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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중 경쟁 양상의 변모와 양국관계 개선 가능성 검토 ― 미 장관급 연쇄 방중과 BRICS의 탈달러화 움직임을 중심으로

 

  지난 6월 18일 블링컨(Antony Blingken)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으로 시작된 미국 장관급 고위 관리 4명의 연쇄 방중이 8월 30일 레이먼드(Gina Raimondo) 미국 상무장관의 방중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는 지난해 12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중 정상회의 합의 이행 차원에서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원래 미국 측은 지난 2월부터 이 연쇄 방문을 시작하려고 중국 측과 일정을 협의 중이었으나, 1월 28일 미국 영공에 중국 비행풍선이 진입, 2월 4일 미국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사건으로 인해 협의가 중단되는 일이 있었기에, 이번 방중 외교를 통해 미중 간의 관계가 개선될 수 있을 것인지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특히 레이먼드 장관의 경우 미국의 이니셔티브로 앞서 방중 했던 3명과는 달리 중국 상무부장의 정식 초청장을 받아 방중하였고, 중국 측에서 원하는 무역 제한 완화 문제를 실무적으로 담당하는 부서의 책임자인 만큼, 관계 개선의 실질적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던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미중 상무부 간 정기적 접촉 채널 재개 합의라는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 타협의 가능성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는 다소 맥이 빠지는 결과를 낸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미국은 의외로 적극적으로 대화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인 반면 중국은 일견 소극적으로 응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이며, 향후 양국 간 협상의 향방은 어느 쪽일까? 필자의 소견으로는 이 모든 것이 미국 석유달러(Petro-dollar) 체제의 동요와 관련이 있으며, 이는 우연히 도래한 것이라기보다는 미국의 중국 목 조르기식 봉쇄에 대한 중국의 미국 아킬레스건 치기식 반격 양상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 글에서는 미국 장관급의 연쇄 방중 경과와 최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개최된 브릭스 정상회의 회원국들이 진행하고 있는 자국 화폐 거래 추구 혹은 탈달러화 추진 동향을 살펴보고 이러한 흐름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에 관해서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미중 양국의 대화 재개 경과

  2021년 1월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정책을 대부분 폐기하였다. 그러나 광범위한 중국 상품에 대한 고관세 부과를 위주로 한 대중국 견제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를 승계하였고, 중국에 대한 반도체 및 반도체 생산장비 판매 중단까지 더해져 견제의 범위는 더 확대되었다. 더욱이 그해 8월 2-3일 낸시 펠로시(Nancy Pelocy) 미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으로 미중 양국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양자정상회담을 갖고 쌍방의 외교당국 간 전략적 소통 유지와 일상적 협상 전개, 재정금융당국 간 거시경제 정책 및 무역문제 대화 전개, 제27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의 성공을 위한 공동노력, 공공위생, 농업 및 식량안전 관련 대화협력과 양국 실무협의단을 활용한 구체적인 문제 해결 추진 등에 합의하였다.[1]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측 드라이브로 미중관계가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가는 국면에서 어떻게 보면 다소 갑작스럽다는 인상을 주는 대화 재개 합의여서 외부의 관찰자들에게는 다소 의외의 진전이라는 의문이 생기는데 그 의문은 아래와 같은 사정을 알게 되면 풀리게 된다.

  발리 정상회담이 개최되기 한참 전,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여파가 채 가라않기도 전인 8월 12일, 미국 블룸버거 통신에 “Janet Yellen Weighs Visit to China, Her First as Treasury Secretary” 제하의 기사가 떴고 이를 받아서 중국의 영자지 Global Times는 “Yellen reportedly weighs China visit, US debt and tariffs could be discussed”라는 제목의 기사를 동일자에 게재하였다. 미국은 부채한도 상향에 대한 상원의 동의를 받지 못하면 국가부도(default) 위험에 처하게 되는 데에다, 동년 3월부터 5월까지 중국이 미국 국채 보유량을 262억 불 삭감했고, 러시아와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서도 근년에 유사한 움직임을 보여 국채 발행 여건이 악화되었기 때문에, 옐런(Janet Yellen) 장관이 방중하면 미국의 국채 문제와 대중국 관세 문제가 논의의 주제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중국으로서는 어차피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목말라 있는 처지였으므로 발리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중 고위급 접촉 재개에 합의한 이면에는 이 같은 미국의 국내 사정과 이를 타개하기 위한 미국 재무부의 주동적 노력이 숨어 있다는 것을 쉽게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2023년 1월 18일 옐런 미 재무장관은 스위스 취리히에서 리우허(柳鶴) 중국 국무원 부총리와 만나 세계 및 양국 거시경제 및 금융 문제에 관해 대화하였고, 이 자리에서 리우허 부총리는 금년 적당한 시기에 옐런 장관의 방중에 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또한 쌍방은 경제무역 부문의 각층 관리들 간에 소통과 교류를 계속하기로 합의하였다.[2]

