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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변강학 12] 카자흐스탄과 중국 변강

 

  중국과 접경하고 있는 14개 국가들 가운데 북쪽의 몽골(4777km)과 러시아(4209km), 그리고 남쪽의 인도(3400km)와 미얀마(2000km) 다음으로 긴 국경선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가 서쪽의 카자흐스탄(1700km)이다. ‘카자흐(Kazakh)’란 튀르크어로 ‘자유인, 반도(叛徒) 혹은 변방의 사람, 거주하다, 이주하다’ 등의 뜻을 지닌다. 이런 뜻을 가진 국명의 영문 표기를 지난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부터 ‘Kazakhstan’에서 ‘Qazaqstan’으로 바꾸었다. 2025년부터는 카작어 표기를 키릴문자에서 로마자로 바꿀 계획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일 수도 있겠지만, 지난 1월 반정부 폭동 때 시위대 진압을 위해 러시아 주도의 6개국 CSTO 평화유지군이 투입된 것을 보면 그리 녹록해 보이지는 않는다. 2002년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Collective Security Treaty Organization)가 창설된 이후, 첫 파병이었던 만큼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인해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이후에 카작을 타깃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NATO 세력과 CSTO 세력의 충돌 역시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사진1] 카작과 중국의 위치, 카작 알마티 시위(2022.1.5)

 

  외교가 1:1의 관계로만 이루어지지 않는 만큼, 카작-러시아 관계는 함께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도 강 건너 불구경할 사안이 아닐 것이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각국이 겉으로는 모두 친해 보이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 언제 구시대로 회귀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상존한다. 지난번 카작의 소요사태가 외세의 개입으로 봉합되기는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시위의 원인이 단순히 LPG 요금 인상에 따른 것이라고 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국가는 부유한데 백성은 가난한 괴현상이 낳은 결과이리라. 빈부의 양극화가 극심하다 보니 오래된 불만이 터져 나와 폭동으로 이어졌는데 상태가 크게 호전된 것 같지는 않다. 전체 인구가 1900만 정도인데, 그 0.01%에 해당하는 160여 명에게 국부의 55%가 편중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독립과 함께 근 30여 년을 집권했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Nursultan Nazrbayev) 전 대통령(1991~2009) 일가에게 몰려있는 부를 어떻게 분배할 수 있을까? 수도 아스타나의 지명(地名)도 영명한 지도자의 이름을 따서 누르술탄으로 바꿨다. 자본주의의 대표 격인 미국은 상위 1% 국민에게 전체 부의 32.3%가 몰려있다고 비판하는데 카작에 비하면 양반이라 하겠다. 현 대통령 카심조마르트 토가예프 역시 상왕 노릇을 하는 전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사진2] 누르술탄

 

[사진3] 왼쪽부터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1940~ ) 전 대통령, ‘토가예프’ 대통령(2019~ )

 

  중국에 살다가 카작으로 귀국한 카작인들을 부르는 용어가 있다. ‘오랄만(оралман)’이다. 카작어로 ‘돌아온 사람, 귀환자’라는 뜻이다. 러시아어 글과 말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카작에 돌아와서도 쉽게 카작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물과 기름처럼 따로 무리를 지어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단순히 언어와 문자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 이들을 대하는 다른 카작인들의 시선도 그리 곱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카작인들이 중국인들에 대해 갖는 감정과 교묘하게 일치하는 면도 없지 않다. 정부에서는 이 ‘오랄만’이라는 용어가 갖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칸다스(қандас)’라는 용어로 바꿔 부르기를 권장하고 있다. ‘혈족, 친족’이라는 뜻이니, 우리로 치면 중국에 살다가 국내로 들어온 우리 동포를 ‘조선족’이라고 낮춰 부르다가 ‘재중동포’라고 부르자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 하겠다. 한국에서도 카작에서도 언어적으로는 낮춰 부르는 것이 아니겠지만, 그들의 출신성분이 본국 땅에 살던 사람들과 구별된다는 의미에서 그리되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현재의 카자흐스탄 영토 내에서 수많은 국가들이 명멸했다. 초기 철기시대(4세기 B.C.~A.D. 3세기)에는 오손(烏孫)이, 중세에는 돌궐(552~744), 튀르게시(704~756), 위구르(744~840), 카를루크(756~940), 킵차크(11c초~1219)와 서요(1125~1212), 몽골(1206~1260) 아불하이르 칸국(1428~1468) 등,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카자흐 건국(1465~1847), 러시아 제국령 카자흐스탄(1731~1917), 알라시 자치국(1917~1920),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1920.8.26.~1991.12.15.), 그리고 현재의 카자흐스탄 공화국(1991.12.16.~ )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카자흐’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 ‘스탄’의 운명은 다채로웠다. 스스로를 ‘유라시아의 심장(Heart of Eurasia)’이라 여기는 카작은 중국의 변방이라는 생각보다 유라시아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앞서 본 타지키스탄이나 키르기스스탄에서처럼 카자흐스탄 국민들 역시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공산품의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호감보다는 악감이 더 많은 것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경제적으로 도움을 베풀면서도 왜 이웃 나라 국민들의 마음을 사지 못하고 있는지를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G2국가의 위상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4] 아티라우 우랄강의 유라시아 다리

 

[사진5] 아티라우-유럽(좌), 아티라우-아시아(우)

 

  산술적 인구밀도(총인구/총면적)로만 보면 카작은 7이다. 몽골의 2나 호주의 3, 캐나다의 3.9에 비하면 조금 높지만, 러시아의 8.9보다도 낮고, 미국(35)이나 중국(148)보다도 훨씬 낮다. 게다가 우라늄 매장량 세계 1위, 석유 석탄 천연가스 매장량 등이 풍부한 자원부국이기에 주위 강대국들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중국-몽골-카작 국경에 걸쳐 있는 알타이 산맥(Altai Mountains)은 길이가 1900km에 달한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된 이 알타이 황금 산맥의 아름다움을 4개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며 아시아와 유럽을 하나로 아우르는 평화의 대평원을 가꿀 수 있도록, 땅 따먹기식 철 지난 전쟁놀이 대신 전 세계 인민들이 단합하여 평화의 왕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드넓은 통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중국과 카자흐스탄, 그리고 몽골과 러시아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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