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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 & 차이나] 연극 원작의 영화에 대하여

 

  최근 문화계의 이슈 중 하나가 대학로 학전 소극장의 폐관이었다. 장기적인 운영난과 대표 김민기의 투병 등이 원인일 텐데 많은 이들이 학전의 폐관을 안타까워하고 섭섭해하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러한데 예전에 <지하철 1호선>을 본 적이 있어 마음이 허전하다. 또 하나의 쓸쓸한 소식이 있는데 극단 산울림을 이끌며 연극에 많은 공을 남긴 연출가 임영웅 대표의 별세 소식도 그러했다. 연극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자주 즐기지 않았지만, 20대 시절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인상 깊게 보았다. 당시 산울림의 공연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연극을 보러 갔던 것 같다.

  간혹 연극을 하는 이들에게 중국의 연극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중국의 연극에 대해 좀 구체적으로 말하려면 원대의 잡극부터 이야기해야 할 텐데 그러면 상대는 좀 어려워하거나 지루해하기 마련이다. 역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현대의 연극 몇 편이 좋은 이야기거리가 되는 것 같다. 일단 노사의 <찻집(茶館)>과 <낙타상자(駱駝祥子)>, 그리고 조우의 <雷雨> 정도는 연극을 좀 안다는 이들이라면 익숙해하는 것 같다. 그중 <찻집>과 <뇌우>는 중국은 물론 우리 한국에서도 상당히 높게 평가되고 있다. 또한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중국 연극이 상연되고 인기를 끌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인 <조씨고아(趙氏孤兒)>와 <회란기(灰蘭記)> 같은 작품이 그러하다. <조씨고아>는 <조씨고아-복수의 씨앗>이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았고, 작품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자 그럼 이쯤에서 중국에서 연극을 원작으로 만들어져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먼저 <조씨고아>를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가 있는데, 유명 감독 천카이거가 연출한 2010년작 <천하영웅>이 그것이다. 잘 알려진 원작에 갈우, 왕학기, 판빙빙, 황효명 등 내노라 하는 연기파 배우와 톱스타들이 대거 참여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별 소득이 없었고 한국 개봉 시에도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원작의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주인공의 불타는 복수의 심리나 그 카타르시스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 것 같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에 극적인 요소가 강한 만큼 언젠가는 제대로 된 영화로 탄생하리라 믿어본다.

 

[그림1] 연극 <조씨고아-복수의 씨앗> 포스터

 

[그림2] <천하영웅> 포스터

 

  중국 연극의 클래식으로 자리잡은 <뇌우>도 또 다른 대륙의 거장 장예모에 의해 영화화된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시 최대의 제작비로도 많은 화제를 모았던 2006년작 <황후화>다. 물론 <황후화>는 <뇌우>의 스토리를 그대로 영상화 한 것이 아니라 시대극으로 재구성하여 영화로 만들었다. <뇌우>는 민국 시기 두 가족의 얽히고 설킨 비밀과 비극에 관한 이야기로, 몰락해가는 부르주아 가문의 인습과 병폐를 고발하는 사회성 짙은 작품이다. 장예모는 <뇌우>의 스토리를 가져오되, 당나라 말기로 배경을 바꾸고 원작의 리얼리즘에서 벗어나 욕망에 눈먼 인간 군상들의 파괴적 모습들을 펼쳐보인다. 영화는 화려한 미장센 구현에 치중한 반면, 원작의 주제와 시대정신, 그리고 깊이 있는 울림을 담아내는 데는 실패했다고 본다. 소문난 집에 먹을 것 없다고 치장만 요란했지 정작 실속은 없었다고 할까. 막대한 제작비에 초호화 캐스팅으로 흥행은 그럭저럭 했다지만 작품성에 대해 말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주윤발, 공리, 주걸륜, 유엽 등 중화권 톱스타들을 대거 동원했지만 연기에 대해서도 그다지 깊은 인상이 없다.

  마지막으로 천카이거, 장예모 못지 않은 지명도를 가진 흥행 감독 풍소강의 시대극 <야연(夜宴)>도 한번 거론해보자. <야연> 역시 앞선 두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고, 세 감독의 연륜과 지명도도 비슷한 지라 더 흥미롭기도 하다. <야연>은 중국의 희곡이 아니라 세익스피어의 <햄릿>을 원작으로 하여 만든 영화다. 오대십국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황궁 속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배신, 사랑과 욕망을 담아낸다. 화려하고 웅장한 화면과 장쯔이, 오언조, 갈우의 연기는 꽤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너무 보여주기식에 몰두하다보니 탄탄한 원작의 서사에 빈틈이 생기고 결정적 한방이 빠져있는 영화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앞서 거론한 천카이거, 장예모의 영화들보다는 훨씬 나았다고 본다.

 

[그림3] <야연> 스틸컷

 

  소설이든 희곡이든 원작이 거대하면 할수록 그것에 비례하여 영상화하는 작업은 지극히 어려운 것 같다. 게다가 장르마다 문법이 다르니, 단순히 스토리만 따라간다고 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원작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분석을 바탕으로 새로운 무언가가 더해져야 한다. 아무튼 중국 역시 좋은 연극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멋지게 영화화한 작품을 많이 좀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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