  그런데 양국 정상의 합의에 따라 블링컨 국무장관의 2월 방중을 필두로 미국 장관들의 방중 일자를 논의하던 중에 의외의 사건이 생겼다. 1월 28일 미국 영공에 정체가 불분명한 중국의 대형 기구(비행풍선)가 진입하였고, 미중 양측은 이 기구의 정체에 대해 ‘정찰용 풍선’이니 ‘기후조사용 풍선’이니 갑론을박하다가, 바이든 대통령의 명령으로 그 기구가 미국 영토를 가로질러 대서양에 진입하기를 기다려 2월 4일 전투기를 보내 격추시키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중국에 대한 미국의 여론이 다시 비등하였고, 미국은 블링컨 장관을 비롯한 여러 장관들의 중국 방문 추진을 중단하였다.

  그러던 중 4월 20일자 중국 환구시보는 “중국 외교는 너무 바빠서, 성의가 없는 사람을 접대할 시간이 없어”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실었다. 이 사설의 첫 단락은 “최근 한동안 워싱턴 측이 소문을 퍼뜨리며, 중국이 미국을 ‘냉대’하고 대미 접촉에 대한 ‘흥미가 결여’되어 있는 것을 원망한다. 중국이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방중 재 주선을 거절했다는 설도 있고, 중국 국방부가 미국 국방부장의 전화를 받지 않아 중미 국방장관 간에 이미 약 5개월간 통화가 없었다는 설도 있다.” 와 같이 번역할 수 있는데, 요컨대 미국이 중국과 대화 재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성의가 없으면 만날 필요가 없다며 미국 측의 성의 있는 태도를 촉구하는 내용이다.

  6월 18-19일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마침내 중국을 방문하였다. 6월 18일 친강(秦剛) 당시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을 하고, 다음날 시진핑 국가주석, 왕이(王毅) 공산당 중앙판공실 주임도 만났다. 양측 보도자료를 요약해 보면 쌍방은 양국 원수의 발리 회담 공동인식 실행, 중미관계 지도원칙에 관한 협상 계속 추진, 중미 聯合工作組(joint working group)를 통한 양자관계의 구체 문제 해결, 쌍방 인적 교류 증진 등에 합의하였다. 중국 측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조하였고, 미국 측은 대만해협의 평화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변화가 없음을 강조하였다. 블링컨 국무장관은 친강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방미를 초청하였고, 친강 국무위원겸 외교부장은 쌍방이 편리한 시간에 방미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7월 6-9일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 방중하였다. 옐런 장관은 3박4일의 비교적 긴 기간 동안 중국에 머물며 리창(李强) 총리, 허리펑(何立峰) 부총리, 판공성(潘功勝) 중국인민은행장을 면담하고, 재중미국상회 주최 재중미국기업인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하고, 중국 여성경제학자 및 기업인 오찬을 주최하였다. 미국 언론은 옐런 방중 전부터 엄청난 관심을 보이며 다양한 보도를 쏟아냈지만, 7월 10일 자 로이터 통신의 보도 제목 “Yellen’s China trip yields long meeting, ‘cordial’ tone, but no consensus”가 잘 보여주듯이 중국의 새로운 경제팀과 소통채널을 열었다는 점 외에 이렇다 할 구체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재무부의 보도 자료에 나타난 협의 내용 중 구체적인 것은 미국 노동자와 기업들을 위한 평평한 운동장 제공을 요구했다는 점과 미중 양국이 세계 거시경제 및 금융 문제에 관한 소통을 강화하고 저소득 국가의 빚 고충과 기후 금융을 포함한 세계적 도전에 함께 대처해야 한다는 점 정도뿐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도 재정부 공보실이 발표한 대 언론 답변 요지를 보면 중국 측은 미국 측이 대중국 관세인상 취소, 중국기업에 대한 압박 정지, 양국 쌍방향 투자에 대한 공평한 대우, 대 중국 수출 제한 완화, 신장(新疆) 관련 제품에 대한 금지령 취소 등에 대해 실제적인 개선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였다는 정도 외에 주목할 만한 성과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양측 공히 재무부의 업무라고 하기보다는 상무부 등 다른 부서 소관 사항에 관한 사항만 언급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띄는데, 아마도 재무부 주관 업무라고 할 수 있는 국채, 화폐 등 분야는 미국 측의 요구로 대외 발표하지 않기로 합의한 탓이 아닌가 추측된다.

