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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코로나 모델(Corona Model)

 

  코로나 위기(COVID-19) 1년 만에 전 세계 누적 감염자는 1억 명, 사망자는 214만 명을 넘어섰다. 동아시아와 선진국에서 시작된 1차 확산,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의 2차 확산기를 지나 10월부터는 전 세계적인 3차 확산이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흑사병이 창궐했던 14세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보건, 의료 과학기술에도 불구하고 세계사회가 코로나 위기에 취약한 것은 상호 네트워크화 된 세계화의 결과다. 저개발국이 감염병에 취약할 것이라는 상식도 깨졌다. 감염자 수를 기준으로 상위 10개국 가운데 OECD 회원국이 아닌 국가는 인도, 브라질, 러시아 3개국뿐이다. 100만 명당 감염자 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미국,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가, 100만 명당 사망자수를 기준으로는 영국, 이탈리아, 미국, 스페인, 프랑스 등 전후 세계질서를 주도했던 강대국이 코로나 대응에 실패했다. 세계질서의 놀라운 역전이 아닐 수 없다.

 

[표] 코로나-19 감염자 상위 10개국 (2021.01.25. 현재), Johns Hopkins Coronavirus Resource Center

 

  코로나 위기가 감염병의 위기를 넘어 정치와 민주주의의 문제로 확산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서구 국가에서는 인권과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의 통제와 봉쇄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시위라는 비판도 등장했다. 알지 못하는 위험(unknown risk)에서 전문가의 권한은 정치인의 책임보다 우선할 수 있는가의 쟁점도 제기되었다. 더구나 전문가의 권한과 위상은 과학적인 사실과 오정보의 각축 속에 사회적으로 상이했다. 코로나 위기에 대한 인식과 불안이 개인마다, 국가마다 다른 것이다. 위기 정치화(risk politicization)로 포퓰리즘과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 코로나 이후의 세계질서에 대한 우려도 심화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알지 못하는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민주적인 제도, 권한, 가치를 구축해야 하는 것 역시 미래 정치의 당면과제가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코로나 위기가 ‘동아시아 모델 2.0’ 논의로 연계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중국, 한국, 대만이 코로나 대응에 상대적으로 성공하면서 자칭 또는 타칭(!)으로 중국모델, 대만모델, K-방역이 회자되고 있다.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동아시아 4개국의 감염자와 사망자수는 서구에 비해 훨씬 적다. 경제지표도 성공적이다. IMF는 2020년 유럽과 G7의 경제성장률을 –8.3%와 –5.9%로 예측했다. 이와 비교하면 중국은 2020년 2.2% 성장을 기록했고, 한국경제도 당초 예측보다 개선된 –1.9%로 선방했다. 2020년 2분기 –7.8%나 축소되었던 일본경제도 3분기 4.4% 성장하면서 기록하면서 연간 –5.3% 성장률이 예고되었다. 가장 성공적인 것은 대만모델이다. 대만의 코로나 방역과 경제적인 성과는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월등하다.

  일단 중국은 예외로 하고, 한국, 대만, 일본의 코로나 대응에서 보이는 분명한 차이는 흥미로운 쟁점이 아닐 수 없다. 일본, 한국, 대만은 계획합리적인 국가가 경제성장을 주도한 발전국가의 대표사례로 연구되어 왔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병행 발전시켜 온 체제적인 특성도 공유한다. 경제수준이나 산업구조 뿐만 아니라 보건의료 체계에 있어서도 유사점이 많다. 중국에 인접한 이웃국가로서 감염병의 지정학적 위험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일본, 대만이 코로나 위기에 대응하는 성과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코로나-19에 대한 위험인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대만은 코로나-19 확산을 신속하고 분명하게 정의했다. 대만 정부가 코로나 위기를 선제적으로 정의할 수 있었던 것은 2003년 사스(SARS) 실패 경험이 주요했다. 2003년 광저우에서 발병한 사스는 2004년 종식될 때 까지 전 세계적으로 8,422명이 감염되어 916명이 사망했다. 대만은 665명이 발병하여 중국, 홍콩에 이어 3번째로 발병자가 많은 국가였다. 하지만 대만의 치명률은 27.1%(180명 사망)로 중국 6.6%, 홍콩 17.1%보다 훨씬 높았다. 대만이 사스 위기에 취약했던 것은 병원감염으로 감염자가 급격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4월 22일까지 29명이었던 감염자는 5월 2일 100명, 5월 15일 264명, 그리고 한 달 만에 600명으로 증가했다. 사스 감염의 초기통제에 실패하면서 생산, 고용, 관광 등 경제적으로도 손실이 불가피했다. 사스 실패는 대만정부가 질병관리센터(CDC)를 설립하고 중앙집권화된 방역 및 통제체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 위기에 대한 정책결정도 신속했다. 두 명의 정치인 때문이다. 차이잉원 총통은 2000년에서 2004년까지 대륙위원회 주임(장관)을 역임하면서 사스를 경험한 주역이었다. 또 차이잉원 1기 정부의 부통령이었던 첸지엔런(陳建仁)부통령은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감염병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전문가로, 사스 위기 대응의 실무를 담당한 보건부 장관이기도 했다. 감염병 위기의 경험과 지식을 가진 두 정치인은 대만의 위기대응을 주도한 정책결정자로 활약했다. 정치적인 계기도 정치적인 결단이 가능했던 환경적인 요인이다. 2020년 1월 11일 시행된 15대 총통선거에서 차이잉원 총통은 57.1%를 득표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홍콩사태 이후 독립과 자주가 선거의 핵심쟁점으로 부상한 가운데 코로나 위기의 정치화(crisis politicization)는 차이잉원 정부가 과학적인 정보가 부족한 가운데 위기를 정치화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일예로 중국 정부는 2019년 12월 31일 우한에서 발병이 일상적인 폐렴이라고 WHO에 보고했다. 그러나 대만정부는 같은날 우한 입국자에 대한 기내검역을 시작했고, 코로나-19가 공식 확인되기 전이 1월 7일 우한에 대한 1단계 여행경보를 발령한 바 있다.

