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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의 트럼피즘과 북핵문제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다. 반트럼프(anything but Trump) 원칙에 따라 미국적인 리더십을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추구했던 트럼피즘(Trumpism)은 전후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훼손했다. 전후 미국패권의 기반은 자유무역, 동맹, 국제규범과 질서, 다자주의, 그리고 인권에 기반하는 국제질서였다. 힘을 통한 리더십은 전후 미국이 구축했던 규범적 가치는 물론 다자주의에 활용했던 제도적 파워(institutional power)와 소프트 파워까지 약화시켰다. ‘모범을 통한 힘(power of example)’을 공표한 바이든 행정부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리더로서 역할과 위상을 회복할 것이다. 특히 다자협력의 구심점으로서 미국은 글로벌 위기극복을 주도할 것이다. 반오바마주의에 집착했던 트럼프 정부는 기후변화협약, 환태평양경제협력(CPTPP)에서 돌연 탈퇴했고, 핵군축 정책을 전환하여 핵무기의 고도화를 추진했다. 보건의료 체계의 위기를 넘어 무역, 경제, 사회, 안보, 그리고 민주주의 위기로까지 심화된 코로나(COVID-19) 위기에 미국은 리더십은커녕 취약국가로 전략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기후변화협약과 WHO의 기능을 복원하고 CPTPP에 참여하면서 다자협력을 주도할 것이다.

  그러나 미중관계나 한미관계에 대해서는 기대보다 우려가 높다. 트럼프-시진핑 시기 미중 관계는 1972년 미중 테탕트 이후 완전한 전환기를 경험했다. 미중 관계에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천안문 사태 이후, 그리고 중국의 WTO 가입이 허용된 이후에도 미중관계에는 체제적인 의구심이 계속되었다. 미중 관계의 체제적 의구심이 구체적인 전략으로 실행되기 시작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 2기 ‘아시아 회귀 전략(Pivot to Asia strategy)’이 ‘전략적 재균형(strategic re-balancing)’으로 이름을 바꾸어 추진되면서 시작되었다. 전략적 재균형 전략은 미국의 전략적 이익이 아시아에 있다는 점, 그에 상응하여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의지였지만 중국의 해석을 달랐다. 잠재적으로 미국이 중국의 핵심이익을 봉쇄, 견제하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바마 2기 미국은 중국을 경쟁자가 아닌 파트너로 대우했고, 실제 글로벌 금융위기, 환경문제, 특히 북핵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협력했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관계는 현재화된 갈등으로 전환되었다. 역사적인, 그래서 구조적인 \미중 무역문제에 천문학적인 관세가 부과되었고, 기술, 인적교류, 정보, 군사 등에 강압수단을 동원했다. 이에 따라 미중 관계가 탈동기화되고 신냉전(new Cold War)이 도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미중관계가 반트럼피즘이 될 것인지, 트럼프 없는 트럼피즘이 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지난 3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동아시아 순방과 미중회담을 계기로 명확해졌다. 한미 2+2 회담에서 블링컨 장관은 ‘중국의 공격적이고 권위적인 행동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안보에 어떤 어려움을 낳고 있는지 논의했다’고 밝히고, 인권과 민주주의가 한미관계의 기본원칙이라고 밝혔다. 앞서 개최된 미일 2+2 회담 합의문의 수위는 한미회담과는 전혀 달랐다. 미일 양국은 중국을 국제질서의 최대 위협으로 규정하고, 중국견제를 위한 협력을 명시했다. 그 구체적 수단으로 규범 기반의 국제체제, 자유로운 무역, 항해와 비행의 자유, 국제규범에 의한 해양의 이용 등에 있어 쿼드(QUAD) 협력에 합의했다. 사실상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 전략의 기본원칙에 따라 알래스카에서 개최된 미중 외교회담은 전혀 외교적이지 않은 비난과 응수가 이어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원칙적적으로 미중관계에서 협력, 경쟁, 대결을 구분하겠다고 했지만 무역, 인권, 주권(대만, 홍콩), 그리고 남중국해 등 미중 현안에 대해 트럼피즘의 계속될 것이다. 무엇보다 다른 점은 트럼프 행정부의 미중갈등이 현안의 이슈화 단계였다면,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기반 쿼드의 확장, 민주주의 정상회의, 그리고 CPTPP 참여와 같이 미중 경쟁이 제도화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미관계 역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동맹관계 조차 거래비용으로 간주했던 트럼프 행정부는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적인 인상을 요구했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직후 재개된 한미협상에서 분담금이 타결되면서 한미현안이 해소되었다. 한편에서는 북핵문제에 대한 한미협력에 대한 기대도 제기되었다. 과거 북핵문제에 강경했던 공화당 정부(부시)와 포용정책을 추진한 진보정권 (김대중-노무현), 반대로 유연하게 관여했던 민주당 정부(오바마)와 보수정권(이명박, 박근혜)의 집권이 엇갈리면서 북핵문제에 대한 이견이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보다는 우려가 높은 것이 현실이다. 마이클 그린 미국 전략국제문제(CSIS) 부소장은 한국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와 협력하기 위해서는 네가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 첫째, 대북 문제에 ‘허황한 전망’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2) 한미동맹의 핵심은 정책이 아니라 방어와 억제라는 점, (3) 한미일 협의를 통해 한국이 미국의 동북아 외교정책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하고, (4) 동북아 평화전략 수립에 미국과 협력할 것이라는 신뢰를 제공하는 것이다. 어느 것 하나 문재인 정부와 타협하기 힘든 쟁점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허황한 전망’에 방점을 찍으면 바이든 행정부의 한미관계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표] 북핵문제와 미국의 북핵 전략

