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절(春節)이 다가오면, 한족이 사는 시골 마을이든,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산골 마을이든, 어디서나 떠들썩하게 모여있는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산골 마을에 장이 서면 사람들은 낡은 차 위에 함께 올라 상기된 표정으로 장터에 간다. 온갖 다양한 물건을 파는 장터에서 사람들은 설맞이 용품을 사느라 분주하다. 춘절이 지나면, 아직은 춥지만 그래도 햇살에서 봄기운이 느껴진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서 머지않아 농사도 시작될 것이다. 그러니까 중국에서도 춘절은 진짜 ‘새해’의 시작이다.
춘절이 오면, 나시족이 사는 산골 마을도 분주해진다. 정월 초닷새, 나시족 사람들이 조상님께 드리는 큰 제사가 거행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나시족은 머나먼 서북쪽에서 높은 산과 강을 건너 지금의 리장 지역으로 이주해왔다. 그들의 『창세기』(초버트)가 바로 그러한 민족 집단 이주의 기억을 반영하고 있다. 그들 민족의 시조인 체흐부버와 초제르으가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신화는 바로 그 이주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일 터, 마침내 리장에 정착하게 된 그들은 그곳에서 자신들의 조상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므쀠(므뷔)’, 즉 ‘제천(祭天)’이다.
나시족 작가 양스광(楊世光)은 어렸을 때 자신의 고향에서 지냈던 ‘제천’에 대해 서술하면서, 향백(香柏) 잎으로 만든 커다란 향이 타면서 올라오는 향내, 제천단(祭天壇)을 둘러싼 솔숲을 스쳐 가는 바람 소리, 돔바(東巴)들이 경전을 낭독하는 소리 등을 떠올리며 “하늘과 인간의 친연관계를 빌어 하늘과 인간의 조화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시족에게 ‘제천’ 즉 ‘므쀠’는 고향의 동의어이다. ‘므’는 ‘하늘’이고, ‘쀠’는 제사 지낼 때 땅에 꽂는 나무들을 가리킨다. 지금도 ‘제천’을 거행할 때 황율수(黃栗樹) 두 개와 백수(柏樹) 하나, 모두 세 개의 나뭇가지를 땅에 꽂아놓는데, 그 세 개의 나무는 각각 천신 즈라아프(므, 체흐부버의 아버지), 모신 즈라아즈(다, 체흐부버의 어머니), 하늘의 외삼촌 카즈뤼구쉬(시)를 의미한다. 여신 체흐부버가 지상으로 내려와 선택한 남성 초제르으와 혼인하여 나시족이 시작된 것이니, 이 제사는 아주 오래된 모계(母系)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의례인 셈이다.
원래 즈라아프가 딸인 체흐부버를 카즈뤼구쉬와 혼인시키기로 했으나, 체흐부버가 초제르으를 배우자로 선택하는 바람에 카즈뤼구쉬와의 혼인은 무효가 되었다. 그래서 분노한 카즈뤼구쉬가 지금도 인간 세상에 재앙을 내리려고 해서, 제사를 지낼 때면 카즈뤼구쉬 즉 하늘의 외삼촌을 상징하는 백수를 가장 가운데에 꽂는다. 그리고 백수의 뒤에 백양나무 하나를 세우고 그 끝을 네 갈래로 갈라 그 위에 달걀 하나를 얹어두는데, 그 하얀 달걀이 하늘에서 혹시 내려올지도 모르는 재앙, 즉 카즈뤼구쉬의 분노를 막아준다고 한다.
제사가 시작될 무렵이면 돔바가 향백나무 가지에 연기를 피워 부정한 것들을 제거하는 정화의식(‘처수’)을 거행한다. 향기로운 나무나 잎을 불에 던져넣어 하얀 연기를 피워 올려 거행하는 정화의식은 나시족 의례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렇게 제천단 안팎을 깨끗하게 정화한 후, 돔바들의 『창세기』 경전 낭송과 함께 마을 사람들의 제사가 시작된다.
‘제천’을 거행할 때 제물은 발 네 개가 하얀색인 검은 돼지를 바친다. 검은 돼지의 피를 세 개의 나무에 바르고, 내장을 세 개의 나무에 걸어 놓고, 제천장 마당 한 귀퉁이에 마련된 큰 솥에 물을 끓여 돼지를 삶은 뒤, 돼지머리를 다시 신들에게 바친다. 제사가 끝난 뒤 그 고기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나눠 먹는다. 제사에 바쳤던 쌀과 술 역시 돔바가 마을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주고,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신, 즉 조상님이 내려주신 복을 갖고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새해를 맞이하여 마을에 들어올지도 모르는 부정한 기운을 몰아내고, 일 년 동안 좋은 일이 생기기를 그들의 조상에게 기원하는 마을 공동체의 제사, 즉 ‘므쀠’는 자신들의 뿌리를 확인하면서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기능을 했다.
정월 초닷새, 나시족 어느 산골 마을에서는 오늘도 그들의 조상을 기억하는 제사를 지내면서 체흐부버와 초제르으의 이야기를 낭송하고 있을 것이다. 그 마을에 어서 다시 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길었던 나시족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참고문헌>
김선자, 『나시족 창세신화와 돔바문화』(민속원, 2019)
楊世光, 『東巴文化論稿』(三聯書店, 2014)
[사진1] [사진2] [사진3] [사진4] 김선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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