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번역 연재] 선충원의 「의사」(1)

 

 

의사(1)
(醫生, 1931)

 

 

선충원(沈從文)

 

  사천성 R시의 바이(白) 의사는 풍취가 있는 중년 독신의 외성인(外省人)으로 토박이와 뜨내기를 막론하고 온 시민이 받들어 모심은 물론 중서양 내외과 각종 병증에 대해 정통한 관계로, 오전에는 시내 모처 작은 복음병원(福音醫院)에서 진료를 보고 오후에는 의료기구와 약품을 챙겨 여기저기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성격이 좋은 건 천성으로 어떤 행동을 하든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모양이 도시 사람 가운데 모르는 이 없었고, 그 누구도 의사를 귀찮게 하는 권리를 버리려 하지 않아 생업은 잘 되었지만 그렇다고 어느 평범한 의사의 수입을 넘는 법이 없었다. 이 사람 좋은 사람이 삼월에 갑자기 실종되어 보이지 않아 친구들이 모두 안절부절못했고 온 동네를 다 수소문해도 소식 하나 들을 수 없어, 강에 물이 불어 복숭아꽃이 만발하던 시절에 산보를 하다가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져 하백(河伯)의 병을 치료하러 가서 이제 R시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하였다. 의사가 비록 전답과 재산이 변변치 않다고 해도 십 년을 홀몸으로 지냈으니 얼마간의 가산은 논외로 하더라도 재산이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이었다. 각처에서 이 사람을 위해 조그마한 추도회를 거행하려 할 때, 남긴 유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두고 교회 신도들과 지방 유지들 사이에 의견이 달라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도통 해결을 보지 못했다. 어느 유지는 당시 교회를 공격하곤 하던 신문사 사람으로, 근거 없는 소문을 만들어 내어 의사가 물에 빠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요사이 백 리 밖에 머물며 자신의 병을 치료하고 있다 하였다. 이 소식을 문인의 필체를 빌려 적으며 현지 교회와 현지 빈민을 비꼬면서 하는 말이 의사의 병은 이 두 군데에서 헌납한 사례금이라 하였다. 여기에는 자연히 외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흑막(黑幕)이 존재했고 의사가 남긴 유산을 과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분쟁과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이 소식이 들리자 교회는 말이 나온 지역으로 인원을 파견해 수소문해 보았으나 결과는 자연히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고 의사를 찾지도 못했다. 그래도 각처의 사람들은 이 소식이 전혀 근거 없지 않기를 희망하여 추도회는 즉시 열리지는 않게 되었다. 하지만 유지들과 교회가 의사의 유산을 중재하여 분파별로 조정한 그 날, 수많은 사람들이 의사의 거처에서 좌장을 추대하여 추도회를 거행하고 있는 바로 그때, 의사는 조용히 문밖에서 걸어들어왔다.

  그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집에서 술 마시고 있는 모양을 매우 괴상히 여기면서도 그가 오늘 돌아올 줄 알고 있었는가 싶어 매우 기뻐했다. 놀라 소리를 한 번 지르고 좌장 자리로 달려가 자신을 위해 추도회를 올리고 있는 좌장의 손을 잡고 흔들며 이내 사람들이 놀라는 와중에 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의사는 여전히 살아있었고 비록 조금은 수척하고 초췌하고 지저분한 구석이 있었지만 정신은 여전히 말짱하여, 둘러앉은 사람들은 의사가 갑자기 그렇게 와 모두들 이루 말할 수 없이 놀랐으며 무슨 좋은 일이 생길까 속으로 주판을 튕기던 사람들은 이렇게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서로가 모두 바라보기만 할 뿐 말하기를 꺼려 의사가 그들 사정을 모두 알고 있다 생각했다. 좌장은 더욱 난처하여 의사의 유산 처분과 추도회 비용에 관한 안건을 내려 감추고 좌중 인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의사는 매우 기뻐하며 때마침 이런 일이 보기 드문 기회라 여겼다. 그가 추측하기에 좌장 친구가 그의 전언을 접수했고 다른 사람에게 대신 전언을 부탁했기에 전언이 잘 도착했고, 그가 오늘 돌아올 것을 미리 알고 이들 의리가 있고 감정이 넘치는 친구들이 모두들 이 자리에 모여 그를 환영하러 나왔다 생각했다. 자리에 있는 친구들에게 말하길 오늘은 정말 즐거운 날이니 모두들 잔뜩 취해야 돌아갈 수 있다 했다.

  그 좌장은 정신을 못 차리고 의사 말을 들어 상석을 마련하라 일렀다. 자리에 앉아 석 잔을 마시고 즐거워하는 의사의 얼굴을 보고서야 모두들 부끄러운 마음을 점점 잊어버리게 되었다. 의사가 말하길 오늘은 정말 귀한 자리로 모두에게 이 십수 일간 벌어진 괴이한 일에 관해 보고를 올리겠다 하였다. 그가 제안하길,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 사람당 삼십 잔을 마셔야 한다 하였다. 그래서 다들 명을 받들어 마실 수 있는 데까지 비우고 어느 하나 거절하지 않았다. 한참을 먹고 마시고 서로 그냥저냥 한담을 나누니 아무튼 짐작하길 어느 누구도 먼저 가려고 하지 않아 가고 나면 남아 있는 사람들이 뒷담을 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서 의사가 말했다. “오늘 아주 좋네요. 제 이야기를 모두에게 들려드리지요.” 본래 모두가 이 이야기를 들을 마음이 없었지만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다. 바로 그때 요리사는 바깥 창문 아래에서 좌장 뵙기를 청하고 오늘 술자리는 내일 누가 계산할 것인가를 가만히 물었다. 좌장은 각자 나눠 낼 거라 거짓으로 말하고 천천히 이야기하자 하고 불쾌해하며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의사는 평소 좌장과 퍽이나 친하여 말했다. “형님, 제가 새로운 요재지이 이야기를 들려 드릴테니 내일 술 한 잔 사시고 여기 계신 분들 같이 모시고 하면 어떻겠소?” 모두들 술자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박수치며 좋다고 하니 의사는 매우 기뻐하며 열흘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 상단의 [작성자명](click)을 클릭하시면 저자의 다른 글들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