  대만의 성공 요인인 실패경험, 전문가의 역할, 위험 정치화가 한국과 일본에 미친 영향은 선택적이다. 한국은 2015년 메르스(MERS) 위기를 경험하면서 질병관리본부의 기능과 조직이 재편되었다. 반면 일본은 사스와 메르스를 경험하지 않았다. 안전국가로 알려진 일본이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방역조차 실패한 것은 미즈기와(水際)라는 전통적인 인식에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만과는 달리 한국과 일본에서 위기 정치화는 코로나 대응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감염자는 3월 24일 도쿄올림픽의 연기가 결정된 이후 폭증했다. 코로나 테스트가 확대되면서 감염자도 늘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아베 내각이 올림픽을 강행하기 위해 코로나 검사를 소극적으로 시행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결국 4월 7일 긴급사태가 선포되었고 방역과 경제 모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한국에서는 4·15 총선 이후 위기 정치화와 정치 갈등이 8월 2차 확산의 원인이 되었다.

  둘째, 위기 거버넌스에 있어서도 3국에 주목할 차이가 있다. 발전국가론이 주목했던 것 핵심 쟁점은 유능한 관료가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원을 동원하고 배분하는 정책기구였다. 알지 못하는 위험에 있어 유능한 관료는 감염병 전문가로, 정책기구는 위기 거버넌스로 적용할 수 있다. 아울러 과학적인 사실과 오정보 사이에서 사회적인 위험을 구성하는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역할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기 거버넌스에 있어서도 대만은 비교우위에 있다. 한국과 대만은 사스와 메르스 실패 경험을 계기로 감염병을 전담하는 전담기구가 제도화되었다. 사스위기를 격으면서 한국의 국립보건원이 질병관리본부(NDCA)로 확대개편 되었고 메르스 사태 이후에는 차관급 기구로 확대 개편되었다. 2020년 9월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되면서 방역, 조사, 검역, 역구와 함께 범정부적인 대응을 조율하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대만의 감염병 컨트롤타워인 중앙감염병통제센터(CECC)는 2004년 법제화되었다. 대만의 CECC는 한국의 NDCA와 마찬가지로 감염병 정보, 통제, 전문인력 교육, 보도자료 배포는 물론 감염병의 통제를 위한 광범위한 정책조정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분권화된 위기 거버넌스가 제도화되었다. 코로나 위기 초기 후생노동성이 담당했던 위기 대응임무는 1월 30일 국가위기대응본부(NCRH)로 이양되었지만 NCRH의 법적 권한이 제도화된 것은 3월 14일 ‘신형인플루엔자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된 이후다. 더구나 한국의 질병관리청, 대만의 중앙감염병통제센터와 같이 보건의료 전문기구인 NIID의 기능은 연구, 검사, 정보수집 및 분석업무에 국한되었다. 2019년 당시 한국의 질병관리본부의 예산이 7,700억 원, 편제인원은 907명이었지만 NIID는 620억 원, 362명에 불과했다. 한국이나 대만과 달리 총리관저에 설치된 NCRH가 코로나 정책결정을 주도하면서 과학적 판단보다 정치적 이익이 코로나 대응을 결정했다.

  방역성공이 경제지표와 비례한다는 것 역시 중요한 쟁점이다. 일본은 코로나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정부예산 (102,658 십억엔)의 56%인 57조 6028억 조 엔을 지출했다. 이는 한국과 대만의 코로나 추경예산이 각각 66조 8천억 원(13%), 4,200억 대만달러(20.2%)인 것과 비교하면 3-5배나 많은 금액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본의 재정투자는 효과적이지 못했다. 방역과 경제의 상호대항적인 전략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8월 2차 코로나 유행이 진행되었다. 일본의 경우 8월 3일 2,000명의 감염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방역과 통제보다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투자에 집중했다. 2분기 일본경제가 –7.8%로 버블붕괴 이후 최대 폭으로 역성장 했기 때문이다. 경제회생을 위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투자로 인해 3분기 경제성장률은 5.0%로 반등했지만 10월부터 3차 확산이 시작되면서 1월에는 최대 확진자가 7천명을 넘어서면서 최대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알지 못하는 코로나 위기는 정치와 국가를 귀환시켰다. 위기 인식의 격차와 정치적인 갈등은 세계 각국, 그리고 일본, 한국, 대만의 코로나 위기대응의 성과를 달리하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울리히 벡의 지적대로 구조화된 위기가 반복되는 위험사회에서 개인의 인권과 사회적 안전, 민주주의와 국가통제를 조화해야 하는 것이 과제로 부여되었다. 동아시아의 코로나 모델의 비교적인 경험은 위험사회의 정치와 민주주의의 과제에 대해 비교적인 함의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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