 

  타협과 파기가 반복되어 온 북핵문제 대해 바이든 행정부는 대화와 협상 기조를 복원할 것인가? 아니면 트럼프식 강압과 제제를 계승할 것인가? 이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북핵문제에 대응하는 미국의 개입이 (1) 북핵문제의 본질적 성격, (2)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권교체, (3) 그리고 미중 협력에 따라 결정되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핵무장이 기정사실화된 현재, 북핵문제의 해결방안은 (1) 군비경쟁(arms race)을 통해 핵 균형을 유지하거나, (2) 군비축소(arms control)를 통한 핵 군축 두 가지 뿐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북핵 문제는 북핵 위기, 즉 핵무기의 개발 단계에서, 핵무장이 기정사실화된 북핵 위협 단계로 전환되어 왔다. 1차 북핵 위기가 시작된 클린턴 행정부, 2차 위기가 시작된 부시 행정부와,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감행했던 오바마 1기 원칙적인 협상기조가 유지되었다. 세 정부가 모두 군사적 수단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그리고 김정은 체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이 증가한 오바마 2기 북핵 전략은 전략적 인재에서 전략적 비인내(strategic impatience)로 전환되었다. 대화를 통한 해결을 원칙으로 했던 전략적 인내는 역설적이게도 북한의 핵능력을 과소평가했던 정보실패에서 기인했다. 전략적 비인내는 비핵화에 대한 의지와 실천 없이 보상도 없다는 것으로 ‘압력을 통한 유도(induce)’를 기본 목표로 했다. 그리고 반오바마(anything but Obama) 원칙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적 수단까지 포함하는 최대한의 압박으로 전환되었다.

  일단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식 톱-다운식 빅딜을 배제할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전문적인 접근(professional approach)’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은 트럼프식 협상이 핵무장한 북한의 위협을 희석하고, 더구나 정치적 이해에 따라 비핵화 과정의 불확실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핵무장한 북한의 전략적 위협에 수반되는 위기안정성(crisis stability)의 관리를 위해 군사적 관여와 강제가 지속될 것이다.

  김정은이 핵 개발을 강행하고, 핵 억지력이라고 주장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정전체제의 모순과 주한미군의 위협으로부터 체제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결국, 북한의 단계적인 비핵화는 체제안전을 보장하는 동시적인 조치에 따라 진전될 수밖에 없다. 본질적으로 비핵화(denuclearization)은 북한의 핵 포기와 체제안전을 보장하는 핵 군축 협상의 시작이자, 최종상태(end state)를 의미하는 합의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핵무장한 북핵 위협의 해소방안은 (1) 핵 균형과 (2) 핵 군축 두 가지 뿐이라는 점에서 한미관계의 전략적 갈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핵 균형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핵 억지력을 기반으로 하는 재래식 도발을 억지하기 위해 사실상의 공표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유지하는 군비경쟁이다. 만약,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동의한다면 이는 남북 간의 내적 군축(internal arms control)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한미동맹이라는 북미간의 외적 군축(external arms control)을 통해 진행될 것이다. 비핵화의 진전 또는 결렬, 전략적 군비경쟁과 군비축소의 쟁점을 상호 조합하면 결코 낙관할 수 없는 전략적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

  더구나 북핵 위협이 미중경쟁과 연계되면서 경우의 수는 더욱 복잡하다. 역사적, 체제적, 전략적, 그리고 지정학적 이유에서 중국이 북핵문제에 개입해야 하는 이유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트럼프 정부 이전까지 미중은 북핵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협력해왔다. 2차 북핵 위기 당시 중국은 북미중 3자 회담은 물론, 6자 회담의 중재자로 북핵 협상의 돌파구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그런데 중국이 미중관계의 전략적 이해를 북핵문제에 투영한다면 이 역시 부정적 요인으로 작동할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핵 군축이 시작되더라도 사실상의 북방 3각, 남방 3각 관계가 구조화되거나, 미중 경쟁 가운데 남북 간의 전략적 안보 딜레마가 더욱 심화될 수도 있다. 더구나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와 미국이 주도하는 쿼드, 민주주의 정상회의가 제도화되는 가운데 양자선택을 강요받는 한국은 북핵문제와 미중경쟁이라는 이중 딜레마가 심화되고 있다.

  요컨대, 바이든 행정부의 한미 관계는 (1) 핵무장한 북한의 전략적 위협과 미중경쟁 체제의 제도화를 위한 미국의 전략적 개입과 (2) 남북관계, 한중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한국의 위험분산(hedging) 전략이 충돌하면서 모순이 심화될 것이다. 특히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북핵 위협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미중 갈등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문재인 정부의 모순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마이클 그린이 ‘허황한 전망(vain expectation)’이라고 지적했던 불편한 현실은 여기에 있다. ‘허망’ 또는 ‘헛된’으로 번역되는 ‘VAIN’의 본원적인 의미는 ‘성과 없음’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미중관계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북핵 위협을 해소하는데 기여하지 못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북한의 비핵화가 체제안전을 교환하는 것이며, 1차적으로 핵 균형, 2차적으로 북한의 체제안전보장에 이해관계를 가진 주변국과의 포괄적인 협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더욱 명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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