  왜냐하면 중국 측의 정규 언론들은 옐런 장관이 면담한 대상 등 기본적인 사항과 옐런 장관의 의례적인 언급 내용 외에는 별로 보도하지 않았지만, 중국의 대표적 검색창 바이두(百渡)의 유명 블로거 등 비정규 언론들은 옐런의 주요 방중 목적이 천문학적인 미국의 재정 적자, 즉 채무로 인해 야기되고 있거나 야기될 것으로 예상되는 문제들은 해결하기 위해 중국 측의 협조를 구하거나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상당히 구체적인 수치와 논거를 들어가며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1] 2023년 7월 9일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 허리펑 중국 부총리의 회담 장면(사진 출처: 뉴욕타임즈 )

  이어서 케리(John F. Kerry) 미국 대통령기후특사가 방중, 7월 17일 오전 베이징호텔에서 시에전화(解振華) 중국 기후변화사무특사와 회담을 가졌다. 동일자 워싱턴 포스트는 케리 특사가 중국이 재생에너지원 확장에 보여준 “엄청난 성과(incredible job)”를 칭송하는 한편 세계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이 석탄 화력 발전소 건설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중국의 환구시보는 19일 자 보도를 통해서는 통해, 케리 특사가 7월 18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을 따로 만났다고 보도하고, 17일 시에전화 중국특사와의 회담 내용에 관해서도 비교적 자세히 보도하였다. 동일자 환구시보 사설은 중미 양국의 금번 “대화가 괜찮았다(談得不錯)”는 것이 적지 않은 사람들의 직관적인 느낌이었다고 언급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는 케리 특사의 방중 기간과 겹치게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 7월 18일 리샹푸(李尙福) 중국 국방장관, 7월 19일 왕이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을 각각 만났으며, 왕이 주임은 키신저 전 국무장관에게 중국은 키신저가 미국 외교정책을 다루던 시절에 대해 향수를 느낀다는 뜻을 표시한 것으로 보도하였다. 그런데 블링컨, 옐런, 케리, 키신저는 모두 유대계 혈통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이들이 중국 접촉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표가 미국이라는 국가의 목표일 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목표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8월 9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행정부가 중국의 군사적 야심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제한된 범위의 중국 기업에 미국의 투자와 관리 기술이 흘러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8월 21일 미국 상무부 산하 공업 및 안전국은 성명을 내고 33개 기업체를 “검정미달 리스트”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하였는데 그중 27개는 중국, 나머지는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싱가폴, 튀르키예, 아랍에미리트 기업이다.

  마지막으로 레이몬도(Gina Raimondo)미국 상무장관이 왕원타오(王文濤) 중국 상무부장의 초청으로 8월 27-30일 중국을 방문하였다. 8월 28일 오전 왕원타오 상무부장과 회담을 개최하고, 29일 오전에는 후허핑(胡和平) 중국 문화 및 여유 부장을 면담하였으며, 29일 오후에는 리창 중국국무원총리를 예방하였다.

