국주의보다 더 제국주의적인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중국에게, 부탄은 ‘정신승리법’에 빠져 있는 아큐[阿Q]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경제 순이라고, 먼저 경제가 발전해야 ‘공동부유(共同富裕)’를 이룩할 수 있는 것이라고 부탄에 훈수를 두고 싶어 할 것이다. 공동 행복이란 그다음이라고 타이를 것이다. 그래서 부탄에 100억 달러(약 1조 3천억 원)의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제안했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나라냐?”라는 자조 섞인 질문이 난무하는 대한민국에게 ‘이게 나라다!’라고 조용하게 대답하고 있는 나라. 1971년 유엔에 의해 최빈국(Least Developed Countries)으로 지정되었던 부탄이지만, 2012년 조사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의 졸업 기준(1,242달러)을 넘어섰고 2015년 조사에서는 인간자산 부문의 졸업 기준도 달성했다. 환경보호 부문에서도 생태적 보호지역(protected area)이 국토의 51%에 달하며, 동식물의 다양성도 잘 보전되고 있다. 부탄의 왕이 유엔환경계획(UNEP)으로부터 ‘지구 챔피언(Champion of the Earth)’이라는 칭호를 받았는가 하면, 세계야생동물기금(WWF)의 ‘보호지도자상’도 수상했단다. 민주화와 분권화 등 정치 부문에서도 커다란 진전을 보이며, 전통문화의 훼손을 막기 위해 여러 법적 조치들을 취하고 있는 나라 부탄.

 

[그림3] 부탄의 국기, 기도하는 여인

 

  1970년 한국과 부탄의 1인당 GDP는 255달러와 212달러로 별 차이가 없었다. 한국이 경제 성장을 위해 유신독재를 시작하던 1972년에, 부탄은 GDP보다 GNH가 더 중요하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즈음 한국의 GDP는 3만 달러까지 올랐는데 부탄은 3천 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제적 수치로는 한국의 완승 같은데, 2015년 유엔 ‘세계 행복의 날’에 맞춰 미국 갤럽이 실시한 행복도 조사에서 한국은 143개 국가 중 118위. 같은 해 삶의 질과 관련해 OECD가 발표한 한국의 성적표는 놀랍다. 출산율 최저, 청소년 행복 지수 최저, 사회복지 지출 비율 최저. 최고도 있다. 자살률과 노인빈곤율. 국민총생산(GNP, Gross National Product)보다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을 국정지표로 삼은 제4대 왕(1972~2006) 지그메 싱기에 왕축(Jigme Singye Wangchuck)은 계몽 군주로서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그런 부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지금의 제5대 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 역시 국민의 절대적 신뢰를 받고 있다. 그가 평민 출신 젯선 페마(Jetsun Pema)를 왕비로 맞은 러브스토리는 가히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영화 얘기가 나왔으니 오늘은 부탄 영화 한 편을 소개하며, 중국의 변강-부탄 편을 마무리해야겠다.

 

[그림4] <교실 안의 야크> 포스터

 

  <교실 안의 야크>(2019). 파우 초이닝 도르지(Pawo Choyning Dorji)가 감독·각본·제작을 맡고, 출연 배우들도 모두 부탄어인 종카(Dzongkha)어를 구사하는 부탄산 신인들이다. 24회 부산국제영화제는 물론 63회 BFI 런던필름페스티벌(영국), 38회 벤쿠버국제영화제, 30회 팜스프링스국제영화제(미국), 그리고 울주세계산악영화제 넷팩상 수상 및 초청 등으로 유명세를 치른 영화다. 국내에는 약 1년 전인 2020년 9월 30일에 개봉되어 평점 9.5 이상의 호평을 받으면서 상영관 수를 늘려가기도 했었다. 시골 학교로 전근을 간 선생님과 그 마을, 학생들의 이야기인데, 영화의 내용과 분위기를 글로 다 담아내기가 어려우니 직접 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영화를 통해, 부탄의 그 히말라야 하늘과 공기를 느끼며, 코로나로 지친 일상에서 힐링-행복할 수 있기를 빈다.

 

 

 

※ 상단의 [작성자명](click)을 클릭하시면 저자의 다른 글들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