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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다시 보기 21] 명철보신(明哲保身), 과업을 이루었으면 미련 없이 떠나라

 

 

  명철보신이란 총명하고 사리에 밝아 일을 잘 처리하여 자기 몸을 보존한다는 뜻이다. 이 고사성어를 이루는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글자씩 읽어도(明/哲/保/身), 두 글자씩 읽어도(明哲/保身), 네 글자로 읽어도 뜻이 좋다. 똑똑하고 사리에 밝으며 제 몸을 잘 보존한다는 뜻이니, 좋은 글자만 조합해 놓은 듯하다. 명철보신이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는데,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시경(詩經)』에 나오는 표현이다.

  『시경』은 약 2300-3000년 전에 불리던 노래를 기록한 시집이고, ‘명철보신’이라는 표현은 이 책 속 <증민(蒸民)>이라는 시에 나온다. 이 시는 주(周)나라 선왕(宣王)의 재상인 중산보(仲山甫)를 칭송한 노래로, 중산보의 친구인 윤길보(尹吉甫)가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에 제(齊)나라는 국경의 서북쪽에서 타민족이 자주 침략해 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했다. 제후국인 제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천자인 선왕이 중산보를 직접 제나라에 파견하여 이민족 방어에 필요한 성을 축조하라는 명을 내렸다. 왕명을 받고 제나라를 향해서 떠나는 중산보를 배웅하면서 친구인 윤길보가 지은 시가 <증민>이다.

 

지엄하신 왕의 명을, 중산보가 받들어 행하네.

나라에 좋은 일 나쁜 일을, 중산보가 밝혔네.

밝고 현명하게 처신하여(), 그 몸을 보전하였네().

밤낮으로 게으름 없이, 오로지 왕 한 분을 섬긴다네.

 

 

능력과 인품이 모두 뛰어난 명재상 중산보

  <증민>은 전체가 8장인 노래인데, 작품은 시종일관 중산보의 능력과 인품을 찬양하고 있다. 그중에서 명철보신이 들어있는 위 구절은 재상으로서의 위치와 그에 필요한 자질 및 덕목을 나열했다. 위 인용구의 전반부에서는 존엄한 왕명을 받들고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다고 했고, 후반부에서는 밝고 현명하게 처신하여(旣明且哲)하여 그 몸을 보전했다(以保其身)고 말했다. 그런데 내용의 흐름상 왕과 나라를 위해서 충정을 다해 일했다고 말하다가 갑자기 중산보가 제 한 몸을 보전했다는 대목이 나오니, 읽는 사람으로서는 뜬금없이 웬 일신의 보전인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재상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몸을 보전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신변의 위협이라도 느꼈다는 것인가.

 

[그림1] <증민> 전문, 제4장에 명철보신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구절을 어떻게 풀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역대로 여러 의견이 있었다. 후대에 『시경』을 풀이한 많은 주석서가 나왔는데, 그중에서도 송대의 주희(朱熹, 1130-1200)의 해석이 비교적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희는 『시집전(詩集傳)』에서 이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은 이치에 밝은 것이고, ()은 일을 살피는 것이다.

보신(保身)은 이치에 따라 몸을 지키는 것이지, 이익을 쫒고 해로움를 피해서 구차하게 몸을 보전하는 것이 아니다.

 

  주희의 해석에 따르면 몸을 보전한다는 기준은 ‘이치에 따라 순리대로 하는 것’이지 ‘이해득실을 따져서 나 혼자 살고보자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권력자인 재상에게 순리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1인자인 왕의 뜻을 헤아리고 자신이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리라. 즉 진퇴(進退)를 알고 그에 합당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그래야 몸을 지킬 수 있다. 나아갈 때를 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은 어렵고, 설령 때를 안다고 해도 실행에 옮기는 것은 훨씬 어렵다. 물러날 때를 모르고 혹은 물러날 때를 알았지만 ‘조금만 더’ 라는 욕심 때문에 머물다가 소위 팽(烹)을 당한 예는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평소에 명철하던 사람도 순간의 판단착오로 물러날 때를 놓치기 때문이다.

 

[그림2] 중산보의 초상

 

 

주희의 해석으로 다시 보는 보신의 의미

  시의 주인공인 중산보는 이런 진퇴를 잘 알고 실행 할 만큼 현명한 인물이었다는 것이 시의 내용이다. 주어진 임무를 성심껏 완수한 후에는 미련 없이 떠나는 것, 다시 말해 과업을 완수하고 홀연히 떠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과업에 대한 보상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뒤돌아보지 않고 바라는 것 없이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명철보신의 경지이다.

  명철보신 외에 우리는 간혹 보신주의라는 표현도 한다. 보신주의란 개인의 지위나 명예, 무사안일과 행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적인 경향이나 태도 또는 어떤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는 데에 만족하면서 살려고 하는 태도이다. ‘복지부동의 보신주의’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명철’이라는 말이 빠진 채 그저 보신주의라고 말할 때는 그리 긍정적인 뜻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신주의라는 말은 명철보신과 달리 일신의 안위만을 중시하고 다른 가치를 폐기한 데서 나온 표현인 듯하다.

  명철보신이라는 표현을 둘러싼 이런저런 해석들을 보면 결국 핵심은 진퇴를 아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 나아갈 때인지 물러날 때인지, 각자 한 번 자문해보는 것이 명철보신의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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