  미국 측 보도자료에 따르면, 양국 상무부장 회담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차관급 관리와 민간기업 대표를 포함하는 상업 문제 워킹그룹을 설립, 매년 2회씩 모이고, 첫 번째 모임은 2024년 초 미국이 주최한다. (2) 수출 통제 조치에 대한 국장급 정보 교환 모임을 시작하되, 첫 번째 대면 모임은 8월 29일 북경에서 개최한다. (3) 기업 비밀정보 보호에 관한 기술적 토의를 위한 양측 전문가 회의를 개최한다. (4) 상업 및 경제 문제에 관해 매년 적어도 1회 이상 장관들 간의 회담을 개최한다. 또한 레이몬도 장관은 안전을 위해 필요한 행동을 취하기로 한 미국 정부의 공약을 강조하고, 수출 통제는 미국 국가 안전이나 인권에 분명하게 영향을 미치는 기술에만 좁게 적용하고, 중국의 경제성장을 봉쇄하지 않는다는 것을 중시한다고 언급하며 미국 정부의 “작은 마당, 높은 울타리”접근을 강조하였다. 반면에 중국 상무부의 보도자료는 중미 양측이 계속해서 소통을 유지하고, 양국기업이 실질적인 협력을 전개해나가도록 지원하기로 합의하였으며, 왕원타오 장관은 미국의 301조 관세, 대중수출통제, 쌍방투자제한 등 조치에 관심을 표시하였다고 하였다.

 

 

BRICS의 확대와 탈달러화(De-dollarization, 去美元化) 움직임

  제15차 BRICS 정상회의가 2023년 8월 22-24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최되었다. 중국, 브라질, 인도, 중국, 남아공은 실권을 가진 영도자(총리, 총서기, 대통령)가 참석하였고, 러시아는 라브로프 외교부장이 참석하고 푸틴 대통령은 영상 연설을 하였다. 이번 회의 결과 공동선언문인 요하네스버그 선언의 내용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아르헨티나, 이집트, 이티오피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6개국의 가입이 승인되어 정회원국이 11개국으로 확대되었다는 점과(선언문 91조) 브릭스 국가 간 무역 및 금융에 자국 화폐 사용의 중요성을 강조·격려하고, 재무장관과(혹은) 중앙은행장에게 책임을 맡겨 브릭스 국가 간 자국 화폐 협력과 지불 수단 및 플랫폼을 연구하게 하고 차기 정상회의 전에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였다는 점이다(선언문 44, 45조).

  브릭스 회원국이 11개국으로 확대되어 인구나 경제 규모면에서 G7을 현저하게 초과하는 단체가 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 단체가 달러나 유로화가 아닌 자국화폐로 결제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모색한다는 것은 최근 러시아-중국, 브라질-중국, 이란-중국, 이란-인도 간 등 개별 국가 간에 간간이 이루어졌던 자국 화폐 거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하게 탈달러화를 추동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구나 신규 가입국 중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 같은 주요 산유국 들이 포함되어 있어 이들이 석유 거래에 자국 혹은 무역상대국 화폐를 매개로 거래하게 되면 1970년대 중반부터 확립된 석유 달러(Petro-dollar) 시스템에 상당한 타격이 갈 가능성이 크다.

 

[사진2] 남아공 개최 제15차 브릭스 정상회의 참석자 합영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향후 미중 관계 전망과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금년 6-8월 간 4명의 장관급 미국 고위관리가 연쇄적으로 중국을 방문하였지만 상무부 간정기 접촉 채널을 마련하였다는 정도의 형식적인 성과 외에 미중 양국관계를 화해로 이끌만한 돌파구는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양국 정상이 다시 만날 가능성이 큰 금년 11월 15-17일 샌프란시스코 개최 APEC 정상회의 시까지 상무부 실무급 간부 간의 접촉이 한두 번 더 있을 수 있고, 통상적인 외교채널을 통해서도 추가적인 협의가 가능하겠지만 고위급이 와서도 달성하지 못한 합의를 실무진이 그처럼 짧은 기간 안에 이루어낼 수 있을지 대단히 난망해 보인다.

  왜냐하면 원래 2022년 12월 발리 정상회의 시 미국 측이 접촉 재개를 제의한 배경이 미중 간의 전반적인 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에 기초한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미국 국채 문제로 인한 국내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중국의 협조를 구하거나 압박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큰데, 중국은 그러한 미국의 저의를 사전에 간파하고 미국으로부터 상당히 큰 반대급부를 받아내지 않으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태세이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미국 측은 상당히 갑작스럽게 태도를 표변하여 중국에 접촉 재개를 제의했는데, 필자는 중국이 금년 1월 취리히 양국 재무장관 접촉 등의 기회에 이미 미국의 저의를 파악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금년 1월 말 대형 비행풍선을 미국 상공으로 날려 보낸 것도 중국의 계산된 행동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 한국 언론은 중국 군부 내 강경파가 시주석 몰래 벌인 일 혹은 풍선이 ‘오작동’을 일으켰을 것으로 추론하지만[3] 중국의 시스템을 고려했을 때 두 가지 모두 개연성이 낮다고 여겨진다. 미국 측이 2월 블링컨 방중을 타진해 왔을 당시, 만약 미국이 국채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협조를 얻어내고자 금융제재 카드를 꺼내 든다면, 중국은 이를 단호히 거절할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으로서는 금년 3월에 있었던 사우디-이란 화해, 양국과의 인민폐 석유거래 등 이미 추진 중인 일들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미국과의 접촉을 미루고 싶지만, 자신들이 연기를 제안할 경우 오히려 약점이 잡힐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스스로 접촉을 중단할 만한 여건을 만들고자 은근슬쩍 실수한 것처럼 비행풍선을 날려 보낸 것이 아닐까 추론해 볼 수 있다. 서양인들이라면 그런 생각을 잘 못하지만, 삼국지에도 많이 등장하는 갖가지 책략에 익숙한 중국인들이라면 능히 생각할 만한 일이다. 필자가 이렇게 추론한 이유 중 하나는 비행풍선 사건에 대한 중국의 사과이다. 지난 6월 블링컨 장관의 방중 시 중국 측에서 비행 풍선 사건과 관련하여 사과하였다는 기사를 보았는데, 정말로 중국 군부가 시진핑 주석 몰래 벌인 일이거나 기술적 오작동 때문이었다면 자존심 강한 중국이 절대 사과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측은 진작부터 미국이 상황 여하에 따라서는 러시아에 가한 국제결제시스템 배제와 같은 금융제재를 중국에도 가할 수 있겠다는 점을 상정하고, 이 같은 미국의 금융제재를 회피하기 위한 소극적 수단으로, 혹은 더 적극적인 각도에서 중국의 발전에 필요한 에너지 수입을 위한 지불수단을 다양화하거나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미국의 국력을 약화하기 위해 인민폐 국제화 혹은 국제거래에서의 탈달러화를 중점적으로 추구해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이 사우디, 이란 등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양자 간의 불화도 중재하여 결국 화해에 이르도록 주선한 것이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디지털화폐(CBDC) 발행을 추진하고 있는 것, BRICS 정상회의가 회원국 간의 무역 거래 지불수단으로 달러 대신 자국 화폐 사용 확대를 추구하도록 추동하는 것 등을 보면 이런 추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향후 단기간 내에 미중 양측이 극적인 대 타협을 이루면 좋겠지만, 필자의 추론처럼 불행하게도 양국 간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중국이 미국 국채를 더 많이 사거나 최소한 추가 처분하지 않음으로써 미국 달러에 대한 신인도 하락을 막고 재정 압박도 덜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약점을 아는 중국이 고관세 철회 등 상당한 양보를 얻어내지 못하여 이에 협조하지 않으면, 그 같은 요구가 우리나라를 포함한 미국의 우방국으로 향하게 될 것이고, 또 달러의 신인도가 대폭 떨어지고 미국 경제가 악화되면 달러 외환보유고가 상당한 우리나라에도 경제적 손실이 될 뿐 아니라 북한 핵과 관련한 미국과의 협력 기반도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1] 2022년 11월 14일자 신화사 통신 “習斤平同美國總統拜登巴厘島擧行會談”, 동일자 워싱턴포스트 “Biden says no ‘new Cold War’ after meeting with China’s Xi” 제하 기사 참조.

[2] 2023년 1월 19일자 신화사 통신 “柳鶴與美財政部長耶倫會談”제하 기사 참조.

[3] 2023년 2월 12일자 한계례 “중국 정찰풍선 작전 실패가 가져온 것” 제하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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